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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미 “갈지자로 걷더라도 내 발자국 남기고 싶었다”

2026-11-0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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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 주류였던 1970년대 독자적 색채 추구
“인생은 70부터…더 깊이 있는 작품 만들고 싶어”

지난 2일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명미 작가가 작업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지난 2일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명미 작가가 작업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1970년대 한국 미술계에 단색화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 이명미 작가는 화려한 색채와 자유로운 기호를 앞세워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기존의 흐름을 따르기보다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하겠다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실험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일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제26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전 '더 이상은 말할 수 없다' 기자간담회에서 이 작가는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추구해 온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남들이 다 몰려갈 때 나는 다른 길로 가겠다는 일종의 영웅주의적인 생각도 있었다"면서도 "선배들의 발자국을 그대로 따라가서는 내 발자국을 남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갈지자로 걷더라도 내 발자국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색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1974년 대구현대미술제 창립에 참여한 한국 현대미술 1세대 여성 작가다. 대구를 기반으로 서울 중심의 미술 구조와 기존 미술계의 권위에 도전했던 그룹 '35/128'에서도 활동했다.


독자적인 색채를 추구한 데에는 한국적인 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이 작가는 "흰색은 우리 전통에서 상복의 색이기도 하지만 왕실 문화나 전통 혼례에는 오색찬란한 색채가 있었다"며 "그런데 왜 우리가 흰색에만 머물러야 할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명미 작가가 1970년대 자신이 참여했던 그룹 35/128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이명미 작가가 1970년대 자신이 참여했던 그룹 '35/128'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이러한 고민은 불교 철학의 '연기(緣起)'를 탐구한 초기 실험에서 출발해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놀이' 연작으로 이어졌다. 놀이 연작에서는 원색의 색채와 간결한 기호, 글자와 사물 등을 자유롭게 조합하며 자신만의 조형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자유롭고 유쾌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작업 과정까지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다. 이 작가는 "내가 지향하는 작업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심하게 괴롭다. 그래도 정신만큼은 '놀이 정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림이 작가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내가 그림을 지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품의 소재는 특별한 곳에서 찾지 않는다. 음악과 날씨, 계절의 변화 등 일상에서 경험하는 감정과 순간들이 작업의 출발점이다. 그의 작품에 대중가요의 가사나 일상적인 사물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작가는 "아이디어는 내 삶에서 나온다. 즐겨 듣는 음악이나 순간순간 시선을 붙잡는 햇살, 계절의 변화 같은 것들이 작품의 소재가 된다"며 "내가 좋아하고 내 심장을 때리는 것이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사람과 동물, 식물을 단순화한 기호 역시 작품의 특징이다.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 관람객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 작품에 담긴 유머도 이러한 표현 방식과 맞닿아 있다. 이 작가는 "내 그림을 보고 누군가 웃었으면 좋겠다"며 "그림을 보고 마음이 편안해질 수도 있고 즐거운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세기 넘게 작업해 온 이 작가는 여전히 새로운 작품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그는 "이번에 작품들을 한꺼번에 펼쳐놓고 보니 내가 좀 게을렀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금까지는 도전하고 행동하는 것이 작업의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더 깊이 있고 품격 있는 작품을 완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인생은 70부터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20년 정도 더 작업할 수 있다면 같은 주제를 그리더라도 더 높은 수준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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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준

영남일보 권혁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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