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식 재경구미시향우회장이 저서 '박해식 변호사의 아침, 음악편지'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재경모임은 향우회라는 이름으로 서울에 존재한다. 혈연, 학연, 지연을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 아래 속칭 '고향 까마귀'는 기쁘거나 힘들 때 함께하며 이를 통해 우정과 결속을 다진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물론 산하 각 시·군·구도 조직을 갖추고 있다. 대구경북 재경모임 중 '구미시향우회'는 활동이 가장 왕성하고 고향 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회원간 소통과 단합이 잘되는 핵심에 박해식 변호사가 있다. 구미를 대표하는 '금오5현' 중 한명인 대학동자(大學童子) 송당 박영(조선 초기)의 후손인 그는 구미시 고아읍 오로리에서 태어나 고아 초·중고, 계성고를 거쳐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연수원 18기)에 합격, 서울중앙지법, 대구지법 판사와 대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했다. 18년간 법관으로 일하다 2007년부터 법무법인 '율촌'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공정거래 및 행정규제사건 전문 변호사로서 기업과 기관들로부터 가장 실력 있고 선호하는 변호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일과 병행해 '공정거래법상의 과징금에 관한 연구' 등 80여 편의 논문과 주석민법(임대차부분), 상가임대차분쟁소송 등 3권의 저서를 펴낸 학구파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지난 5년간 에세이집을 잇따라 출간하며 수필가로서의 면모도 드러내고 있다.
▶ 향우회의 역할은 무엇인지. 구미는 어떤 도시인가.
"구미는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인 '최첨단 산업도시'이자, 깊은 역사적 뿌리와 정신문화가 살아 숨 쉬는 '역사문화도시'입니다. 저는 25년 전부터 재경 구미시 고아읍 향우회장을 맡아 왔고, 작년 1월부터 재경구미시 향우회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향우회는 친목을 넘어 고향과 출향인을 잇는 가교입니다. 구미는 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섬유·전자산업에서 반도체·방산 등 미래산업으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또한 야은 길재 선생으로부터 이어진 영남 사림과 성리학의 본고장이며, 새마을운동과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입니다. 낙동강, 도리사, 금오산 같은 자연유산에 '구미라면축제' 같은 현대 문화가 어우러져 남녀노소에게 매력적인 도시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출향인사들이 고향에 기여하거나 환원하는 문화에 대한 생각은.
"향우회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난 순수한 애향조직이며, 고향과 출향인을 실질적으로 잇는 '상생과 생산성의 플랫폼'이 되어야 합니다. 얼마 전 서울광장과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구미농축산물 페스티벌'에 동참해 고향 농산물을 알려 소비를 촉진했고, 고향사랑기부제에도 적극 참여해 구미의 재정과 농민의 소득에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서울 구미학숙의 대학생들에게 구미 정신을 심어주면서 세대를 잇고자 합니다."
박해식 재경구미시향우회장이 서울 여의도에 있는 영남일보 서울본부 사무실을 찾아 이야기하고 있다.
▶ 오랜 기간 판사로 재직했다. 법조인의 길을 선택한 계기는.
"어린 시절 품은 공정함에 대한 열망이 저를 법조인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마을에서 본 집터 경계 분쟁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법과 이치가 아니라 지역 유력자의 영향력으로 결론이 나는 모습을 보고, 억울한 사람 없이 분쟁을 공정하게 해결하는 법관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점유취득시효 문제였고, 눈물 흘리던 이웃들을 보며 품은 정의감이 평생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그 다짐으로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차석으로 합격했고, 1989년 3월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해 2007년 2월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부장판사로 퇴직하기까지 만 18년간 법관으로 일했습니다."
▶ 마음속에 남아 있는 고향의 풍경 중 기억나는 게 있다면.
"고향을 떠올리는 일은 가난하고 고단했던 시절과 마주하는 것이지만, 어머니의 사랑과 선구자들의 자취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의 안식처는 도서관이었습니다. 제가 읽은 책 이야기를 들으려 모여든 친구들이 대신 소를 먹이고 풀을 베어주었지요(웃음). 낙동강 백사장을 맨발로 달리던 자유로움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박정희 대통령 생가와 야은 선생의 채미정, 금오산 도선굴을 오르내리며, 금오산 현월봉에서 '나도 역사와 사회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겠다'고 다짐한 그 약속이 가장 단단한 버팀목이었습니다."
▶ 율촌에서 맡아온 역할과 율촌의 성장 과정은.
"18년의 법관 경험으로 율촌의 비약적 성장과 함께하며 국내 최고 수준의 공정거래그룹을 구축했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올해로 입사 20년째입니다. 약 10년간은 공정거래그룹 대표 겸 매니징 파트너로서 경영과 성장을 이끌었고, 지금 율촌은 국내 5대 대표 로펌이 되었습니다. 입사 당시 파트너 25명, 변호사 100명 안팎이던 규모가 지금은 한국 변호사 570여 명, 외국 변호사·세무사·회계사 등 전문가 870여 명을 포함한 임직원 1천300명의 로펌으로 성장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법률신문' 기업 고객 조사(4년 주기)에서 2016년, 2020년 공정거래 분야 '최고의 변호사'에 2회 연속 선정되었습니다."
▶ 최근 출간한 '아침, 음악편지' 제2권은 어떤 책인가.
"코로나 엔데믹 이후 거대한 변화 속에서 길어 올린 사유와 통찰, 그리고 따뜻한 위로를 담은 기록입니다. 2021년 4월부터 매주 한두 차례 직접 쓴 글과 고른 음악을 지인들과 카톡으로 나누었고, 2022년에 첫 기록(제목: 박해식 변호사의 아침, 음악편지, 부제: 소소하고 잔잔한 세상이야기)을 엮어 제1권을 비매품으로 출간했습니다. 제2권은 2022년 7월부터 2023년 12월까지의 기록입니다. 엔데믹을 맞았지만 생성형 AI의 등장과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모두가 고단했던 시기에, 삶은 멈추지 않으며 다시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담았습니다. 고교 동기 윤하원 시인의 시 60여 편을 함께 실어 글과 시, 음악이 대화하는 책이 됐습니다. 원고를 끝까지 다듬어 준 아내의 헌신도 녹아 있습니다."
▶ 38년 법조 경험은 시대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급변하는 기술문명 속에서도 변해서는 안 될 '인간의 가치'를 보게 하는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대통령부터 서민, 재벌부터 실직자까지 수많은 삶을 재판하고 변호하며 세 가지를 마음에 새겼습니다. 첫째,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아야 하고 그 출발점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하며 AI 기술의 한계를 정하는 기준도 인간 존엄성이어야 합니다. 셋째,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어야 하고 그 희망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연대에서 나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 후배 변호사들에게 강조한 리더십과 성장의 자세는.
"스스로 이미 '리더'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에서 성장은 시작되며, 성과로써 입증되어야 합니다. 리더십은 통찰, 솔선수범, 겸손이라는 기둥 위에 쌓은 지붕 곧 전문가입니다. 첫째, 통찰은 법률 지식에 문해력과 인문학적 소양을 아우르는 통섭(統攝)의 공부에서 나옵니다. 둘째, 솔선수범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이고 책임을 지는 자세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맞닿아 있습니다. 셋째, 겸손은 제 가훈 '근졸(謹拙)', 곧 삼가고 서투른 듯 처신하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마지막으로 디테일에 강한 진짜 전문가가 되어 성과로 입증해야 합니다. 논문과 책을 쓰고 강연과 토론에 참여하며 스스로를 갈고닦아야 합니다. 저 역시 100편이 넘는 논문과 4권의 전문 저서로 그 모범을 보이려 노력해 왔습니다."
▶ AI 시대 청년 변호사와 로스쿨 학생에게 필요한 경쟁력은.
"AI와 싸워 이기려 하지 말고, 때로는 유능한 '부하직원'으로, 때로는 지혜로운 '동료·선배'로 활용해야 합니다. 첫 단계는 AI를 부하직원처럼 다루는 '프롬프트 경쟁력'입니다. 판례 검색과 기초 조사는 이미 AI가 더 빠르니, 이제는 얼마나 아느냐보다 사실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해 어떻게 질문하느냐가 실력입니다. 다음 단계는 AI를 선배·동료로 삼아 '인사이트(insight)', 곧 상상력(imagination)을 기르는 것입니다. AI가 가져온 사실과 데이터로 최종 법적 솔루션을 도출하는 것은 인간 변호사의 몫입니다. 이 통찰은 분야의 트렌드와 본질을 꿰뚫는 거시적 안목, 사건의 작은 디테일과 리스크를 짚는 미시적 역량이 결합할 때 나옵니다. AI를 양손에 쥐고 자신만의 사유를 더하는 청년 변호사가 새 법조 시장의 주역이 될 것입니다."
박진관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고자 하는 서울본부장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