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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스승' 시덕준 감독이 말하는 반야월초등 시절의 박주영

2010-06-18

'축구는 안된다' 반대하는 부모 두달 설득
"주영이는 집에 갈때도 깡통 차면서…지독한 연습벌레였죠"

박주영이 시덕준 감독에게 선물한 '박주영의 축구화'. 프랑스리그에서 뛰면서 신던 축구화로 그의 사인이 들어있다.

14년전, 대구두류운동장에서 대구시초등학교축구선수권대회 결승 반야월초등-감삼초등의 경기가 열렸다. 기자의 카메라 초점은 반야월초등 10번 선수를 따라다녔다.

그는 또래에 비해 키가 작았으나, 다람쥐같이 빠른 움직임에다 슈팅과 드리블능력이 탁월했다. 11명이 하는 축구경기를 마치 혼자서 하는 것처럼 감삼초등 수비수들을 달고 다녔다. 이날 경기에서 반야월은 6-0으로 감삼초등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날 영남일보 스포츠면에 그 선수의 드리블 장면이 크게 실렸다.

그 선수가 바로 축구국가대표 부동의 스트라이커 박주영이다.

"순발력과 탄력이 뛰어났지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해 중·고·대학까지 1학년 때도 항상 주전으로 뛰었습니다. 한마디로 축구천재지요."

아르헨티나와의 결전을 하루 앞두고 16일 만난 시덕준 반야월초등학교 축구감독(48)의 말이다. 그는 박주영을 축구에 입문시킨 장본인이다. 박주영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기도 하다. 시 감독은 1995년 반야월초등학교 학년별 축구경기를 통해 박주영을 발탁했다. 조진호, 김현수, 이원식, 박주영, 이승현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축구국가대표 선수들이 반야월초등학교 출신들이다. 시 감독은 박주영을 처음 본 순간 대성할 제목이란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박 선수의 부모님이 "우리 아이는 공부를 해야 하니까 축구는 안 된다"며 아이의 손을 잡고 가버렸다. 시 감독은 "한번만 더 생각해 달라. 박 선수는 백 년 만에 한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적인 자질을 지녔다"며 두 달 동안 박 선수의 부모를 집요하게 설득해 허락을 받아냈다.

시 감독은 "주영이가 프랑스리그에 가서 시야가 더 넓어졌고, 몸싸움도 많이 늘었다"며 "공간창출능력에 있어서 주영이 만한 선수를 아직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박주영은 연습벌레다. 어릴 때부터 빈 깡통은 물론, 테니스공까지 집안에서나 거리에서나 늘 발로 무엇인가를 차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다. 천재적인 자질에다 노력과 성실성,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다 보니 대선수가 된 것이다. 박주영은 이후 축구명문 청구중·고를 거쳐 국가대표가 되었다. 고3때는 4개의 전국대회에서 득점상을 타기도 했다.

박주영이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향토출신이라 관심과 애정이 더 가는 것도 사실이다. 남아공월드컵에서 16강은 물론 8강, 4강까지 가는데 있어 그의 멋진 활약을 기대한다.

시덕준 반야월초등 축구부 감독이 박주영에게 선물받은 축구화를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리그로 진출한 뒤 2009년 한국을 찾은 박주영이 모교 반야월초등을 방문해 시덕준 감독과 기념촬영을 했다.
박주영(앞줄 왼쪽에서 네번째)이 대구 반야월초등 축구부 시절, 축구부원과 함께 찍은 사진. 당시 박 선수는 반야월의 주전 스트라이커였다.
박주영(왼쪽에서 세번째)이 청구고 2학년 때 11번을 달고 대구 강변축구장에서 경기하던 모습. 프리킥 상황에서 김동현(왼쪽에서 네번째. 전 국가대표)등과 함께 방어벽을 치고 있다.
박주영의 대구 반야월초등 졸업 사진. 맨 뒷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박주영이다. 또래보다 키가 그리 크지 않다.
박주영(점선)이 청소년축구국가대표시절 모교인 대구 반야월초등을 방문해 후배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 맨 뒤편에 서 있는 사람은 박주영을 발탁해 키운 시덕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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