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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번화가 뒤덮은 일본어 간판…“단순 마케팅” vs “문화사대주의” 갑론을박

2026-11-0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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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낮 대구 교동의 주요 거리. 3곳 중 2곳꼴로 간판에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이 중 상당수가 일본어였다. 조현희기자

평일 낮 대구 교동의 주요 거리. 3곳 중 2곳꼴로 간판에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이 중 상당수가 일본어였다. 조현희기자

지난 2일 오후 4시 대구 중구 교동 일대. 카페와 음식점 간판에 외국어로 적힌 상호가 눈에 띄었다. 취재진이 주요 거리 500m를 이동하며 조사한 결과 3곳 중 2곳꼴로 간판에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이 중 상당수가 일본어였다. 한글을 병기하지 않은 매장도 있어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어떤 가게인지 바로 알기 어려울 듯했다. 병기해둔 경우에도 글씨가 작아 가까이 다가가야 겨우 읽을 수 있었다. 중구 동성로, 삼덕동 등 다른 번화가도 사정이 비슷했다.


이날 교동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길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대구역 인근에 거주한다는 박칠상(78)씨는 "교동 근처에서만 20년 넘게 살았는데 간판이 온통 일본어로 바뀌니 읽을 수도 없고 무슨 가게인지도 알 수 없다"며 "젊은 사람들이 많다지만 약속 장소를 찾을 때 위치를 설명하기 어려워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 조현구(76)씨는 "들어가 보고 싶어도 뭘 파는지 모르니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 같은 사람들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알아보기 쉽게 써주면 좋겠다"고 했다.


일본어가 사용된 간판. 간판 좌측 하단에 한국어가 작게 병기돼 있었다. 조현희기자

일본어가 사용된 간판. 간판 좌측 하단에 한국어가 작게 병기돼 있었다. 조현희기자

대구 주요 번화가에 일본어 간판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내세운 영업 전략이지만 간판이 상점 정보를 전달하는 본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해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문화사대주의라는 비판과 단순 영업 전략이라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 속에서 '한글 주변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대구 내 한 일식 주점의 메뉴 포스터. 한국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조현희기자

대구 내 한 일식 주점의 메뉴 포스터. 한국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조현희기자

◆부타가쿠니·안키모빠테…메뉴 이름도 일본식


한일 문화교류 확대로 대구에도 일본풍 음식점과 카페가 늘고 있다. 단순 일식 메뉴를 파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간판, 인테리어, 음악, 소품까지 일본 현지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식이다. 2일 교동에서 본 일본풍 음식점들 간판뿐만 아니라 메뉴판에도 일본색이 짙게 드러났다. 부타가쿠니, 안키모빠테, 모츠나베 등 일본식 표현을 그대로 옮겼다. 글자 자체는 한글로 표기돼 있었지만 일본어를 잘 모르는 손님에게는 이름만으로 어떤 요리인지 파악하기 어려워 보였다.


업주들은 최근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 마케팅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동에서 일식 주점을 운영하는 박민철씨는 "요즘 해외 현지의 경험을 국내에서 찾으려는 소비 경향이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강조하고자 상호와 메뉴에 일본식 표현을 사용했다. 손님들도 이런 분위기를 기대하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어 "메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일식 주점의 일본어 간판. 일본어 옆에 한국어가 작게 병기돼 있었다.

한 일식 주점의 일본어 간판. 일본어 옆에 한국어가 작게 병기돼 있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모두 곱지만은 않다. 특히 일본어 간판을 두고 마케팅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우리말을 두고 굳이 일본어를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글 표기가 없거나 지나치게 작은 간판은 시민들의 정보 접근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달서구에 거주 중인 공재민(30)씨는 "상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선택이라 본다. 가게만의 개성을 살리기 위한 마케팅 아니겠나. 손님들도 그런 콘셉트를 알고 찾아갈 것"이라며 "한글 표기를 함께 했다면 크게 문제 될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구에 거주하는 박성희(41)씨는 "젊은 사람들은 SNS나 유행을 통해 가게 이름과 메뉴를 알 수 있겠지만 어르신들은 다르다. 간판을 보고도 무슨 가게인지 알 수 없다면 간판의 존재 이유가 없다. 한글이 있어도 잘 보이지 않는다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간판이 갖는 공공성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한 횟집의 외국어 간판. 영어와 일본어가 적힌 간판에 한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현희기자

한 횟집의 외국어 간판. 영어와 일본어가 적힌 간판에 한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현희기자

◆외국어 적절한 곳 있지만…'한글 주변화' 경계해야


한글 병기를 하지 않은 외국어 간판은 옥외광고물법 위반에 해당한다.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은 광고물 문자를 한글로 표기하도록 명시한다. 외국 문자를 쓸 때도 한글을 병기해야 하며, 상표 등록 등 특별 사유만 예외 적용을 받는다. 다만 3층 이하, 면적 5㎡ 미만 벽면 간판은 허가·신고 대상이 아니다. 지자체 단속 활동이 한계에 부딪히는 이유다.


이 같은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립국어원이 거리 간판 실태를 조사할 때마다 상업지구를 중심으로 외국어·외래어 단독 표기 비율이 상당하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왔다. 특히 번화가나 대학가 인근 상권일수록 외국어 단독 표기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뚜렷하다.


업주들은 가게의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외국어가 적절한 공간이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삼덕동의 한 일식 주점 상인은 "이자카야 특성상 메뉴 이름을 일본식으로 담는 게 상업적 효과와 매장의 통일성을 높이는 데 좋다고 생각했다"며 "일본어 간판도 특별히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어를 상업적으로 무분별하게 사용할 경우 한글이 변두리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은 교동 귀금속거리 인근의 한국어 간판. 조현희기자

전문가들은 외국어를 상업적으로 무분별하게 사용할 경우 한글이 변두리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은 교동 귀금속거리 인근의 한국어 간판. 조현희기자

전문가들은 일상에서 단일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글이 주변화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어가 상대적으로 촌스럽고 덜 세련된 언어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승희 영남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대중의 기호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현상이지만 한글을 생각하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 언어가 축소되거나 주변부로 밀려날 수 있다. 일본어를 사용하면 유행에 민감한 것 같고 음식이나 공간도 더 좋게 느끼는 인식은 한글을 변두리화할 수 있어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간판에 일본어는 크게 넣고 한글은 잘 보이지 않게 적는 것도 마찬가지"라며 "세련되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외래어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과정에서 한글이 밀려나고, 노년층과 언어 약자에 대한 배려마저 약해지고 있다. 한글 주변화 현상이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는 만큼 제도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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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희

현실적 낭만주의자. 용기와 진실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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