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희망이 있다…세상에는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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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열린 대구 남부도서관 종합예술제에서 시인 지망생 이준희씨(가운데)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자작시를 발표하고 있다. |
“…/세차게 몰려드는 비구름은 내겐 일과를/ 엎는 일이지만/ 완치의 바람노래 아닌 손자를 향한 끈기였었다는 것을/ 손자는 빗소리에 귀 데인다.”
시인 지망생인 뇌병변 1급 장애인 이준희씨(24)가 쓴 자작시 ‘장마’의 일부다.
소설가 이외수씨를 존경하는 이씨는 3년 전부터 대구시 남구 대명동 남부도서관의 시짓기 교실에서 창작활동에 매달리고 있다. 그 결과, 최근 열린 남부도서관 종합예술제에서 자작시를 발표했다. 이씨는 청중 400여명 앞에서 동료 2명의 보조를 받은 채 자작시 ‘장마’를 떠듬떠듬 읽어 나갔다. 청중들은 한 구절 한 구절을 읽는 데 최선을 다하면서 얼굴이 일그러진 이씨에게 감동의 박수를 보냈다.
이씨는 보고 듣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말조차 어눌해 의사소통은 겨우 검지로 그리는 문자에 의존한다. 이런 그를 위해 합천에 사는 할머니는 마을 도당(禱堂)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기도를 드리곤 했다. ‘장마’는 할머니 댁에서 지냈던 추억을 그린 시다. 그는 “가족과 연기를 날리며 목살 구워먹고, 함께 민화투를 쳤어요. 할머니가 알밤도 구워 주시고, 들기름을 내어 비벼주시던 밥맛은 잊을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기나긴 장마는 손자에 대한 할머니의 애절한 염려였다. 이씨의 시적 감각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이씨는 3년이나 늦은 나이에 대구보건학교 초등과정에 입학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입학하기 전까지 그가 재활치료를 받아 걸을 수 있도록 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재활치료가 몇 해 거듭돼도 이씨의 신체기능에는 변화가 없었다. 장남인 이씨를 뒷바라지하는 어머니는 그에 대한 지극한 사랑만큼이나 걱정도 많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걱정과 달리, 이씨는 입학한 뒤 친구들과 잘 지냈으며, 학업성적도 상위권에 들었다. 특히 글쓰기에는 흥미가 남달랐다.
대구보건학교 초·중등과정을 한 학기의 유급도 없이 잘 소화해낸 이씨는 3년 전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체계적인 문학공부를 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방송대에는 이씨와 같은 중증장애인이 수학할 수 있는 학습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못했다. 더군다나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대학생활을 접어야 했다. 전세에서 월세 집으로 옮겨야 했으며, 이씨의 어머니는 식당일까지 해야 했다. 그러나 이씨는 좌절하지 않았고, 집에서 가까운 남부도서관으로 시작(詩作) 공부를 하러 다녔다.
이씨가 지금껏 창작한 시는 150여편이나 된다. 개인문집을 내고도 남을 정도다. 하지만 이씨의 목표는 등단이다. “올 한 해 수업을 더 받고 난 뒤 내년에 신춘문예에 응모하고 싶어요.” 이씨는 수줍게 각오를 다졌다. 이씨는 또 “동생이 학업을 마치고, 다시 형편이 나아지면 대학에 복학하고, 또래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에 대한 어머니의 칭찬이 대단하다. “최근 전동 휠체어를 타게 되면서 집안일도 거들 수 있을 정도”라는 어머니는 “준희가 열심히 해주는 덕택에 요즘은 제가 오히려 힘을 많이 얻는다”고 말했다. 이씨가 장남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글·사진=정석현 시민기자 duoh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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