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33개 의회 조례 전수 분석
10년 이상 미개정·활용도 낮은 조례 48건 확인
상위법 불일치·옛 용어 사용 사례도 ‘수두룩’
전문가 “조례 방치, 지방의회의 무관심 보여줘”
새 지방의회 출범 맞춰 전수점검 필요성 제기
대구·경북 지방의회가 상위법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조례를 고치지 않은 채 '유령 조례'로 방치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수십 년이 지나도 개정되지 않은 조례가 수십 건 남아 있는가 하면, 상위법과 맞지 않거나 이미 폐지된 법률을 그대로 인용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지방의원들이 조례의 양산에만 급급한 채 정작 기존 법규의 유효성을 점검하는 기초적인 책무조차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영남일보는 최근 대구경북 33개 광역·기초의회 조례를 전수 분석했다. 이 가운데 10년 이상 개정되지 않으면서 조항이 5개 이하이고 타 조례 인용 횟수가 3회 이하인 조례를 조사한 결과, 정비 필요성이 있는 조례는 48건으로 확인됐다. 자치단체별로는 경북 울릉이 5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북 청도 4건, 고령·청송·포항(이상 경북)·중구(대구) 각 3건, 경주·영덕·영천·울진·의성·칠곡(이상 경북)·동구·수성구(이상 대구)·경북도 각 2건, 문경·봉화·상주·영양·영주(이상 경북)·서구·남구·북구·달성군(이상 대구) 각 1건으로 집계됐다.
청송군 농업용수 개발사업 시행 조례는 1996년 폐지된 '농촌근대화 촉진법' 규정을 사용하고 있다. <자치법규정보시스템 캡처>
◆폐지된 법령 그대로 사용
청송군은 '농업용수 개발사업 시행 조례'의 근거를 폐지된 '농촌근대화 촉진법' 규정에 두고 있었다. 농촌근대화 촉진법은 1996년 폐지됐으나 청송군 조례는 여전히 이 법 제5조, 제7조, 제100조 규정을 따른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례는 2015년 '청송군 조례 제명 띄어쓰기 등 일괄개정조례'에 따라 일부 개정됐다. 조례명의 띄어쓰기는 손봤지만, 폐지된 상위법 인용 등 조례 본문에 대한 실질적 정비는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청송군 기반조성팀장은 "조례가 오래되다 보니 그동안 등한시되지 않았나 싶다"며 "이번 기회에 파악을 했으니 조례심의위원회 심의 등 절차를 거쳐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포항시 토지구획정리사업특별회계 설치 조례도 폐지된 사업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은 2000년 '토지구획정리사업법'이 폐지되고 '도시개발법' 체계로 통합되면서 신규 사업 체계에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명칭이다. 이에 대해 포항시 도시정비팀 주무관은 "도시개발법 부칙에 토지구획정비사업으로 되어 있는 사업은 토지구획정비사업법에 따른다고 돼 있어서 현재 조례가 살아 있는 것"이라며 "조례가 폐지되려면 구획정리가 모두 마무리돼야 한다. 현재 사업 시행 인가는 2029년까지 돼 있는 상태지만, 조합에서 공사가 끝나서 관련 서류를 넘겨야 완료되는 것이기 때문에 조례가 언제 정비될지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법 바뀐 지 20년 넘도록 개정 안 해
영덕·청도·경주·고령·봉화·포항 등은 '공수의(공공 수의사) 동원 여비 지급 조례'에서 공수의 위촉권자를 여전히 '경북도지사'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상위법인 수의사법과 맞지 않는다. 현행 수의사법 제21조는 '시장·군수'가 공수의를 위촉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2005년 5월31일 개정 법률에 따라 공수의 위촉 주체가 '시장·군수'로 변경된 것이다. 법 조문이 바뀐 지 20년이 넘었지만 해당 지자체 조례에는 과거 규정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달성군 농업용수 개발사업 시행 조례는 2000년 개정 이후 26년간 개정되지 않아 현행법에서 사용하지 않는 낡은 용어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자치법규정보시스템 캡처>
◆옛 명칭 사용 여전…띄어쓰기만 고쳐
달성군의 '농업용수 개발사업 시행 조례'와 고령군 '농업기반시설사업 시행 조례'에서도 정비가 필요한 점이 확인됐다. 달성군 '농업용수 개발사업 시행 조례' 제2조(경비부과)에는 '농지개량사업 참가자격자에게 금전 또는 부역현품을 부과징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농어촌정비법'에는 농업생산기반 정비사업, 토지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자, 수리계, 농업생산기반시설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조례상 표현을 현행 법체계에 맞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부역현품'은 과거 농업기반시설 조성이나 수리시설 관리 과정에서 주민이 노동력 또는 물품을 부담하던 시절의 표현으로, 현재 지방행정체계와는 맞지 않는 낡은 용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달성군은 2000년, 고령군은 2008년 개정한 이후 해당 조례를 손보지 않고 있다. 달성군 농업시설2팀 주무관은 "최근에 농업용수 개발사업을 시행한 사례가 없어서 지금 처음 확인했다. 2000년에 시행돼서 26년간 개정이 한 번도 안 되다 보니 일부 용어 등에서 현행 법령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며 "정확하게 검토해 보고, 맞지 않는 부분이 확인되면 절차에 따라 개정 또는 폐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사 대상에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군위군 역시 2023년 대구시 편입 당시 자치법규 일괄정비를 거쳤음에도 '부역현품' 등 과거식 표현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박수현 군위군의원은 "옛날 또는 일본어식 용어를 일괄적으로 정비했는데, 일부 빠진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해당 조례의 조문은 강제 규정이 아니어서 실제 적용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용어가 적합하지 못하면 바꾸는 것이 맞다. 집행부 부서별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외 △청송·영양의 화물자동차 운송사업 차고지 설치 및 운영조례 △고령·영덕·청도·의성·경주·울릉·포항·영천의 사업용자동차 (운송사업자) 차고지 설치(의무) 면제 조례 △문경·울진·상주의 개인택시·용달화물 운송사업자 차고지 설치 면제 조례에서도 과거 용어가 확인됐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으로 2019년 7월1일부터 기존 '용달화물자동차 운송사업'은 '개인화물자동차 운송사업'으로 개편됐지만, 일부 지자체 조례에는 여전히 '용달화물'이란 옛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방치된 조례…지방의회 무관심 드러내
전문가들은 조례 방치가 지방의원들의 입법 활동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경북대 강우진 교수(정치외교학)는 "조례 정비는 말할 필요 없이 중요하다. 의원들은 유권자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대리인으로서 조례를 만들고, 입법 생산성을 통해 자신의 역할을 증명한다"며 "과거 만들어진 조례가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공개적으로 논의되지도 않은 채 방치돼 있다는 것은 한국 지방자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중요한 현상"이라고 꼬집었다.
대구가톨릭대 장우영 교수(정치외교학)는 "지방의회에는 정책지원관과 전문위원 등 조례를 검토할 수 있는 인력이 있다"며 "그런데도 조례가 방치되고 있다면 이는 단순히 인력이 없어서라기보다 의회가 그 문제에 충분히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새 의회 출범 맞춰 전수점검 필요
전문가들은 방치된 조례 정비를 제10대 지방의회 개원과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장 교수는 "새 의회가 개원하고 의장단 구성이 마무리되는 시기는 조례 정비 필요성을 제기하고 추진하기에 좋은 때"라며 "의원들이 의정활동의 방향을 잡아가는 단계에서 오래 방치된 조례나 상위법과 맞지 않는 조례를 함께 점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새 의회가 구성되는 시기에 기존에 만들어져 있던 조례들을 한 번 점검하고 정비하는 안건을 올리는 것은 중요한 문제"라며 "조례를 새로 많이 만드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조례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현재 법령 체계와 맞는지, 지역 주민의 삶과 연결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례 정비는 단순한 정비 차원을 넘어 의원들이 지역 조례 현황을 한 번 스크린하고 공부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의원들은 지자체의 제도적 기반을 이해하고, 앞으로 어떤 조례를 새로 만들거나 고쳐야 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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