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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주 양남면 읍천항 풍경

2013-04-19

해녀가 뭍으로 오르고, 잠수부가 앞으로 쑤욱 다가오고,
오리가 둥둥 떠다니고 꽃은 활짝 피고…조용한 갯마을이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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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남면 읍천리는 마을 전체가 갤러리다. ‘읍천항 갤러리’라 부른다.

토함산을 넘어 장항리사지의 평강을 확인하고, 대종천을 따라 흐르다 감은사지를 배현한 후, 봉길리 앞바다에서 천천히 대왕의 안색을 살피며 남쪽으로 향한다.

천년 넘는 세월 동안 별별 일을 다 겪었을 그들은 요 몇 주 사이 무탈한 듯 보인다. 급변하는 시대지만, 기껏 삼사십년 쯤 더 살 인간이 앞으로 천 년을 더 살지 모르는 저들의 안녕을 궁금해 한다는 게 좀 웃긴 일이긴 하다.

길은 원자력 발전소를 피해 우회하면서 길고 긴 봉길터널을 통과한다. 이 터널은 언제 생겼나. 시큼한 시멘트 냄새가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걸 보니 그리 오래지 않은 듯하다. 나아리 지나 읍천 교차로에서 곧장 바다로 향하는 골목길로 파고든다.


걷는 내내 바다는 지척이고
파도는 잔잔하다
사람들이 몰려 선 전망대에서
목을 길게 빼고 내려다본다
부채꼴 주상절리…
신비롭게 핀 동해의 꽃
꼭 살아 있는 듯, 숨쉬는 듯하다


◆ 읍천항의 담벼락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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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천리의 벽화는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팀들의 그림이다.

좁은 골목길의 끄트머리 담벼락에 환한 웃음 짓는 노부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벽은 버스정류장이다. 노부부는 버스를 기다리는 모양인데, 마치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는 듯하다. 찰칵 하는 순간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영원 같다.

맞은편 담벼락은 바다 속이다. 빨가벗은 어린아이가 물고기와 헤엄치고 고래가 유영한다. 마을의 담벼락에는 갈매기가 날고 오리가 둥둥 떠다니고 꽃이 피고 해녀가 뭍으로 오르고 잠수부가 다가오고 아이가 그네를 타고 고등어가 접시 위에 눕고 배가 항해를 하고 나비가 난다. 조용한 갯마을에 온갖 것들이 꿈틀댄다. 바다는 잔잔하다.


항구 쪽으로 향한다. 마을은 점차 빼곡해지고 부산해진다. 차들의 들고남이 잦아진다. 긴 방파제는 낙서들로 가득하다. 내항의 가장자리 경계석 위에 올라선다. 분명 항의 모서리는 각이 졌는데, 한 뼘쯤 높이 올라서 보니 항이 동그랗다.

‘항’이 콧소리를 낸다. 그래서 항구에 끌리는 걸까. 항구에는 언제나 무수한 사물들이 엉겨있다. 그 어수선한 것들의 이름과 그들의 질서는 늘 궁금하다. 궁금하다는 거, 그건 사랑이다. 결국 살아봐야 알게 되는 것, 그건 여행자의 한계다. 냉장창고 이층에 있던 인어아가씨와 눈이 마주쳤다. 이곳에는 인어아가씨가 하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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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종 항구인 읍천항은 신라시대부터 어업이 성했다고 한다.

경주 양남면 읍천리. 신라시대부터 어업이 성했다고 한다. 천년이 넘은 마을인 것이다. 바위가 많아 항구가 되기에는 힘든 지형이었지만 지금은 1종 항구가 들어서 있고 면의 자연부락 가운데 가장 크고 부유하다고 한다. 죽전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의 서쪽 언덕에 대나무 밭이 있어서란다. 휘 둘러보니 과연 항구와 마주보는 언덕길에 대밭이 무성하다. 저 대밭은 얼마나 오래 저곳에 있었을까.

지금은 ‘읍천항 갤러리’ 마을이라 불린다. 몇 년 전부터 벽화거리를 조성하면서 생긴 이름이다. 1981년 양남면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섰다. 면의 발전이 기대되었고, 부인할 수 없는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월성 원전 1호기의 수명연장과 안정성 문제로 한수원과 지역민 간에 마찰이 크다고 한다. 마을 안에서 그러한 마찰과 반발이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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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의 꽃이라 불리는 부채꼴 주상절리.

양남면이 유명해진 것은 2009년 군부대가 철수하면서부터다. 해안 경계지대에 무더기로 있던 주상절리가 일반에게 공개되면서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2010년부터 한수원과 월성 원자력이 ‘읍천항 갤러리’를 조성하면서 관광객은 더 늘었다. 해양경관조망벨트 사업에 선정되면서 마을에는 공원이 생기고 벤치가 놓이고 경관등이 켜지고 벽화는 더욱 늘었으며 바닷가에는 ‘파도소리길’이 열렸다.


◆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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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남면 주상절리군을 따라 이어지는 파도소리길.

읍천항의 남쪽 가장자리, 파도소리길이 시작되는 곳에 읍천항공원이 있다.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주상절리와 길에 대한 안내도가 있고, 배 한척이 둔덕에 놓여 있다. 조그마한 간이 상점에는 ‘피데기 판매’ 문구가 붙어 있고 말린 생선과 해초 등속이 바구니에 담겨 있다. 이 가게가 파도소리길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강력한 시각물이다.


나무 계단을 오르내리고, 해송 사이의 흙길을 걷고, 출렁다리를 건넌다. 소나무 사이를 비집고 바위에 매달린 수두룩한 펜션들을 지나친다. 모래주머니를 쌓아 만든 초소들은 고스란하고 포토존에는 빨간 우체통이 서있다.

작은 자갈 해변에는 커다란 물개 같은 바위가 소리를 지르듯 솟아있고, 읍천항의 등대가 원경으로 서있다. 걷는 내내 바다는 지척이고, 파도는 잔잔하다. “희한하네.” 사람들 몰려 선 전망대에서 목을 길게 빼고 내려다본다. 동해의 꽃, 부채꼴 주상절리다. 대단히 신비롭다. 꼭 살아 있는 듯, 숨 쉬는 듯하다.


이 바다에는 기울어진 것, 누워있는 것, 위로 솟은 것, 모양도 크기도 다른 희한한 주상절리가 더 남쪽의 하서항까지 이어진다. 산책로도 하서항까지, 총 1.7㎞다. 나는 모텔 쪽으로 우회하는 산책로의 이정표 앞에서 돌아 선다. 자갈 해변으로 내려서자 걸음이 자글자글 소리를 낸다. 걸음을 멈추자 바다가 정면으로 다가온다. 바다는 언제나 새로운 힘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분리된 존재라는 무심한 확언과 같았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찾아가는 길

경주에서 동해로 넘어 온 후 31번 국도 울산방향으로 남하한다. 봉길터널 지나면 양남면이 시작되고 주상절리 이정표가 곳곳에 있다. 읍천항 공원 입구에 주차한 후 산책로 따라 10여분쯤 걸으면 부채꼴 주상절리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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