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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청도읍 대호리 대운암

2015-11-27

大雲庵은 楓雲 속에…

20151127
유호2리 입구에서 본 용각산 대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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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돌아 흐르는 청도천과 유호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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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각에서 대운암을 본다. 요사채의 지붕, 관음전, 승방이 같은 방향을 향해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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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암의 독성각. 커다란 바위 위에 독야청청 올라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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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호리 길섶에 조그맣게 조성되어 있는 오누이 공원. 이호우, 이영도 시인의 시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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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천 너머 유천 마을에 가을이 깊고 먼 산 위에 대운암이 어렴풋이 보인다.


청도천 따라 남쪽으로 향한다. 수면을 향해 처연히 고개 숙인 버드나무들을 보며 ‘이제 유천이군’ 생각한다. 청도천과 동창천이 만나는 삼거리에서 급하게 길을 꺾어 내호리로 들어간다. 마을 초입의 집집마다에는 잘 익은 감들이 아직 나무에 매달려 있다. 올해 감은 지나친 풍년이라지, 풍년이 지나칠 수도 있나, 풍년이 지나치면 수확을 포기하기도 한다던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근심 품는 마음이 열없다.

유호리 출신 부암선사
범굴에서 수행하다가
현몽꾸고 1868년 지어
주변 용각산의 暮雨는
청도팔경의 하나 꼽혀

◆ 용각산 대운암

동창천을 따라 내호리의 가장자리를 달린다. 마을의 끄트머리에 ‘용각산 대운암’ 표지석이 있다. 길은 머리 위 하늘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아래에서 산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용각산(龍角山)은 청도의 북쪽, 매전면에 있는 산으로 옛날, 용이 땅을 뚫고 하늘로 오를 때 생겨났다고 한다. 비가 온 후 구름이 용각산의 허리를 감돌아 흐르는 것을 용각모우(龍角暮雨)라 하는데 그 풍경은 청도 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용각산은 남쪽으로 지맥을 뻗어 유천에서 오례산(烏禮山)이 된다. 산정에는 신라시대에 축조된 오례산성이 있다. 오례산은 신라시대 임금(天子)이 제를 지내던 대사지(大祀地)라 한다. 신라시대 천자는 천하의 명산대천에서만 제사 지낸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있다. 오례산은 그 시절 명산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오례산 대운암(大雲庵)이 아니라 용각산 대운암이다. 용은 까마귀보다 힘이 세다.

차 한 대 너비의 임도가 산 사면을 타고 굼실굼실 나아간다. 발꿈치를 치켜들면 저 아래가 보일 정도의 숲이 왼쪽 하늘을 광활하게 펼쳐놓는다. 굽이진 길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급해진다. 잠시 멈춰볼 만도 하건만 조급함이 앞선다. 그렇게 3㎞ 즈음 달리다 보면 몇 그루 키 큰 소나무들이 일주문처럼 서 있는 사이로 수줍게 돌아앉은 해우소가 보인다. 해발 600m가 조금 넘는 오례산 정상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온 501m봉 아래, 대운암이 자리한다.

◆ 세상 다 가진 절집

커다란 바위 위에 독성각이 앉아 있다. 올려다보면 독성각은 정확히 시선을 맞추며 내려다보는데 올라보면 서쪽 하늘을 바라본다. 바위 앞에는 요사채가 자리한다. 원래 법당 건물이었다 한다. 그 옆 높은 계단 위에 대운암의 중심 건물인 관음전이 올라 있다. 2000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라 한다. 관음전 계단 앞 벼랑에 걸려 있던 건물은 철거 중이다. 앞마당엔 일어섰다 내려앉은 먼지가 두꺼워 독성각에서 보는 대운암은 허공에 떠 있는 것만 같다.

허공에 떠 있다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저 아래 청도천이 둥글게 휘돌아 흐른다. 천변의 논밭과 마을들이 한눈에 보인다. 산들은 첩첩으로 이어져 빛 아래 펼쳐져 있는 볼륨들이 장대한 조합을 이룬다. 저 멀리 밀양 땅의 하늘과 더 먼 하늘까지 시선은 경계 없이 뻗어 나간다. 대운암의 어디에서나 그러하다. 세상이 대운암의 경내다.

가파른 돌계단을 피해 느슨하게 에둘러 관음전으로 오른다. 독성각에서는 보이지 않던 작은 전각이 큰 바위에 호위되어 있다. 미니어처처럼 작다. 현판은 없지만 용왕당이라 한다. 바위를 타고 똑똑 물이 흐른다. 그리고 관음전이다. 경산의 반룡사에서 모셔온 목조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하고 있다. 관음전의 오른쪽 위에 세 칸 크기의 전각이 있다. 승방으로 보인다. 아래위를 나누어 위쪽엔 창문을 달았고 아래엔 통유리다. 밖에서는 속이 보이지 않고 안에서는 밖이 보이는 그런 유리인 듯하다. 모로 누우면 세상이 다 보일 것이다. 호사스러워라.

승방에서 숲길을 오르면 산신각이 자리하고 그 뒤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범굴이 있다. 19세기 중반 유호리에서 태어난 부암선사는 산을 오르내리며 이 범굴에서 수행을 했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좌선 수도 중 현몽을 꾸고는 고종 5년인 1868년 암자를 짓는데 그것이 대운암의 시초다. 처음에는 범굴 위에 관음전이 위치했다고 한다. 나무든 돌이든 산이 주는 그대로를 사용해서 불사를 하고 기와도 산에서 구웠을 거라고 전한다. 이후 한 차례 화재를 겪었고 중창을 거쳐 지금에 이른다. 구름이 열리고 몇 개의 빛기둥이 내려온다. 대운암은 그 빛기둥과 같은 눈높이에 앉아 빛 그림자를 덮어쓰고 있고, 눈앞에는 무한한 빛의 입자로 충만한 거대한 공간이 떠 있다. 세상을 다 가진 절집이다.

◆ 용각산 남쪽 끝자락, 유천

용각산의 끝자락에 자리한 마을, 유호리와 내호리. 두 마을은 좁장한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딱 붙어 있다. 유호리는 고려 때부터 유천역이 있던 마을로 옛 기록에 모두 유천(楡川)으로 쓰여 있다. 지금은 통상 유호와 내호를 합쳐 유천이라 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주변 동네를 모두 통칭해 유천이라 부르기도 한다.

산 아래 천변의 마을이라 농사지을 땅은 부족했고, 역이 있었을 만큼 교통의 요지라 상업이 성했던 유천은 오랜 시간 동안 일대의 중심이었다. 100여 년 전에 우체국이 문을 열었고, 일제 강점기에 초등학교가 서고 전기가 공급됐던 마을이다. 그 시절 이호우, 이영도 남매 시인이 유천에서 태어났고, 1960년대에는 영화관도 들어섰다.

이제 마을에는 일제시대부터 있던 정미소와 일식 건물 몇 채가 세트처럼 서 있고, 영화관은 폐허로 남아 있다. 몇 년 전보다 더 낡은 느낌이다. 세상을 떠난 남매 시인의 기억은 동창천변의 자그마한 공원에 새겨져 있다. 유천 마을 뒤에 성큼 솟아있는 산속에 대운암이 어렴풋이 보인다. 세상을 다 가진 절집의 임무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겠다. 텅 비어 있던 골목길에 한 청년의 몸짓이 분주하다. 감을 따고 있다. 감나무 아래에는 감으로 가득 찬 상자가 수북하다. 다만 그 분주함에 안심하는 마음이 열없기는 마찬가지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부산 고속도로 청도IC에 내려 밀양 방향으로 간다. 유호2리 지나 유천삼거리에서 매전 방향으로 들어가면 이호우, 이영도 시인의 생가가 있는 내호리다. 매전 쪽으로 조금 더 가면 오누이 공원이 있고 다시 300여 m 더 가면 대구부산 고속도로 아래에 ‘용각산 대운암’ 이정표가 있다. 임도로 3㎞ 정도 가면 길 끝에 대운암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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