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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28민주운동 58주년을 맞으며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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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28민주운동 58주년을 맞으며
최용호 2·28민주운동 기념사업회 고문

58년 전 오늘, 대구의 어린 고등학생들이 민주와 정의의 성화를 높이 들고 자유당 독재정권에 맞서는 저항운동을 벌였다. 일요일인데도 등교하라는 당국의 부당한 명령에 항거해 대구시내 8개 국공립 고등학교 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옛 경북도청(경상감영공원 자리)으로 몰려갔다. 일부 학교는 교내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야간 데모를 하는 등 시위의 양상은 다양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정부 수립 후 최초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공포정치가 휩쓸고 있는 암울한 시절에 고등학생들이 왜 겁 없이 대규모 시위에 나섰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야당인 민주당 후보의 유세에 참석을 막으려는 일요일 등교 명령이 너무나 부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자유당의 장기 집권, 부정과 부패, 실정(失政)이 절정을 이루었고, 절대 빈곤과 불법적 인권유린이 극에 달한 시대상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반 시민과 대학생들조차 침묵을 강요받고 있을 때 불평과 불만의 화약고에 불을 붙인 것이 2·28이다. 대구에서 점화된 민주주의의 횃불은 대전, 청주, 부산, 광주 등 지방 도시로 번져나갔다. 3월15일 4대 정·부통령 선거 날에는 자유당 정권에 의한 대대적인 부정·불법선거가 전국적으로 자행됐다. 마산에서는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김주열 열사와 같은 희생자도 나왔다.

4월 들어 18일 고려대 학생시위, 19일 경무대로 진격하는 전국적인 규모의 시위가 일어나 1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하와이로 망명함으로써 제1공화국은 막을 내렸다. 결국 4월 혁명은 1960년 2월 말에 시작해 4월 하순에 매듭지어졌다고 볼 수 있다.

7월 총선에 의해 수립된 제2공화국은 1961년 5월 쿠데타가 일어남으로써 단명으로 끝났다. 군사정부 하에서 2·28, 3·15, 4·19 등 민주화운동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오랜 암흑기를 보냈다.

2·28민주운동이 처음으로 국가적 평가를 받은 것은 2000년이다. 2·28 제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이 축사를 통해 ‘2·28민주의거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효시(嚆矢)로 전 국민에 의해 정당하게 평가되고 추앙돼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국가원수에 의한 역사적 평가가 있었음에도, 2001년 6월 제정된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화법’에는 2·28에 관한 언급이 전연 없었다. 18대 국회에 들어와 작고한 이해봉 의원이 대표발의해 2009년 12월 이 법의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2·28운동이 3·15나 4·19에 앞선 민주화운동의 선도자로서의 법적 위치를 확보하게 됐다.

2016년부터 추진된 ‘2·28민주운동 국가기념일 지정’ 운동의 결실로 오늘 대구 콘서트하우스에서 대한민국의 마흔여덟 번째 국가기념일 행사가 열린다. 매우 감격스러운 일이다.

2·28민주운동은 21세기의 새로운 시대정신을 반영해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특히 선진국 진입을 앞둔 시점에서 민주주의의 생활화에 역점을 둘 필요가 있다. ‘내로남불’의 독선과 아집·독단을 청산하고, 상대방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존중·배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여러 가지 갈등과 상극 그리고 뗏법과 패거리문화를 청산하고, 법치와 신뢰·협력 그리고 상생과 통합의 문화를 꽃피우는 일에 우리 모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최용호 2·28민주운동 기념사업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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