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동안에는 아프지 않고
일상의 무탈함이 행복인 걸
대다수 사람들은 잊고 지내
어렵고 힘든 시기 지나가면
봄날이 온다는 희망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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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효 국제자산신탁 상임고문 |
지난 11월16일, 토요일 아침이었다. 배달된 주말판 모 일간지 1면 하단에 실린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주름지고 거칠어진 손을 희고 고운 손이 살포시 감싸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 인물은 건설현장에서 50년 넘게 막노동을 해온 아버지와 잘 자란 아나운서 딸이었다. 이 부녀의 애틋한 이야기가 1면과 2면에 걸쳐 이어졌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신문기사도, 딸이 자신에 대해 쓴 책도 읽지 못하는 아버지는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50년 넘게 건설 노동자로 살면서 매일 새벽 4시30분에 집을 나섰다가 저녁에 퇴근해 8시가 넘으면 잠이 드는 아버지. 그렇게 아버지는 자식 세 명을 키워냈고 막내딸은 아나운서가 됐다. 아버지의 거친 손이 부끄러웠던 딸은 아버지의 직업을 숨겼지만 뒤늦게 깨달았다. 평생 정직하게 노동하고 열심히 삶을 일궈낸 부모가 자신을 사랑으로 키워냈다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기적임을. 임희정 아나운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삶을 기록한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라는 책을 지난 10월에 출간했다.
11월21일, 모 일간지 1면 하단에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굵은 글씨의 헤드라인 좌우로 1천200명의 사망자 명단이 실려 있었다. 2018년 1월1일부터 2019년 9월 말까지 산업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이의 이름과 나이, 사망원인이 별다른 서술 없이 간명하게 인쇄된 기사였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라는 제목의 특별한 기획시리즈의 출발이었다. 이 기획기사는 ‘날마다 한 명꼴로 떨어져 죽고, 사흘에 한 명 끼어서 죽는’ 참담한 현실을 조용한 어조로 강력히 고발했다. 기사는 ‘곳곳이 지뢰밭인 안전 사각의 소규모 현장’을 묘사하고 그런 죽음의 자리로 또다시 밥벌이하기 위해 가야만 하는 이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오롯이 담고 있다. 기획기사는 노동자의 죽음에 무감각해진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으며 현장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기업의 이윤추구나 비용절감보다 훨씬 더 고귀한 가치임을 일깨워주었다.
2018년에 29만8천820명이 사망했다. 주요 사망원인은 암, 심장질환, 폐렴, 뇌혈관 질환, 고의적 자해(자살) 순이었다. 그러나 10~39세의 사망원인 1위, 40~50대의 사망원인 2위는 놀랍게도 고의적 자해였다. 한해 1만3천670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통계청의 ‘2018년 생명표’에 따르면 2018년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82.7년이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기간은 64.4년이라고 한다. 나머지 18.3년은 질병과 사투를 벌이며 살아간다는 의미다. 우리가 흔히 건강하라고 주고받는 인사말 속에 담긴 뜻을 새삼 느낀다.
몇 년 전, 고향 다녀오는 길에 차안에서 들었던 ‘양화대교’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생소한 리듬이었지만 마음을 울리는 가사에 끌려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다. “우리 집에는 매일 나 홀로 있었지/ 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 (…)새벽마다 퇴근하신 아버지주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날의 나를 기억하네/ 엄마 아빠 두 누나/ 나는 막둥이, 귀염둥이/ 그날의 나를 기억하네/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라는 가사의 노래다.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는 일종의 자기암시와 소망을 뛰어넘는 애절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는 동안 아프지 않는 것이 큰 축복이며 일상의 무탈함이 큰 행복임을 대다수 사람은 잊고 있다. 너무 큰 것을 바라고 매달리다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그냥 지나치기 쉽다.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중략… /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라는 김종해 시인의 시 ‘그대 앞에 봄이 있다’처럼 어렵고 힘든 시기가 다 지나가고 나면 반드시 봄날이 온다는 희망을 간직하면 좋겠다. 모두에게 새해는 희망을 꽃피우는 한해가 되길 소망한다. 아프지 말고 행복한 새해.
김병효 국제자산신탁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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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https://www.yeongnam.com/mnt/file/201912/20191220.01022080944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