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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철학자 최진석(1)

2020-06-05

4차 산업혁명 시대 새로운 세상의 철학 '새말 새몸짓' 운동

최진석1
동양의 재료를 갖고 철학을 한다고 말하는 최진석 <사>새말새몸짓 이사장. 그는 젊은 날 질풍노도의 방황기를 끝내게 만든 베이징대 철학과 교수 탕이제와의 만남 덕분에 1998년 서강대 철학과 교수가 됐고 18년 봉직 후 무림으로 나왔다. MBN 지식콘서트, EBS 인문학강좌 등을 거쳤고 새로운 학문을 바라는 이들을 위해 인문학 서당 같은 '건명원' 개원을 주도해 초대 원장을 맡는다. 지금은 '새말새몸짓'이란 대안철학 강학원 같은 공간을 서울과 고향 함평 두 곳에 차려놓고 새로운 철학운동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는 생각하는 걸 갖고 여태껏 밥 먹고살고 있다. 나는 동양철학자, 아니 그냥 철학자 최진석이라 해 두자. 동·서양 철학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난 동양적 재료를 갖고 내 방식의 철학을 하고 있다. 내가 철학을 운운한 탓일까, 변호사로 잘살고 있던 내 아들놈도 갑자기 천직을 때려치우고 나처럼 철학자의 길로 들어서겠다고 선언을 해 버렸다. 잘된 일이겠거니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제자에게 철학의 내용을 시시콜콜 알려 주는 게 아니다. 철학 하는 방법을 도와줄 뿐이다. 내 방식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그의 철학이 확고해지도록 도와줄 뿐이다. 내가 어찌 남의 사유를 새로 짜줄 수 있단 말인가. 그건 혹세무민이 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난 그 사람만의 사유가 잘 출산될 수 있도록 옆에서 거들어주는 '산파(産婆)'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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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생각혁명의 스토리가 담겨있는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

젊은시절, 내 이름같이
진저리 치는 나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시궁창 같이 학대한 일상

베이징대 탕이제 교수가 쓴
운명의 책과 만남
혼돈에서 찾은 질서
강단에서 무림 이동
세상사람과 삶의 지평 확장

최진석(崔珍晳). 내 이름 안에는 남들에겐 언감생심인 우여곡절의 해프닝이 숨어 있다. 얼마 전 환갑을 맞으면서 제자들과 함께 내 태생지에 파묻혀 있을 '탯줄'을 찾아 나섰다. 유치환 시인의 '생명의 서'란 한 편의 시 때문이다. 내 나이 열여섯부터 외우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 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란 첫 구절이 확 내 피를 끓게 만들었다. '또다시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배우기 시작하라!' 본연한 자태는 바로 내 탯줄이다.

전남 함평(咸平)이 고향이지만 출생지는 목포에 딸린 섬 하의도(荷衣島)에 굵은 지렁이처럼 붙어 있는 장병도(長柄島). '장병'은 '긴 자루'라는 의미다. 60여 년 전 아버지는 하의국민학교 장병분교로 발령이 나자 어머니와 함께 이 섬에 오셨다. 어머니는 입도 1년여 만에 학교 관사의 좁고 어둑한 방에서 날 낳으셨다.

아버지는 장병도의 지명을 따서 내 이름을 지었다. 장병도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섬을 '진절'이라고 부른다. 긴 자루의 전라도식 발음이 '진 자리', 이것이 세월을 이겨내며 '진절(珍절)'로 굳은 것 같다. 첫 이름은 최진절. 4세 때 함평으로 이사 왔다. 거기 살자니 진절이란 이름의 어감이 좋지 않았다. 아이 장래가 문제가 될 것 같다고 판단한 아버지가 면사무소에 들어가 공문서위조(?)를 감행한 것이다. 준비해 간 만년필로 재(才) 변에 한 획을 더 그어 목(木)으로 만들어버렸다. 모르긴 해도 한국 개명 사상 초유의 촌극이 아닐까 싶다.

내 젊은 시절도 내 이름 같았다. 진저리치는 나날이었다.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세월이랄까.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키에르 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 프랑스 소설가 카뮈의 소설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가 품은 부조리의 철학, 그리고 형극의 극을 보여주는 신의 눈밖에 난 시포스의 끊임없이 산 아래로 떨어지는 바위를 정상으로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 그게 복합적으로 내 영혼을 난도질해댔다. 나를 만나려고 해도 난 내가 누군지를 알 수 없었다. 내가 누군지 모르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를 수밖에. 난 내 일상을 거의 시궁창에 가깝도록 학대했다. 광주 대동고를 나와 서강대 철학과에 들어갔다. 그 시절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난 극악무도한 광인이었다.

1986년 어느 날이었다. 운명의 책 한 권을 접하게 된다. 훗날 베이징대 철학과 내 박사학위 지도교수가 되는 탕이제(湯一介) 교수가 지은 '곽상과 위진현학'이었다. 내 맘의 혼돈이 질서를 찾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난 그분을 사표(師表)로 정했다. 그를 만나고 싶어 편지도 썼다. 급기야 1990년 중국으로 유학을 갔고, 93년 사제지정을 맺게 된다. 내 박사학위 '성현영적장자소연구(成玄英的莊子疏硏究)'도 그런 연유로 태어날 수 있었다.

98년부터 서강대 철학과에서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18년간 구름에 달가듯 내 일상은 평온하게 흘러갔다. 그러다가 나의 철학적 동선은 강단에서 벗어나 무림(武林)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2016년 대학을 그만두고 세상 사람과 만나기 위해 종합채널 MBN '지식콘서트'를 노크하게 된다. 내 삶의 지평이 또 출렁되기 시작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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