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부활 25년이 지나면서
누가 출마하는지, 자질 제대로 갖췄는지
주민들은 전혀 알 수 없는 '깜깜이 선거'
전체 임기의 반환점을 돌아 전국 지방의회가 후반기 의사 일정을 시작했다. 남은 2년간 누가 의회를 어떻게 이끌어가느냐는 지역사회의 중요 이슈지만, 지역주민들은 정작 의장 선거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됐다. 어떤 인물이 어떤 포부와 의지를 갖고 지방의회를 이끌어 가는 지 알 길이 없다. '교황식 선출 방법'이라 쓰고 '물밑 합종 연횡' 또는 '깜깜이'라고 읽는 의장단 선출 방식 때문이다.
◆깜깜이로 전락한 선출 방법
교황식 선출 방법의 애초 도입 취지는 좋았다. 교황을 선출하듯 이전 투구나 과열 경쟁 없이 정파를 초월해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는 인물을 선출하자는 의도였다. 이름은 그럴 듯해 보이나 지방의회 부활 25년이 지나면서 누가 출마하는지, 자질은 제대로 갖췄는지, 지역주민들은 전혀 알 수 없는 '깜깜이 선거'로 전락했다.
공개적인 유세나 선거운동 없이 물밑에서 지지 의원들을 확보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상임위원장 등 자리 나눠 갖기가 횡행하고 심지어 금품이 오가는 일도 있었다. 중앙 정당이나 지역구 국회의원이 의장단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문제다. 가뜩이나 정당공천의 폐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지방자치 기능을 더욱 퇴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게 뻔하다. 모든 의원이 후보가 되다 보니 다수의 사표가 발생하는 부작용도 발생한다. 실제로 강원도의회는 2012년 8대 후반기 도 의장 선거 과정에서 다수의 의원이 1표씩 받는 촌극이 연출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주민의 대표이자 입법 기관인 수장을 선출하는 중요한 과정을 시민들은 전혀 알 수도 없고 여론도 수렴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의장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후보 등록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후보자의 각종 이력과 학력, 재산, 의정활동 내용 등을 골고루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밀실에서 이뤄지는 현행 의장 선출 방식을 손보자는 것이다.
교황 선출 방식이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현행 지방자치법은 '지방의회는 의원 중에서 의장과 부의장을 무기명투표로 선거해야 한다'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세부 선출 방식은 각 의회 재량에 맡겼다. 1991년 3월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지방의회들이 한결같이 택한 것이 교황 선출 방식이다. 별도의 후보 등록 없이 전체 의원이 후보가 돼 무기명 비밀투표로 의장이나 부의장을 뽑는다.
◆후보자에 대한 검증 가능해야
이런 가운에 배지숙 대구시의회 전 의장은 교황 선출 방식의 의장단 선거 개선을 요구하며 의장 선출 방식에 대한 개정을 제안해 '후보등록제'에 불을 지폈다. 배 의장은 "현재 방식이 선거 과열방지에는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의원이 후보로 나왔는지 알 수 없고, 후보자들의 의회 운영에 대한 견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상수 대구시의회 의장도 "최소한 정견 발표라도 해야 한다는데 의원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의원들의 의견을 모아 후보등록제 도입을 목표로 내부적인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전국 17개 광역의회 가운데 7곳은 후보 등록제이고, 3곳은 정견 발표 후 의장을 선출한다. 2007년 부산시의회를 시작으로 광주, 전남, 대전, 울산, 경남, 강원도의회가 후보등록제로 변경했다. 또 세종, 전북, 충북 3개 시·도의회는 교황선출방식으로 하되 후보 정견발표는 허용하는 절충안을 채택했다. 대구를 비롯해 경북, 서울, 경기, 인천, 충남, 제주 등 7개 시·도의회는 교황선출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또 대구지역 8개 구·군 기초의회의 경우 중구, 동구, 남구는 교황선출방식을 서구, 북구, 수성구, 달서구, 달성군은 후보등록제를 선택하고 있다.
물론 후보 등록제 도입만으로 교황 선출 방식의 폐단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후보 등록제에 추가적인 공개 검증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부족한 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의 공통된 견해다.
강금수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비공개적으로 이뤄지는 의장 선출 과정은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이렇게는 안 한다. 의장 선거가 무슨 인기투표인가"라며 "패거리와 야합 대신 발표와 토론 등을 통해 리더십과 비전, 능력을 검증해 일하는 의회, 책임감 있는 의회의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