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합=유해' 아니다…첨가물 없인 가공식품 생산 불가능
'식품공전'에 의거,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가공식품에는 다양한 첨가물이 의무적으로 들어가게 돼 있다. 그 첨가제의 정체가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냉장고를 열어 다양한 소스제품의 뒷면을 꼼꼼히 살펴보라. 일단 단무지 라벨을 보자. 합성감미료, 합성보존료 등 식품첨가물이 많이 들어 있다. 주원료인 무와 소금 외에 사카린나트륨, 소르빈산칼륨, 아황산나트륨, 구연산과 비타민C, 치자황색소 등이 패키지처럼 들어간다. 사카린나트륨은 단맛을 내고, 구연산과 비타민C는 산패를 방지한다. 소르빈산칼륨은 식품의 보존성을 높이려고 넣는데 알레르기에 민감한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 아황산나트륨은 식품의 산패를 방지하고 부패를 막아 보존 효과를 높이는 산화방지제다. 하얀 빛깔보다 노란빛을 띤 단무지가 더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과거에는 단무지에 '식용색소 황색 제4호'를 첨가했다. 하지만 현재는 단무지 등 절임식품에 식용색소 황색 제4호 같은 합성착색료는 쓸 수 없다. 합성착색료라 불리는 식용 타르 색소는 석탄이나 석유에서 추출한 것으로, 음료수·사탕·과자 등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환경부 등에 따르면 우리 생활 주변에서 사용되고 있는 화학물질은 50만 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가운데 유해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유해화학물질은 900종 정도만 지정돼 있다. 식품첨가물은 650여종, 물론 그 첨가량에 허용치가 있다. 첨가물의 허용기준치를 정하는 데는 해당 물질의 독성 검사를 거친다. 보통 쥐 등의 실험동물에 이들 물질을 장기간 공급하고 나타나는 부작용을 체크해 결정한다. 많은 식품첨가물에 'LD50'이라는 수치가 있다. 이는 실험동물에 일정 기간 식이로 얼마를 투여했더니 투여군의 50%가 죽었다는 수치다. 대부분의 첨가물에 이런 측정치가 정해져 있다.
그러면 우리가 먹는 식품에는 어느 정도의 양까지 허용하는 걸까. 동물에 경구 투여했을 때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 양의 100분의 1을 사람의 ㎏당 안전한 양으로 정하고 1일 섭취허용량을 50㎏ 성인을 기준으로 표시하고 있다(Acceptable Daily Intake, ADI).
식품파동에 '케미포비아' 확산
크릴오일 시판 제품 41개 중 12개
식약처서 '부적합 판정' 내렸지만
해당 조사관은 "평생 먹어도 무해
유해성 판단 기관 아니다" 선그어
왜곡된 정보 바로잡을 필요성
전문가 "첨가물, 양념의 법률용어"
유해물질 허용기준은 제도적 장치
천연·전통식품만 안전하다는 주장
오히려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아
◆크릴오일 파동사례
지난 6월9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시중 판매 중인 41개 크릴오일 제품 중 12개를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소비자들은 크릴오일은 '독약'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식약처의 반응은 이와 딴판으로 돌아갔다. 식약처는 크릴오일 조사 결과 보도자료에 '부적합' '전량 회수' '수사 의뢰' 등의 다소 강력한 표현을 썼다. 소비자들이 '부적합'을 '유해하다'로 이해한 것도 식약처의 이 같은 단어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부적합 크릴오일을 먹었을 때 어떤 문제가 있느냐'는 질문에 식약처 해당 조사관은 "평생 먹어도 해가 없다"고 답했다. 또 "식약처는 식품첨가물 관련법 등을 준수했느냐를 판단할 뿐, 인체 유해성을 판단하는 기관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가공식품과 포장식품 범람에 식약처가 케이스별로 첨가제 유해 여부를 다 족집게처럼 잡아낼 수도 없는 처지다. 식품공학에 문외한이랄 수 있는 소비자들은 누가 나쁘다고 한 마디만 해도 당국과 특정 식품을 '마녀사냥'하듯이 때려 잡으려 한다. 그것 또한 식품테러랄 수 있다.
◆첨가제와 식품파동
불량만두(2004)·멜라민분유(2008)·가짜 백수오(2015)·살충제 계란(2017) 등 국내 식품안전사고들이 일어날 때마다 식품 이슈를 둘러싼 소비자들의 불안감과 식품업계 및 정부 대처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는 계기라는 평가와 근원적이고도 종합적인 분석보다는 문제 제품 위주의 단편적인 사후 처방에 그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가공식품이나 생활용품에 들어간 화학원료의 유해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케미포비아(화학물질공포증)'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는 안전하다 주장해도 소비자는 왠지 첨가제는 '천사를 가장한 악마'라는 선입견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에 식품회사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가급적 자연(천연)에 가까운 식품을 팔려고 한다. 건강기능식품 역시 첨가물이나 화학적 부형제를 배제한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신선식품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동원F&B는 지난해부터 원물 간식 브랜드 '저스트(JUST)'를 통해 최소한의 가공으로 자연 재료 본연의 맛과 영양을 살린 간식을 선보이고 있다. 양파칩과 당근칩, 코코넛칩 2종, 무화과·살구 건과 등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는데, 양파칩과 당근칩은 생양파와 생당근을 통째로 썰어 진공저온공법으로 튀겨낸 제품이다. 건과일은 자연건조했으며 설탕·색소·보존재를 넣지 않았다.
◆식품학계의 생각은
한국식품영양과학회는 2018년 6월12일 식품첨가물의 국내외 최근 동향 및 활용 전망을 주제로 2018년 한국식품영양과학회 산업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들은 '국가에서 안전하다고 인정하여 식품에 사용을 허용하고,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일부 식품첨가물에 관한 왜곡된 정보들이 일부 대중매체를 통해 전파되고 있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품공학계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는 "나는 안전하다는데 한 표를 던지고 싶지만 조금은 불안한 구석이 없진 않다. 현재 사용 중인 대체감미료엔 천연물질로서 첨가량에 규제를 받지 않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그 양을 제한한다"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탄소문화원장)는 첨가물을 더 부드럽게 수용한다. 그는 "식품첨가물에 대한 논란도 대부분 무의미한 것이다. '식품첨가물'은 가공식품에서 사용하는 '양념'을 뜻하는 법률 용어다. 단맛을 내는 감미료, 원하는 색깔을 내도록 해주는 착색제, 원하지 않는 색깔을 제거해주는 표백제, 식품의 산화를 방지해주고 유해 미생물을 제거해주는 보존제 등이 모두 식품첨가물이다. 양념을 넣지 않고 음식을 조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식품첨가물을 넣지 않으면 가공식품을 생산할 수는 없다. 가공식품을 '식품첨가물 범벅'이라고 한다면, 가정에서 조리한 음식도 '양념 범벅'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유해물질의 허용기준은 인체 유해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고속도로의 속도제한과 마찬가지로 유해물질의 농도가 허용기준을 넘었다고 반드시 위험하고, 허용기준을 넘지 않았다고 반드시 안전한 것이 아니다. 허용기준은 가공식품의 생산과 유통을 제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준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연에서 생산되는 '천연' 식품과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전통' 식품만 안전하다는 극단적인 자연·생태주의 주장도 경계해야 한다"면서 우리를 안심시킨다. 그는 심지어 "전통식품에 대한 안전성이 현대 과학적으로 분명하게 확인된 경우도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춘호 음식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기자의 생각은
감정적 대응 익숙
첨가물 편견 대신
'동고동락' 자세를
소비자는 최소량이라도 믿을 수 없다고 고집하고, 과학자는 최소한의 양이라 믿고 먹어도 된다고 한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어떤 현상에 대해 과학적 사실도 일순간 붕괴시켜버리는, 일종의 감정적 대응에 무척 익숙해져 있다.
현재 인류가 구축해놓은 이 천문학적인 문명의 이기는 온전히 자연과 천연의 상태로 존재하는 건 하나도 없다. 제주도가 중국발 미세먼지와 거리가 먼 것 같지만 실은 육지와 동일하게 노출돼 있다. 그 미세먼지는 물 좋고 공기 좋다는 심신산골 채소 위에도 동일하게 스며든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내뱉는 치약물에 들어가 있는 마모용 초미세 플라스틱 입자가 그대로 생수로 회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생수를 들여다보라. 미세먼지가 둥둥 떠다닌다. 어쩌겠는가.
소시지 등 가공육은 첨가물의 보고랄 수 있다. 소비자의 걱정대로라면 우린 다 암에 걸려 병원 입원실에 누워 있어야 될 것 같은데 의사의 도움을 적절하게 받는다면 우린 평균 100세를 살 수 있는 초장수시대를 살고 있다. 이 또한 얼마나 아이러니한 사실인가.
우린 천연식품만 먹고살 수가 없다. 첨가물이 들어간 식품과 동고동락해야 된다. 그러니 첨가물은 무조건 나쁘다란 인식은 '나는 현대인이 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생각을 좀 바꿔야 한다. 제대로 된 첨가물, 천연에 가까운 첨가물을 더 개발하도록 식품학자와 식품회사에게 요구를 해야 된다. 첨가물은 나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상태의 첨가물시대를 우리 소비자들이 유도해야 한다. 그게 '식주주의(食主主義)'국민의 의무랄 수 있다.
이춘호 음식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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