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을 추대한 대구상의
-20년 추대 전통을 이었으니,
-이젠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기업인도 있는 곳이라는
-예전의 영광을 되찾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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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하 삼보모터스 회장이 19일 제24대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추대됐다. 이로써 대구상의는 2001년 이후 20년간 회장을 추대한 전통을 이었고, 이 회장은 연임했다.
IMF외환위기 전후에 대구상의를 취재했던 필자는 유독 회장에 대한 기억이 강하다. 먼저 떠오르는 분은 고인(故人)이 된 채병하 전 대구상의 회장이다. 1997년과 2000년, 치열한 경선을 통해 대구경제계의 수장이 된 분이다. 당시 경선 후유증에 대한 대구경제계의 반성과 경험이 지난 20년간 추대의 전통을 쌓게 한 원동력이다.
필자의 기준으로 볼 때, 채병하 회장이 역대 대구상의 회장 중 가장 영향력이 컸다. 김대중 정부시절에, IMF외환위기라는 시대적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부도로 쓰러지는 대구기업들이 속출할 외환위기 당시, 지역기업들이 중앙에 도움을 요청하는 중요한 공식 채널이 대구상의였다. 게다가 채 회장은 정치권 인맥도 좋았다. 그래서 부도난 기업의 사주가 채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채 회장은 이들을 돕기 위해 중앙과 접촉하는 모습을 출입기자로서 여러 차례 봤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소중한 취재원이기도 했다. 필자가 지역경제와 관련해 한 개의 이야기를 해주면, 자신이 알고 있는 여러 가지 고급 정보를 줬던 분이 채 회장이었다.
이인중 화성산업 회장과 김동구 금복주 회장은 대구상의 회장이 되기 전, 처음 봤을 때의 이미지 때문에 지금도 좋은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회장은 1995년 사회부 기자때 처음 봤다. 취재차 이 회장 집을 찾아갔을 때, 필자를 집안으로 들이면서 차 한잔 주던 이 회장의 온화한 이미지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대구상의 회장으로 만났을 때도, 온화한 표정과 처신은 여전했다.
김동구 회장은 1996년 중국 출장을 같이 갔을 때, 술자리에서 그가 했던 농담 때문에 유쾌한 인물로 기억한다. 그는 "여기에 술 제조 면허 있는 사람은 나뿐이니, 폭탄주는 내가 만든다" 고 말해, 일행들을 웃게 했다. 훗날 금복주 출입기자로 대구 성서공장을 찾아 갔을 때, 회사 입구까지 배웅할 정도로 외부손님에게 깍듯했다. 대구상의 회장때도 약속시간 5~10분전에 먼저 나와 상대를 기다리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강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마음은 부드러운 분이라는 게, 내가 김 회장에게 갖는 인상이다. 그래서 금복주가 비판받을 일이 생겼을 때, 필자는 비판을 잘 새겨서 지역민에게 사랑받는 회사로 거듭나길 응원한다.
한때 대한민국이 인정하던 기업인들도 대구상의에서 만났다. 백욱기 동국무역그룹 창업주는 동국무역 대구사무실에서도 자주 뵀다. 필자를 손주처럼 맞아주셨다. 필자가 대구경제계에 원로가 없다고 말할 때, '예전의 백욱기 회장 같은 분'을 원로의 전형(典型)으로 삼는다. 동국무역이 대한민국의 대표 섬유기업으로 건재할 때, 회사의 규모나 오너의 인품이 다른 기업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강덕수 전 STX 그룹 회장도 대구상의에서 만났다. 그가 쌍용중공업 대구공장장일 때, 대구상공의원으로 활동했다. 대구경제계 돌아가는 이야기를 필자에게 들으려고 소주잔을 같이 기울였던 기억이 난다. STX그룹 회장이 된 이후 대구상공의원들을 STX 공장으로 초대해, 대구상의와의 인연을 되새겼던 분이다.
이외에도 함정웅 전 대구염색산업단지 이사장, 하영태 전 달성상의 회장 등 한때 대구경제계를 쥐락펴락했던 분들도 대구상의를 취재하면서 만났다. 요즘 대구상의는 예전과 달리 기업인과 기자의 접촉이 뜸한 곳이 돼 버렸다. 동시에 대구상공의원들중에 대구를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꼽히는 인사도 줄어든 것 같다. 예전보다 나빠진 대구의 경제상황이 대구상의에서 보인다.
<교육인재개발원장 겸 CEO 아카데미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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