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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
지금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에서는 '영점: 세기 중엽의 드로잉'이라는 기획전을 열고 있다. 여기에 이중섭의 은지화 '요정의 나라' '낙원의 가족' '신문 읽는 사람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이 작품들은 대구와 인연이 깊다. 이중섭은 1955년에 대구에 머물렀고 시인 구상의 주선으로 대구 미국공보원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그림이 팔리지 않았지만 당시 이 공보원의 원장이었던 아더 맥타가트가 세 점을 구입하여 그 미술관에 기증하였다. 그 미술관이 이 그림들을 전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은지화는 담뱃갑의 은박지에 그린 것이다 보니 크기가 15㎝×8㎝ 정도다. 세 작품을 한 액자에 넣어 걸었는데, 그 옆에는 세로가 2m나 되는 대형이 있어 거의 눈에 띄지도 않는다.
현대미술의 흐름을 짚어내고 선도하는데 이 미술관만큼 권위 있는 기관도 없을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전시회 관련 기사를 "추상표현주의 너머: 현대미술관, 1950년대 미술을 재고하다"라고 제목하고, 이 기획전은 1950년대엔 루이즈 부르주아, 야요이 쿠사마, 앙리 마티스, 잭슨 폴락, 알프레드 볼피 등의 작품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운동·지역·세대를 달리하는 다양한 작품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고 한다. 전시된 58명의 작품 79점은 당시 풍미하던 추상표현주의에 가려져 있었음도 암시한다. 독학한 화가 이중섭의 '신문 읽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그의 그림은 기증될 때에는 큰 가치를 두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가치가 살아나고 있다고 언급한다. 1950년대 작가들은 큰 전쟁 뒤라 정신적으로 제로 상태에 있었지만, 이중섭만큼 처절한 '영점'에서 시작한 작가도 없으리라.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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