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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아 사회적기업 〈주〉공감씨즈 대표 |
어느 날 나는 선진국 국민이 되었다. 지난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개발도상국 그룹 A에서 선진국 그룹 B로 지위 변경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6일 국무회의에서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설립된 1964년 이래 최초의 일로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라면서 "국민들께서도 피와 땀으로 이룬 자랑스러운 성과라는 자부심을 가져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그러니까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교를 다닌 50대의 나는, 태어나보니 개도국 국민이었다가 반백년 만에 선진국 국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자긍심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오지 않는 걸까.
대통령이 자부심을 가져달라고 밝힌 날, 나는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심의위원으로 참석했다. 진술하러 온 여성 노동자가 있었다. "산재 신청해서 죄송하고요. 13년 일하면서 저번에 산재되고 회사에 미안해서 빨리 복귀할라꼬 열심히 애썼는데, 또 이렇게 돼서…, 빨리 일하고 싶어예"라며 울먹였다.
2020년 한 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은 2천62명이다. 참고로 작년 1월3일 이후 지금까지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은 2천55명이다. 지난 한 해 전국 체불임금 총액은 1조5천830억원, 2021년 최저 시급은 8천720원이다. 미국의 경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연방정부 계약직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10.95달러(한화 1만2천193원)에서 15달러(한화 1만7천115원)로 인상되었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연간 노동시간은 1천927시간으로 선진국 그룹 B내에서는 가장 길다. 독일이나 덴마크의 근로시간은 1천400시간 미만이고, 미국의 근로시간은 1천767시간이다.
이제 막 선진국 그룹으로 진입했는데, 바로 비교하는 건 좀 심하지 않느냐고? 경제규모(명목 국내총생산(GDP))가 세계 15위권에 들어간 게 벌써 20여 년 전이고, 2018년부터는 10위가 되었다. 공식적으로 선진국이라는데도 선진국 국민이라는 감흥이 그다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선진국은 대체로 경제 발달 관련 지표가 주된 기준이 된다. 여러 가지 인간의 삶과 관련된 지표를 조사해 각국의 인간 발전 정도와 선진화 정도를 평가한 지수인 인간개발지수를 적용하면 2020년 한국은 23위였다. 1위는 노르웨이였다.
그렇다. 고도의 산업 및 경제 발전을 이루기는 했는데 국민의 삶의 질이 높은지는 확신하지 못해서였다. 로켓 배송, 새벽 배송, 샛별 배송이 당연하고, 대학교 청소노동자가 담당 건물의 이름을 영어와 한자로 쓰는 시험을 보고, 청소노동자가 화장실 한 칸에서 점심을 먹고, 어떤 이는 그러지 않으려면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하지 그랬냐고 SNS에 올리는 현실이 가슴을 눌렀기 때문이었다.
'떨어지면 죽습니다'. 건설 현장에 붙어있는 현수막을 보며 섬뜩했던 날이 떠오른다. 추락사고 방지를 위해 모든 공공공사에서는 시스템 비계(일체형 작업 발판)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다.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기존의 강관비계(일반 재래식 작업 발판)를 사용하는 이유는 법적 의무가 아니기도 하고 공사비가 더 상승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선진국이 되면 그런 상승분도 감당할 마음이 생기는 걸까. 산재는 어느 정도 규모이면 감내할 만한 수준일까. 선진국에서는 청소노동자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산재 신청하는 거, 죄송한 거 아닙니다. 해도 괜찮습니다." 그날 나는 이렇게 말했지만, 이것만으로는 괜찮지 않은 것이다.
김성아 사회적기업 〈주〉공감씨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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