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도쿄올림픽에 열광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발생한 사상 첫 무관중 올림픽에 관심도가 낮을 것이란 예상이 빗나간 셈이다. SNS 활성화로 인한 '쌍방향 응원 문화'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투영되면서 올림픽에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 '아기 주몽' 김제덕, '고독한 안산방'
TV보다 스마트폰에 익숙하고, 단순 해설을 듣는 것보다 양방향으로 소통하는데 더 흥미를 느끼는 MZ세대는 새로운 응원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7시, 네이버 라이브 방송엔 2만여명이 동시 접속해 야구 경기를 시청했다. 함께 모여 응원을 할 수 없지만, 실시간 채팅으로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경기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직장인 배모(32·대구 동구)씨는 "코로나 시국이라 예전처럼 친구들과 모여 경기를 보기 어려운데, 모르는 사람들과도 친구처럼 대화하며 경기를 즐길 수 있어 재밌었다"고 했다.
2000년대생을 일컫는 Z세대 선수들의 적극적인 소통도 올림픽 흥행에 한몫했다. 지난 1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고독한 안산방'에 양궁 3관왕 안산(20·광주여대)선수가 등장했다. '고독한 OO방'은 특정 주제를 두고 사진으로 소통하는 채팅방이다. 이날 '고독한 안산방'에서 안산은 팬들의 질문에 직접 답했고, 셀카를 찍어 올리기도 했다. '온라인 팬미팅'이 진행된 셈이다.
진모(26·대구 북구)씨는 "채팅방에서 안산 선수와 직접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정원이 꽉 차 들어가지는 못했다"며 "선수와 직접 가깝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게 특별한 기분을 준다"고 했다.
올림픽에서 활약한 선수들의 별명, '짤방'(짧은 동영상)을 만들고 공유하는 놀이 문화도 MZ세대에게 인기다. 올림픽 양궁 2관왕 김제덕(17·경북일고)은 '주먹밥 쿵야', '아기 주몽' 등의 별명을 얻었다. 그의 '팬아트'는 SNS에 공유되고 있다.
친구들과 이른바 '김제덕 짤'을 이모티콘으로 만들어 사용한다는 김모(23·대구 북구)씨는 "김제덕의 파이팅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인스타그램에 다른 사람들이 만든 '짤방'이 올라오면 저장해서 친구들과 공유하곤 한다"고 말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 )는 "MZ세대는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활용하면서 자랐다. 이들의 미디어 소비 형태의 특징은 콘텐츠 소비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점이다. OTT(인터넷을 통해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기반 중계가 활성화됨에 따라, 경기장에 가지 않고도 올림픽을 즐기는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 "결과보다 과정" "공정의 가치 발견"
MZ세대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했다. 수영 황선우(18)가 결승에서 고배를 마시고 여자 배구팀이 3, 4위 결정전에서 패해도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류모(27·대구 북구)씨는 "선수들이 메달을 따기 위해 고생했을 텐데 성과를 못냈다고 비난하기보다는 선수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선수들 역시 경기에 최선을 다하고 과정 자체를 즐기는 태도를 보였다. 사격 여자 25m 권총 결선에서 은메달을 딴 김민정(25)은 "막상 경기 시작하니 메달 생각보다 정말 열심히 해서 경기에서 준비한 것 다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국민들이) 은메달이 조금 아쉽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저는 아직 어리니까 다음이 있다"며 미소를 보였다.
'공정'이란 단어도 MZ세대의 주요 관심사가 됐다. 한국양궁이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킨 것은 공정한 방식으로 선수를 선발하는 시스템이 정착해 있기 때문이란 평가가 나온다. 40대와 20대, 10대로 구성된 남자 단체팀이 2연패를 달성하는 모습을 보며 청년들은 "나이, 학력에 상관없이 오로지 실력으로만 선수를 뽑는 양궁협회"라며 찬사를 보냈다.
취업준비생 정모(여·25)씨는 "최근 청년들이 취업, 입시에서 공정의 문제로 많이 분노했는데 올림픽 양궁 경기를 보며 '공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며 "공정한 선발과정을 통해 멋진 결과를 내는 선수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청년문화는 기성문화의 한계 및 단점을 극복하면서 나온다. 과거엔 국가대항전, 엘리트 중심에 치우쳐 성과에 치중했던 경향이 있었다. 현 세대는 다르다. 메달 획득 보다 얼마나 열심히 경기에 임했는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젊은 선수들 역시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즐기겠다는 모습을 밝히는 점이 기성세대와 다른 점이다"고 했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과)는 "스포츠 국가주의에서 벗어나 선수 개개인의 스토리에 집중하는 현상은 선진적인 문화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남영기자 lny0104@yeongnam.com 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
정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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