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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부동산, 설계된 절망…중립적인 체하는 부동산정책이 美인종갈등 불렀다

2022-03-11

"편향적 대출 기준이 인종 간 주거격차 벌리는 데 결정적 역할" 주장
각종 법안과 판결이 어떻게 차별적 주거시장 만들었는지도 파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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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세인트루이스 시내 '프루이트아이고' 같은 공영아파트 단지가 철거되고 재개발되면서 거기에 살던 주민들은 다른 흑인동네로 강제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갈라파고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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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로스스타인 지음/김병순 엮음/갈라파고스/504쪽/2만5천원

부동산은 전 세계적 이슈다. 우리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으로 인한 사회 갈등이 극심한 것은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이 책은 흑인과 백인의 주거지역이 갈라지고 재산 격차가 벌어지는 미국의 20세기를 파헤치고 있다. 부동산 서적이라기보다 부동산 문제를 중심으로 미국 사회의 인종과 계층 문제를 분석한 사회학 도서에 가깝다.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핵심적 문제인 인종차별의 한가운데 있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 경제정책연구소 연구원이자 교육 불평등 문제를 오래 연구해온 저자는 그 한가운데 부동산이 있다고 역설한다. 주거지와 주택 소유 여부는 미국 사회에서도 계급 격차의 핵심이며 이를 둘러싼 일자리, 세금, 소득공제, 대출 승인 여부, 학군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겹겹이 쌓인 의도적이고 차별적인 정책이 이 현실의 배후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정책이 길들일 수 없는 부동산 시장, 국민 개개인의 욕망 추구라는 환상 뒤에 숨어 온 '국가'의 존재를 드러낸다. 개발 구역 선정과 개발 지원금, 도로와 공공서비스 확충, 주택담보대출 보증과 세액공제에 이르기까지 행정부, 사법부, 금융 감독 기관과 교육기관에서 시행된 '중립적인 체하는 정부 정책'들과 각종 법안과 판결들이 어떻게 차별적 주거 시장을 만들어 왔으며 불공정과 불평등을 강화해 왔는지를 파헤친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 혁명 이후 미국 내 공산주의 발흥을 막기 위해 '자기 집을 소유하라' 캠페인을 벌였다. 저자는 이 정책이 인종적 차별과 겹치며 도시 내부에서의 인종 분리가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또한 루스벨트 행정부는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을 장려하기 위해 연방주택관리국(FHA)을 창설해 국가가 호명한 시민들, 즉 백인 미국인들의 주택 소유를 지원했는데 이 기관은 편향적인 대출 보증 심사 기준으로 인종 간 주거 격차를 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어떤 정책도 중립적일 수 없으며 '모두'를 위한 정책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거 불평등 해소를 위한 첫걸음으로 개인이 처한 사회경제적 환경에 따라 겉으로는 차별과 무관해 보이는 정책이 사람 따라 서로 다른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차별적 영향(disparate impact)'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저자는 이런 차별적 영향이 극명한 정책으로 주택담보대출 이자 공제 정책을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꼽았다. 이 정책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주택 소유자들은 소유 자체만으로 모두 혜택을 받게 되지만, 세입자들은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지금 존재하는 차별을 '사실상' 존재하는 현실, 정부 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치부하기를 멈추자고 제안한다. 또한 주거를 중심으로 일자리, 대출 규제, 교육, 세금 제도 등 여러 층위에서 벌어진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책임이 개인의 욕망만의 문제가 아님을 인정하는 데서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불공정과 불평등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기득권자의 불이익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모두'에게 좋기만 한 해결책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부동산 문제를 밀도 있게 이해하고 시정할 정부를 선택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과 책임이라는 점에도 방점을 찍는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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