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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산책] 펄 벅 '대지'…중국 농민의 삶 재현한 '대서사시'…포용의 시선 느껴져

2022-05-13

전족·일부다처제 등 소설 속 전통문화 '인류학의 보고'
반평생 푸른 눈의 중국인으로 살며 느꼈던 애정 가득
美 여성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 받는 명예 누렸지만
2차 세계대전 후 당대 주류와 동떨어졌다며 배척 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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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의 삶의 궤적은 세계 문단에 유례가 없을 만큼 독특하다. 1892년 미국에서 태어나 기독교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생후 3개월에 중국으로 가 약 40년을 중국에서, 그리고 약 40년을 미국에서 보낸 그녀는 미국인 혹은 중국인이라고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중의 정체성을 가진 '정신적인 혼혈인'이다.

펄 벅이 중국에서 살았던 40년 동안 중국은 왕조 시대의 몰락과 1900년 의화단 운동, 1911년 신해혁명, 1920년대와 30년대 국공내전, 1931년 일본의 만주 침략 등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격랑 속에 있었다. 그녀는 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국의 속살과 문화와 철학을 온몸으로 생생하게 체득한 결과를 글로 씀으로써 후에 중국에 관한 전문가로 성장하게 된다.

펄 벅은 1931년 '대지'를 발표하고 나서 미국 최고의 작가에게 수여하는 퓰리처상과 하우얼즈상뿐만 아니라 미국 여성 작가로서는 최초로, 미국 작가로서는 세 번째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으며, 국립문예학술원 회원으로 선정되는 명예를 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름은 2차 대전 이후 미국문학사의 정전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불운을 겪는다. 그 이유로는 그녀가 주로 다루는 주제가 당시 주변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중국과 여성이라는 점, 플롯이 복잡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당대 주류인 모더니즘과 동떨어진 사실주의 경향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글로벌 시대를 맞아 다문화주의 담론의 부상과 학제 간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펄 벅의 작품은 재조명의 대상이 되었다. 역사학자 제임스 톰슨이 펄 벅을 "13세기 마르코 폴로 이후 중국에 관해 쓴 가장 영향력 있는 서양인"으로 자리매김한 이래로, 펄 벅의 작품은 미국과 중국에서 소설뿐만 아니라 문학성이 인정되는 몇 권의 전기까지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펄 벅에 대한 재평가는 비단 그녀의 문학 작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20세기 미국과 세계의 온갖 이슈에 대해 개입하고 발언하는 대변자였다는 점도 재조명되었다. 그녀는 19세기 영국의 제국주의, 2차대전 시기의 히틀러의 파시즘과 인종주의, 그리고 2차대전 후의 미국의 제국주의와 인종주의를 강하게 비판했을 뿐 아니라 여성, 유색 인종, 장애인 등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선구적으로 목소리를 높인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1938년 노벨문학상 위원회가 펄 벅을 수상자로 선정했을 때 남성 비평가들과 작가들이 주류를 이루는 1930년대 미국 문단은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남성 작가들에게 우선적으로 노벨상이 수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중국에 대한 주제로 소설을 쓴 펄 벅은 미국적인 주제에만 매몰되어있던 당대 문단의 흐름에서 자연히 무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노벨문학상 위원회는 펄 벅에게 상을 수여하는 이유에 대해 "인종을 분리하고 있는 큰 장벽을 넘어 인류 상호 간 공감을 나누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주목할 만한 작품들과 위대하고 생동감 있는 언어 예술을 창조하려는 인간의 이상을 향한 노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구체적인 작품으로는 "중국 농민의 삶에 대한 풍부하고 충실한 서사시적인 묘사와 전기체의 걸작"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문학 장르를 거론하고 있다. 즉, 위원회는 '대지' '아들들' '분열된 일가'로 이어지는 왕룽 일가 삼대를 다룬 '대지의 집' 삼부작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일대기를 다룬 '유배'와 아버지의 일대기를 다룬 '싸우는 천사'라는 전기까지 높이 평가하여 상을 선정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지' 는 중국 안후이성의 북부 농촌 지역인 난쉬저우를 배경으로 중국 현대사의 격변 속에서 땅을 생명으로 알고, 자연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왕룽이라는 평범한 농민의 혼례일부터 노년까지의 일대기를 충실하게 다루고 있는 사실주의 소설이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청 말기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 이전 중국 농민들의 고난과 투쟁을 이해하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기도 하다.

'대지'에서 땅은 왕룽의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된다. 조상들이 대를 이어 고된 노동을 반복하여 땅을 가꾸어왔듯이, 왕룽도 근면과 검약을 통해 땅과 재산을 계속 불려 나간다. 그는 가뭄, 홍수, 메뚜기떼, 산적, 전쟁 등 외부의 환경으로 인해 끝없이 고난을 겪으나 땅만이 그에게 생명과 희망을 부여해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땅은 그에게 신이며, 괴로울 때 위로를 받는 치유제이기도 하다. 대지주가 된 왕룽은 죽을 때도 화려한 대저택이 아닌 오랫동안 살아왔던 소박한 옛 농가에서 생을 마감함으로써 끝까지 땅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는다.

'대지'는 또한 이제는 사라진 혼례식, 아이 탄생 축하 의식, 설날 풍습, 장례식, 그리고 음식, 의복, 주거, 농사용 농기구 등 의식주에 대한 전통적 중국 농민의 삶과 풍습이 자세하고 충실하게 묘사된 인류학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는 일부다처제, 전족, 여아살해, 여성 매매, 종살이 같은 여성과 관련된 부정적 풍습도 사실주의 소설의 특징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당대 현실로 묘사된다.

'대지'의 공헌은 무엇보다도 20세기 이전 서구의 중국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크게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수 세기 동안 서구의 소설이나 여행기에서 묘사된 중국은 그저 멀고, 이국적인 곳이었다. 또한 중국인들은 서구가 동양을 편견으로 왜곡하는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에서 불결하고, 정직하지 않고, 잔인하며, 불가해한 존재로서 '미개한 야만인'으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중국인은 개인이 아닌 전형적인 집단으로서 취급되어왔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펄 벅은 문화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집단적인 전형으로서 '미개한 야만인'이 아닌 살아있는 생생한 복합적 인간으로서의 개인 왕룽이라는 인물을 창조했다. 그는 때로는 성실하고, 근면한 평범한 농민으로, 때로는 땅이나 재산에 대한 탐욕과 오만으로 차 있는 복합적인 인물로, 즉 진정한 중국 농민으로 재현된다. 이러한 문화상대주의적 시각은 중국의 종교를 서술하는 대목에서도 엿볼 수 있다. '대지'에서는 중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모습이 잠시 나오지만 중국 토속 신앙과의 마찰이나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들이 기독교도로 개종하는 장면도 없다. 서술자는 중국의 고유한 신앙을 미신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는 기독교도가 아니라고 해서 동양인을 이교도나 야만인으로 취급하는 전형적인 서구우월주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허정애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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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애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허정애 교수는 경북대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에서 '19세기 영국소설' '미국문학개관' 및 대학원 인문카운슬링학과에서 '소통과 공감의 문학연구' '문학과 치유 세미나'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영미소설에 나타난 젠더와 인종 문제를 주로 연구의 주제로 삼고 있다. 특히 대중인문학의 확산을 통한 지역 사회와의 소통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경북대 인문대학장, 인문학술원장을 역임하면서 교육부가 주최하는 인문도시사업(2014년~2017년)의 연구책임자로서 '기억과 재생의 인문도시, 대구'를 주제로 시민인문학, 청소년인문학, 교도소인문학을 시작하였고, 현재 경북대 인문학술원에서 개설한 유튜브 강좌 '경BOOK톡'에 '영미소설, 인종으로 읽다'라는 시리즈로 지역민들과 만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경북대 인문대학의 '인문교양총서' 시리즈 51권 '영국소설, 인종으로 읽다' 외 '20세기 미국소설의 이해I'(공저)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제인 오스틴, 노예제, 계급, 인종' '에밀리 브론테의 성취와 한계: 인종적 시각에서 다시 읽는 '워더링 하이츠'' '마크 트웨인과 젠더'외 다수가 있다.


※영남일보는 경북대 인문학술원 HK+사업단과 공동기획으로 한 '다시 읽는 고전 명작' 시리즈에 이어 '노벨문학상 산책'을 연재한다. '노벨문학상 산책'은 국내 전문가들이 참여해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작 가운데 20여 개의 작품을 선정해 재조명 한다. '노벨문학상 산책'은 영남일보 지면을 통해 먼저 소개된 후 책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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