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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읽는 고전명작]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모노가타리'…시대에 맞는 번역으로 고전은 다시 태어난다

202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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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모노가타리'는 헤이안(平安)시기(문헌상으로는 1008년경)에 성립된 이후 서사문학의 대표적 작품으로 읽혀왔으며, 학문으로도 꾸준히 연구되었다. 이러한 연구 흐름과 축적된 읽기는 20세기 초반, 유럽과 미국 사회에 영어와 불어 번역본을 통해 소개되었고, 그 결과 지금도 자연스럽게 세계문학으로서 공유되고 있다.

이야기는 '언젠가', 즉 특정되지 않은 시대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미모와 매력을 갖춘 히카루 겐지(光源氏)가 다양한 여성들과 나누는 러브스토리를 중심으로, 아버지인 천황에게 깊은 사랑을 받으나 어머니의 신분이 낮아 제위에 오르지 못하면서 벌어지는 귀족사회의 권력투쟁, 그리고 겐지의 아들 가오루(薰), 그리고 손자 니오노미야(내宮)에 이르는 약 70년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체 54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 100만자에 이르는 대장편으로, 등장인물만 500여명, 그리고 약 800수의 일본 고전 운문 형식인 와카(和歌)가 등장한다. 저자는 헤이안 시대 중기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이다. 생몰연대 등이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겐지모노가타리'를 비롯하여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와 '문집' 등의 작품이 남아있어 그 활동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약 100만 字에 이르는 대 장편소설
11세기 작품이란 역사성 인정되나
세계문학 불리기까지 번역이 한 몫

첫번째 번역가인 영국의 아서 웨일리
셰익스피어 언어 사용해 높은 평가
일본선 현대적 감성으로 재구성도
개인의 이야기로 소통하는 21세기
고전 콘텐츠의 접근 가치 생각해볼만


'겐지모노가타리'라는 제목에서 '모노가타리'는 '모노(物)를 가타루(語)하다'는 의미로 내러티브 의 개념을 포함한다. 때문에, 번역 과정에서 '겐지이야기'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모노가타리'에 대한 넓은 의미의 해석이며, 정확하게는 헤이안시대부터 가마쿠라시대까지 창작된 일본의 산문 픽션 형식을 의미한다. 대체적으로 'OO모노가타리'라는 이름으로 창작되었다. '겐지모노가타리'에서 '모노가타리'에 대해 경합하는 장면 중 '모노가타리의 시조는 다케토리모노가타리'라는 언급을 통해 일본 문학사적으로는 '모노가타리'의 시작을 '다케토리모노가타리'로 보고 있다. 픽션 세계의 언급이 역사적 사실의 세계로 옮겨온 아이러니이다.

겐지의 연애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내용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물론, 방대한 양과 11세기의 작품이라는 역사성이 인정되기는 하지만 일본을 넘어 세계문학 속에 위치될만한 특수성을 가진 작품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붙을 수 있다. 일본의 로컬적 특성이 강한 '겐지모노가타리'라는 작품이 세계문학이라고 불릴 수 있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번역이다. '겐지모노가타리'는 영국인 번역가 아서 웨일리(Arthur Waley)에 의해 1925~1933년에 걸쳐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되어 세계로 발신되었다. 이후 웨일리의 번역은 중역을 거쳐 유럽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중국어에 능통한 웨일리가 익숙하지 않은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많은 생략이 이루어졌다는 비평이 번역 연구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되었으나, 웨일리가 그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상황에 맞추어 세익스피어의 언어를 사용한 것은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지극히 로컬적인 일본의 고전이 서구사회에서 이미 높은 문학적 평가로 인해 익숙한 감성을 공유하고 있던 세익스피어의 언어로 번역되면서, '겐지모노가타리'는 자연스럽게 서구사회에서 보편적 감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웨일리의 이러한 시도는 11세기 이후 지배계층의 문학적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하며 학문으로 꾸준히 연구되어 온 성과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때문에, 웨일리의 번역을 통해 세계에 알려진 것은 우연히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오랜 기간 축적된 연구 결과가 우수한 번역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일본 내부에서의 현대어 번역 과정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재해석 측면에서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의 '사사메유키(細雪)'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다니자키는 1910년대부터 활동한 일본의 근대 작가로서, 악마주의로까지 불리는 철저한 탐미 성향의 작가이다. 소설 그 자체의 예술성보다는 이야기의 구성을 변화시켜 재미있게 만들어 가는 것이 소설의 핵심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다양한 픽션 영역에서 활동하였다. 다니자키는 2차 세계대전 중 소설가에게 주어진 전쟁 참여와 절필이라는 이항대립적인 선택지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제3의 길로써 '겐지모노가타리'에 대해 축적된 자료를 탐구하여 현대어 번역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가 파악한 작품의 정취와 상황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여 새로운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최근의 콘텐츠로는 2011년 개봉된 영화 '겐지모노가타리 천년의 수수께끼(源氏物語 千年の謎)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겐지모노가타리' 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전근대적 장치였던 '생령(生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생령'은 살아있는 유령이라는 의미로, 겐지를 사모하던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六條御息所)가 질투심과 사랑의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생령'이 되어, 연적들을 죽인다. 강한 질투심 때문에 살아있는 유령이 되어 사람들을 죽인다고 하는 설정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감정을 대상화했다는 특이성을 가진다. 영화적 서사는 이러한 특이성을 메타픽션 장치로 삼아 '겐지모노가타리'와 그 작가인 무라사키 시키부를 연결한다. 그 결과 일본의 전통적인 유령인 바케모노(化け物)는 로컬적인 특성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것으로 설명된다. 즉 고전의 비현실적 일상이 지금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으로 재창조된 것이다.

20세기 근대의 시작이 '개인의 발견'이었다면,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복합적이고 광범위하게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서 '상실된 개인'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기술적 자산을 가지고 새롭게 시작된 21세기는 다시 개인을 이야기한다.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회의 도래, 이것이 현재이며 또한 미래이다. 온라인 서비스인 SNS를 통해 누구나 '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리고 그 형태는 문자에 한정되지 않고 있다. 음악, 영상, 이미지 등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들이 활자로 된 책을 벗어나 개인의 이야기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확산시킨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고전 역시 이야기 속에 숨겨진 개인을 추출하여 재해석하고, 재창조한다. 그러나 고전이 가진 이야기 구조 속에서 재해석되고 재창조된 개인은 전형성에 기반을 둔 캐릭터의 한계성을 지닌 채 지금의 문화콘텐츠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캐릭터가 '나'의 이야기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제 고전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현시대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역할과 의미에서 그 범위를 더 확장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겐지모노가타리'는 일본의 고전에 대한 콘텐츠적인 접근을 참고할 수 있는 작품으로서 그 가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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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구 교수 (경북대 일어일문학과)

일본 문학을 전공하며, 경북대에서 학사와 석사, 일본 주오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관심사는 픽션의 텍스트 분석이며, 소설의 방법론적 담론이 표상하는 거대 서사와 개인과의 관계를 연구하였다. 최근에는 한국 근대 소설을 비교 연구 대상으로 하여 한국과 일본의 소설 성립과 개념, 소설 방법론, 미디어 텍스트의 이야기 구조 분석 등의 연구에서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 일본어문학회 총무이사, 한국일어일문학회와 한국일본문화학회 학술이사로서 연구영역과 관련된 다양한 학회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경북대 인문학술원 부원장으로 지역인문학센터를 통해 대학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樂&學 차이를 묻다 - 일본 문학의 특질'(2016, 공저), '일본 문학, 그 시대를 읽다'(2017, 공저)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기록문화가 형성한 소설담론 공간의 리얼리티', '본격 미스터리의 장르적 변용이 가져온 새로운 추리 공간의 탄생', '감정 표상의 문화론적 고찰', '귀환자가 표상하는 한·일 근대 소설의 특질', '카타스트로피와 마주하는 소설적 패러다임에 대한 연구' 등이 있다.

2021년 9월에는 지역민의 문화·예술 역량 강화를 위해 대구문학관에서 주최한 '외국문학의 밤'에서 '하루키 월드,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라는 대중강연을 진행하였다.
조헌구 교수 (경북대 일어일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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