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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국민의 뜻, 국가의 뜻

2022-08-22

진영 논리에 갇힌 한국 정치
갈등 조정과 통합 기능 상실
'국민의 뜻' 가늠하기 어려워
국가와 공동체 이익 위한 일
손 들어주는 시민 늘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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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

몸의 어느 부위가 느껴진다는 것은 그 부위가 아프다는 뜻이다. 문제가 없으면 몸은 느껴지지 않는다. 팔이 계속 느껴지는 것은 팔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국가도 그렇다. 평온한 일상에서 국가의 고마움을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일상이 불편하거나 삶이 힘들어야 국가가 생각난다. 물가가 올라 살기 힘든데 국가는 뭐하냐며 국가를 탓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람들이 국가의 할 일을 따지고 국가의 잘못을 꾸짖는 정당한 자격을 갖게 된 것은 대한민국이 출발하면서다. 조선의 백성(百姓), 일제강점기의 황국신민(皇國臣民)을 거쳐 광복 후 민주공화정 체제의 '국민(國民)'이 되면서 비로소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다. '국가의 뜻'으로 살던 나라에서 마침내 '국민의 뜻'을 생각하는 나라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뜻'은 여전히 중요한 힘이었다. 광복 후 처음 겪는 새 나라 건설과 5·16 후 가난 극복이라는 산업화 과제 앞에서 '국민의 뜻'은 '국가의 뜻'을 넘어설 수 없었다. 먹는 것이 문제일 때는 그것만이 문제지만 먹는 것이 해결되면 모든 것이 문제가 된다. 경제 발전은 필연적으로 '국민의 뜻'이 국가의 우선이어야 함을 요구한다. 1987년의 민주화운동은 바로 그런 목소리가 만들어 낸 역사였다.

민주주의란 '국가의 뜻'이 약해지고 '국민의 뜻'이 힘을 불려온 역사다. '국민의 뜻'이 중요하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정파와 진영에 따라 국민이 갈라진 한국 사회에서 과연 무엇이 '국민의 뜻'인지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어떤 정책이나 사안이든 여론 조사 결과는 우리 진영 것은 무조건 찬성, 상대 진영 것은 무조건 반대로 나타나는 경향이 짙다. 게다가 극성스러운 팬덤(fandom)의 뜻이 '국민의 뜻'이라고 호도되기도 한다.

또한 '국민의 뜻'이 언제나 선(善)은 아니다.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 이익이 충돌할 때 공동체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가 전체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국민 개인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공동체의 이익이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이익을 낳는다는 점도 수긍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현재 한국 정치는 진영 논리에 갇혀 갈등의 조정과 통합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은 '국가의 가치는 궁극적으로 그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의 가치'라고 했다. 국가와 공동체의 이익과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 일은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정책에는 국민들도 손을 들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민 정신이다. 시민(citizen)이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면서도 공동체적 과제와 국가적 어젠다에도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다. 좋은 나라가 되려면 이런 시민이 많아야 한다.

덴마크가 시민대학 운동에 힘쓰고, 독일이 '연방정치교육원'이라는 국가기관을 설립하고, 영국의 캐머런 정권이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 운동을 전개한 것도 바로 이런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 개인과 공동체의 균형과 조화를 중요시하는 시민이 많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한국 정치가 진영 논리를 벗어나 갈등의 조정과 통합이라는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사람(good person)은 사회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지만, 좋은 시민(good citizen)은 좋은 정치 체제를 전제로 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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