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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술, 테마가 되다(1) 눈으로 입으로 즐기는 '酒의 세계'

2023-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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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와이너리에서 '피노 그리' 품종이 자라고 있다.

주말과 잘 어울리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떤 여행이라도 많든 적든 간에 그 나름대로의 중심 테마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예술'은 여행의 고전적인 테마다. 에릭 사티의 음악을 즐겨듣는 사람이라면 프랑스 파리의 골목길 하나에도 의미를 둘 것이고, 앙리 마티스의 그림에 흥미가 있는 사람은 모로코의 탕헤르를 남다른 곳으로 생각할 것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콜롬비아의 한 작은 마을이 평생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 될 것이다. 거기서 그곳의 공기, 분위기를 경험하며 나를 매료시킨 예술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일상에 얽매여 당장 실행하기 힘들지라도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좀 덜 권태로워진다.

이처럼 여행이든 무엇이든 '테마가 있다'는 것은 점점 획일화돼 가는 세상에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작은 기쁨이자 개성의 표현이 된다. 누군가에겐 '식물'이 테마가 될 수도, 또 누군가에겐 '플리마켓'이 테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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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와이너리에서 관광객이 포도밭 사진을 찍고 있다.

그렇다면 '술'이 테마가 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술은 특정 지역을 설명하는 중요한 주제가 돼왔다. 한 지역이 가진 기후·문화적 특성과 그 지역 사람들의 스타일이 술에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술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면서 점점 술맛에도 개성이 줄어들고 있다지만, 그래도 술은 개별적 특성을 발견해 볼 수 있는 분야다. 때로는 술과 한 지역 전체가 '마리아주'(술과 음식의 궁합을 일컬을 때 쓰는 표현)를 이루기도 하는데, 이는 여행자에게 풍부한 영감을 제공해 준다.

특히 와인처럼 사연이 많은 술은 다양한 여행의 테마가 된다. 와인 취향에 따라 이탈리아 토스카나나 미국 캘리포니아의 소노마카운티 등으로 '테마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에겐 푸른 포도밭이나 오래된 오크통 보관소가 마치 유적지처럼 느껴질 수 있다. 백포도주인 샤르도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방이 '꿈의 여행지'가 될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술은 비중 있게 등장하곤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와이너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 '사이드웨이'에서 인생이 고달픈 중년 남성 마일즈가 '피노누아' 와인에 대해 말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마일즈는 '왜 피노누아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눈을 반짝이며 진지하게 답한다. 피노누아는 까다롭고 재배가 힘들어 기르는 자의 인내심이 필요한 품종이지만, 그 예민한 품종에서 나오는 맛은 태곳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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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피노누아로 만든 와인 한잔을 맛보고 싶게 만드는 대사다. 매력은 우연한 순간에 발견되는 것이다. 그 영화 그리고 마일즈의 그 대사 때문에 캘리포니아 남서부의 도시 샌타바버라와 피노누아 와인은 한층 더 유명해지게 됐다.

맥주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맥주가 하나의 주제가 될 것이다. 여러 나라, 여러 지역에는 정말 다양한 맛의 맥주가 있다. 다양함에 있어서는 막걸리도 뒤지지 않는다. 이에 산으로, 들로, 바다로 '막걸리 투어'에 나서는 막걸리 애호가들도 있다.

우리나라 전국 각지의 전통주도 저마다의 특색을 보여준다.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는 해당 지역 전통주의 세계화 행보에 나서기도 했다.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 술의 매력을 세계인에게 널리 알리겠다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테마로 잡은 술은 바로 위스키였다. 그가 위스키 여행을 주제로 쓴 책에는 이 같은 문장이 나온다.

"모두 아일레이 위스키의 특별한 맛에 관해 이런저런 분석을 하지. 보리의 품질이 어떻다느니, 물맛이 어떻다느니, 이탄의 냄새가 어떻다느니 하고. 분명 이 섬에서는 질 좋은 보리가 나지. 물맛도 훌륭해. 이탄도 풍부하고 향이 좋아.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일레이 위스키의 맛을 설명할 수 없어. 그 매력을 해명할 수가 없는 거지.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지, 무라카미씨, 가장 나중에 오는 건 사람이야. 여기 살고 있는 우리가 바로 아일레이 위스키의 맛을 만드는 거야. 섬사람들의 퍼스낼리티와 생활양식이 이 맛을 만들어내는 거지. 그게 가장 중요해."(무라카미 하루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중에서)

글·사진=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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