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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산책] 아나톨 프랑스의 '페도크 여왕의 통닭구이 집'

2023-06-09

"감수성 빈약하다" 사후평가에 가려진 해학의 맛

[노벨문학상 산책] 아나톨 프랑스의 페도크 여왕의 통닭구이 집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윤아 기자 baneulha@yeongnam.com

서울대 불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부르고뉴 대학에서 철학 D. E. A.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가톨릭대 강사로 서울대, 덕성여대 등에서 강의했다. 지은 책으로 '미셸 푸코, 말과 사물' '검은, 그러나 어둡지 않은 아프리카'(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헤르메스' '알코올' '카뮈를 추억하며' '광기의 역사' '유럽의 탄생' '성의 역사 1: 지식의 의지' '삼총사' '말과 사물'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 등이 있다.

작가의 자아 쪼개 작중 인물 창조
이상야릇 인물 통해 제도·도덕 비판

소설 속 쾌락주의·회의주의 공존
삶의 양면성과 균형감각 핵심주제


1844년 4월16일 파리에서 태어나 1924년 10월12일 생시르쉬르루아르에서 죽은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1921년) 작가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본명 프랑수아 아나톨 티보(Francois Anatole Thibault)는 무엇보다도 먼저 지칠 줄 모르는 독서가이다. 이는 서적상의 아들로 태어나 서점에서 자란 탓이다. 하지만 그의 폭넓은 독서와 박학은 창작에 약이 되면서도 동시에 독이 된 측면도 없지 않다. 다음으로 그는 참여 지식인이다. 드레퓌스 사건에 즈음하여 에밀 졸라와 함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의 대열에 합류한다. 그의 정치적 신조는 사회주의이다. 이는 그의 빈한한 출신에 비추어 너무나도 당연한 선택으로 보인다. 끝으로 그는 1896년에 아카데미 회원이 되고 주지하다시피 192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는 등 작가로서 출세하고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이다. 하지만 빛과 함께 그림자가 드리우듯이 살아생전에는 이상적인 프랑스 문인으로 추앙받았지만 20세기 초부터는 젊은 세대의 작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기는커녕 비꼼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 낮은 평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폭넓은 박학, 재치와 비꼼, 사회 정의에 대한 열정, 명료한 고전적 문체 등은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

'페도크 여왕의 통닭구이 집'은 아나톨 프랑스의 중기를 대표하는 소설이다. 물론 이야기 자체는 몹시 이상야릇하다. 우스꽝스러운 장면들과 특이하고 엉뚱한 인물들의 연속이다. 이런 것들이 정말로 진지하게 이야기되는 만큼 도리어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작중인물들 사이의 대화를 매개로 아나톨 프랑스는 특히 제도와 도덕, 또한 탐욕스러운 성직자, 수다스러운 학자 등을 비꼬고 조롱한다. 이 작품은 그가 삶의 전환기에 쓴 까닭에 이 작품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가 유난히 두드러진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아나톨 프랑스의 문학으로 들어가는 훌륭한 입구이다.

[노벨문학상 산책] 아나톨 프랑스의 페도크 여왕의 통닭구이 집
이규현 교수 (가톨릭대)

1891년부터 카바예 부인이 자신의 살롱에 더욱더 열렬히 아나톨 프랑스를 맞아들이면서 아나톨 프랑스의 부부관계는 파탄에 이른다. 1893년 8월2일 이혼 판결이 나지만 그 전에 이미 아나톨 프랑스는 카야베 부인의 저택으로 옮겨와 살면서 그를 위해 쾌적하게 개조된 2층 서재에서 작업한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열정적으로 소설을 집필하여 1892년 10월부터 '에코 드 파리'지의 문예란에 연재하기 시작하는데, 이 소설이 바로 '페도크 여왕의 통닭구이 집'이다.

이듬해인 1893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 작품은 우선 아나톨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가 남자와 작가로서 맞이한 이중의 실존적 위기가 이 소설의 탄생 배경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자신에게 자기성찰의 거울이 된다. 아나톨 프랑스는 이 거울 속의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를 성찰한다. 다음으로 이 작품은 아나톨 프랑스의 창작 방법이 여실히 구현된 소설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소설들은 대체로 그의 박학, 책에서 얻은 지식, 막대한 교양으로부터 구상된다.

이 소설에서도 신비주의에 관한 많은 자료가 비춰 보인다. '질 블라스' '마농 레스코' 등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들도 엿보인다. 그렇지만 자료가 상상력에 의해 변형하고 작품의 틀이나 뜻에 맞게 변용된 것이다. "아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상상하는 것이 전부다"라는 그의 말은 박학에 기초한 구상을 무조건 모방이나 표절로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을 밑받침한다. 끝으로 이 소설의 주요한 작중인물들이 모두 아나톨 프랑스의 초상을 구성한다. 달리 말하자면 아나톨 프랑스는 자기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각 부분을 하나의 작중인물로 만들어 제시한 것이다. 이처럼 자아를 쪼개서 작중인물을 창조하는 방법이 이 소설에서 가장 분명히 드러난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은 가장 아나톨 프랑스다운 소설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 작품을 전후로 그의 삶과 글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아나톨 프랑스의 모든 작품에서 중간축이 되는 소설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소설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넉넉히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페도크 여왕의 통닭구이 집'에서도 그의 다른 소설들에서처럼 삶이 행복하다는 시각은 찾아보기 어렵다. 삶에 대한 아나톨 프랑스의 이해 방식을 알려면, 다스타락과 쿠아냐르라는 두 대조적인 인물을 참조하는 것이 적절하다. 아나톨 프랑스는 언제나 야릇한 것에 끌림과 동시에 맞서 싸웠다. 반대 방향의 두 감정이 공존한 셈인데, 이것들이 두 작중인물로 구현된 것이다. 이처럼 아나톨 프랑스는 삶의 모든 측면을 양면성의 연속으로 지각한다. 어느 주제에서나 양면성의 논리를 펼친다. 이러한 양면성의 논리가 바로 회의주의의 핵심이다. 그의 소설 세계는 늘 양면성을 내보인다. 논리성과 합리성을 지향하면서도 많은 환상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어떤 주제에서건 양면이 있다. 그 양면 사이에서 아나톨 프랑스는 늘 균형감각을 유지한다. 이로부터 그의 세련되고 열정적인 회의주의와 계몽되고 차분한 쾌락주의가 빚어져 나온다. 이처럼 삶과 꿈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그의 문학은 진부해 보이기는 하지만 가장 덜 기만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나톨 프랑스에 대한 사후의 평가는 박하다. 그는 고전적이고 피상적인 문체의 관변 작가, 이성적이고 타협적이며 자기 만족적이고 득의양양한 작가라는 선입견이 단단히 자리 잡은 듯하다.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는 그가 아카데미 회원이 된 점이나 노벨문학상을 받은 점에 대한 반작용일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 직후에 기존의 가치와 관습을 뒤집어엎으려는 젊은 초현실주의자들의 눈에 아나톨 프랑스는 전형적인 구시대 작가로 비친 것이다. 그 이후로도 이러한 평가절하는 계속되고 심지어 격화된다. 가령 창조적 상상력이 부족하고 모방이나 표절이 눈에 띈다는 비판도, 감수성의 깊이가 없고 문체가 너무 반질거린다는 평가도 근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아나톨 프랑스의 문체는 때로는 부드럽고 상냥하며 때로는 음울하다. 잔혹한 반어와 해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인간성, 지식, 역사에 관해 그가 내보이는 근본적인 회의주의의 소산으로서 삶의 양면성 사이에서 그가 줄곧 유지하는 균형감각과 함께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장점이다.
이규현 교수 (가톨릭대)
공동기획: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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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현 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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