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문항 콘테스트에 참여
당선되면 시상금 받는 구조
교사와 학원 간 이권 카르텔
김영란·국가공무원법 위반
교사 스스로 교권 추락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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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식 사회부장 |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땐 대학 입시 본고사가 있었다. 나는 이과 출신이라 미적분도 공부했고, 수학도 비교적 잘했다. (하지만 본고사에서) 자신 있던 수학 시험지를 받아보고 참 난감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게임이론 문제가 큰 배점으로 나온 것이다. 결국 그 게임이론 문제는 손도 대지 못했다. 나중에 대학 가서 보니 교재에 나오더라. 고교 과정엔 없고 대학 수업에서 나오는 수학 문제를, 그런데 서울의 유명 학원에 다닌 수험생들은 다 알고 있더라. 요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바로 '킬러 문항'이었던 것이다. 지금 수능을 앞두고 킬러 문항을 없애면 수험생들이 큰 혼란을 빚는다고 하는데, 정작 혼란스러운 건 킬러 문항을 학원에서 배우거나 과외를 받는 수험생들 아닌가."
킬러문항.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에서 초고난이도 문제를 일컫는다. 이런 아주 어려운 문제를 내는 건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해야 최상위권을 중심으로 수능에 응시한 수험생들의 서열을 촘촘하게 매길 수 있어서다.
취지는 좋은데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사교육비 부담을 부추기는데 더 나아가 현직 교사와 학원 사이에 이권 카르텔까지 형성할 지경에 이르렀다.
서울지역 대형 학원에서 수험생에게 돈을 받고 킬러문항을 파는데, 이 킬러문항을 교사로부터 제공 받았단다. 교사는 킬러문항을 제공하는 대가로 금품을 받는다. 그것도 경쟁적인 콘테스트를 통해서란다.
학원이 교사들에게 건네받은 문항들을 자체 분석해 '킬러문항' '준킬러문항' '일반문항'으로 선정한 뒤 각각 100만원, 60만원, 40만원의 시상금을 지급하는 구조다. 국세청 조사에서 이렇게 지난 10년간 돈(5천만원 이상)을 받고 문제를 판 교사가 현재 확인된 것만 13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교사가 수준 높은 시험문제를 만들었으면 자신이 몸담은 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사용해야지 사설학원에 돈 받고 팔았다니 말이 되나. 학원에 킬러문항을 만들어 줄 시간이 있다면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행위가 학생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고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무너뜨리는 일인 줄 왜 모르나.
사실로 확인되면 분명 김영란법 위반이다. 영리 업무와 겸직을 금지한 국가공무원법도 어긴 것이다.
교육부는 사설학원에 돈 받고 문제를 판 교사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1일부터 자진 신고를 받는다고 한다.
대구에서도 이런 교사가 없으리란 법은 없다. 벌써 '대구의 강남 8학군'이라 불리는 수성구 범어동 학원가에선 소문이 나돌고 있다. "어느 학교 선생이 서울 입시학원 콘테스트에 문항을 제출하고 당선돼 시상금까지 받았다더라…."
자진 신고만으론 안 된다. 발본색원해야 한다. 서울 대형 학원들의 계좌만 추적해도 킬러문항 대가로 어느 과목 어떤 교사에게 얼마나 금품을 지급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다 우리 교육이 이렇게까지 됐나. 이러니 교권 추락은 교사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수업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 한다.' 교육계에서 지론과 같은 말이다. 선생님들 제발 자존심은 지킵시다.
진 식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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