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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책상 위의 노란버스

202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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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영 논설위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미지의 세계를 넘나들거나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도 거뜬히 이룰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자기만족의 최고봉이 되기도 하고 희망 또는 목표를 향한 에너지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아울러 창의성 발현과 함께, 도전적이며 진취적인 방향을 설정하는 데도 보탬이 되는 등 그리고 싶은 그림이 개인적인 사안이라면 합당하고 유효하다. 하지만 공적일 경우 이야기는 크게 달라진다. 상대가 있고 부작용이나 후폭풍이 예상된다면 절대 무모해선 안 된다. 특히 정치나 행정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최근 일명 '노란버스법' 때문에 전국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난리가 났다. 수학여행이나 체험활동을 할 경우 노란버스(어린이통학버스)만 이용하도록 하는 지침이 내려진 이후 일정을 전격 취소하거나 연기를 고민하는 학교가 속출하면서 혼란이 빚어진 것이다. 지난해 10월 법제처는 도로교통법 등과 관련된 제주교육청의 법령 해석 요청에 '교육과정의 목적으로 이뤄지는 비상시적인 현장체험학습을 위한 어린이의 이동은 어린이의 통학 등에 해당한다'고 답했다. 경찰청은 이를 근거로 지난 7월 '체험활동 관련 도로교통법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공문을 교육부에 보냈고 교육부가 이를 시·도교육청에 그대로 전달하면서 '노란버스 대란'이 야기됐다.

각 부처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다고 강변할 수 있으나 행정서비스의 최종 소비자들이 당장 수용하기 힘든 내용이라면 의미와 가치가 급감한다. 법은 모든 사람이 잘 지키게끔 해야 취지나 목적에 부합하기 마련이다. 학교현장이 '멘붕'에 빠지기 전에 어느 부처라도 예견되는 후폭풍에 관심을 가졌다면 이 사달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학여행이나 현장체험활동을 앞두고 어린 마음에 한껏 들떠있다가 취소라는 날벼락을 맞은 아이들의 상황이 안쓰럽다. 비난과 원망이 들끓자, 결국 국토교통부는 지난 22일부터 현장체험용 전세버스운행이 가능토록 '자동차 규칙'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럽다.

논란이 뜨거웠고 파장이 컸던 이유는 꽤 현실적이고 피해는 구체적이었다. 우선,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노란버스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어린이용 통학버스로 등록된 차량은 수학여행이나 체험활동 이동수요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금껏 거의 전세버스를 활용했기 때문에 이동수단에 대한 고민은 필요 없었다. 게다가 통상 수개월 전에 차량을 예약하고 시행업체와 계약을 맺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취소결정에 따른 위약금은 물론, 인력과 장비 등 관련 업체의 선행 투자 피해액 등을 합치면 수백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전세버스업계의 불만도 컸다. 어린이용 통학버스 규정에 맞게 버스를 개조하려면 노란색 도색을 비롯, 전체 좌석 교체와 하차 확인 시스템 설치 등 대당 수백만 원을 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비정기적인 수요를 바라보고 어린이용 좌석으로 교체하자니 관광 등 다른 용도로 쓰기도 어렵다. 관계자들이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질타하는 이유다. 현실을 도외시한 채 책상에서만 행정이 진행된 탓에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면 부처끼리 협조를 구하든, 협업을 하든 부작용이나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친절한 행정'이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다.

장준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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