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40528010003968

영남일보TV

  • [영상]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 경제공약 발표 ‘국내외 대기업 유치로 경제 바꾸겠다’
  • [영상] 김부겸·추경호 나란히 출사표…6·3 지방선거 대구 시장 후보 등록 시작

[길형식의 길] 오랜 이웃, 대구 화교와 차이나타운

2024-05-29

2024052801000928600039681
길형식 거리활동가

차이나타운(China Town). 양안사지라 불리는 중국, 홍콩, 대만, 마카오를 제외한 해외 거주 중국인, 대만인 혈통의 화교(華僑)들이 집단으로 모여서 사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조선은 청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란 조약을 맺게 된다. 청의 군대가 주둔하는 동시에 그들을 대상으로 장사하고, 보조하기 위해 청의 상인들과 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들이 한국 화교의 시초이다. 산둥 출신이 대부분이던 그들은 인천과 부산에 최초의 차이나타운을 세웠다.

조선 총독이던 군벌 위안스카이와 청의 군대는 화교들의 든든한 뒷배였다. 수완까지 좋았던 화교들의 득세는 하늘을 찔렀으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청일전쟁, 신해혁명, 만보산 사건까지 일어나며 중국 내 정세는 혼란으로 치달았고, 그 영향으로 한국의 화교는 서서히 몰락 일로를 걸었다. 화교 인구는 특히 광복 후 급격히 감소했는데 화교를 타깃으로 한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의 압박이 그 원인이다. 외국인토지법이나 화폐개혁 등은 화교의 경제력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고, 그들은 삶의 터전이던 한국을 떠나야만 했다.

전국의 주요 역사 근처에는 어김없이 차이나타운이 있다. 인천역이나 부산역에 내리면 화려하고 거대한 패루(牌樓)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록 차이나타운을 상징하는 패루조차 없지만 대구에도 엄연히 차이나타운이 존재한다. 바로 대구시 중구 종로의 화교 거리이다. 대구에 화교가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905년부터이다. 당시 화교들은 근대 서양식 건축 기술을 보급하고, 상업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현재는 명맥만 유지 중이지만, 과거 반세기도 훨씬 이전의 이 일대는 1세대 대구 화교 모문금의 중화 요릿집 군방각을 필두로 화교협회 건물과 화교소학교, 한약방, 상점, 식당 등이 모여 있었던 그야말로 대구 화교의 거점이자 성지였다. 여담으로 대구 화교 출신 유명인으로는 오리온그룹의 담철곤 회장, 해태 타이거즈의 전(前) 야구 선수 소소경이 있다.

우린 일본인들의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을 보고 비분강개한다. 하지만 정작 화교에 대한 차별을 자행했던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한국인은 짜장면을 중화요리라 하지만 화교들은 한국 음식이라 여긴다고 한다. 그들은 이방인이 아니다. 한 세기를 함께 더불어 살아온 어엿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자 친구이며 이웃이다. 대구의 차이나타운이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간직하면서도 지역사회와의 융합과 조화를 이룬 특색있는 장소로 변모하길 바란다.
길형식 거리활동가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