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별 인상 속도 차등화, 중장년층 부담 커질 전망
연금 의무가입기간 상향 시사, 정년 연장 논의 탄력
기초연금 조건 강화, 복수국적 '5년 이상 국내 거주'
정부가 오랫동안 오르지 않고 9%인 보험료율은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이 40%까지 줄게 돼 있는 것을 42%로 상향하는 내용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놨다. 보험료율은 연령대가 높을수록 더 가파르게 인상돼 세대별로 차등을 둔다. 수명이나 가입자 수와 연계해 연금 수급액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도 검토한다. 사진은 4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상담센터의 모습. 연합뉴스 |
윤석열 정부가 4일 발표한 국민연금 개혁안은 보험료율을 인상하고, 급여액을 자동조정하는 내용이 담겼다는 점에서 보장성 강화보다는 연금 기금의 '재정 안정'에 초점을 맞췄다. 한편으로는 연금 의무가입연령을 상향 방안에 따른 '제도적인 정년 연장'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 "젊을수록 천천히 올린다"
정부는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면서 세대별로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차등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청년 세대는 가장 오래 많이 내고, 가장 늦게 받는다'는 지적에 따라 세대 간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내년 50대인 가입자는 매년 1%포인트, 40대는 0.5%포인트, 30대는 0.3%포인트, 20대는 0.25%포인트 인상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50대(1966년~1975년생)인 A씨의 보험료는 2025년에 1% 인상돼 10%가 된다. 40대(1976년생~1985년생)인 B씨의 보험료는 같은 시기에 0.5%만 인상돼 9.5%가 된다. 이럴 경우 보험료율이 가장 빨리 오르는 50대는 2028년부터 13%의 보험료율을 적용받고, 20대는 2040년이 돼서야 보험료율이 13%에 도달한다. 복지부는 "보험료율이 인상되면 납입 기간이 많이 남아있는 젊은 세대일수록 보험료 부담은 커지게 되는데, 1999년과 2008년 두 차례 개혁으로 명목소득대체율도 인하되고 있어 청년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부담은 크고 혜택은 적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형평성 문제 해소를 위해 잔여 납입 기간을 기준으로 차등화 방안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세대별 차등 보험료 인상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것이라며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중장년층의 부담과 반발이 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저소득층 중년층 가입자를 위한 보험료 지원 사업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연금 기금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기대 여명이나 가입자 수 증감을 연금 지급액과 연동해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의 도입도 검토된다. 자동조정장치는 재정·인구여건등에 따라 연금액을자동조정하는 방식이다. 자동조정장치가 발동되는 기간에는 물가상승률에서 '최근 3년 평균 가입자 수'와 '기대 여명 증감률'을 반영해 연금 인상액을 조정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물가상승률이 3%이면 국민연금도 3% 인상된다.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될 경우 기대수명이 늘어나 연금을 받는 수급자는 늘어나고, 고령화로 연금을 내는 가입자가 줄어들면 국민연금 인상률을 1%나 2%로 제한하게 된다. 자동조정장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8개국 중 24국이 도입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우려도 있다. 복지부는 "자동조정장치 도입 시 기금소진연장이 전망되나, 소득보장·수준변화 등을 고려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금수익률도 1%포인트 이상 높인다. 기금수익은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1988년 제도 도입 후 2023년 말까지 5.92%의 누적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기금 규모도 1천36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5차 재정추계 당시 도출된 장기 수익률 4.5%를 5.5%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 "정년 연장 논의할 때가 왔다"
정부가 국민연금 의무가입기간을 59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고령자의 경제활동 참여가 증가한 상황 등을 고려해 보험료 납부 기간을 5년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고령자들이 저임금 노동시장에 내몰린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어차피 대다수 고령자는 늘어난 가입기간에 보험료를 납부할 수 없기 때문에, 의무가입기간 연장은 '정년연장' 등 노동개혁과 함께 가야 하는 과제이다. 고령자 '계속고용'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계속고용 해법을 모색 중이다. 정부는 하반기 중 '계속고용 로드맵'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선 정년 연장의 혜택이 일부 대기업 정규직에게만 간다는 지적과 고령자 계속고용이 젊은 층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수급개시 연령 인상 계획은 없다. 이스란 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의무가입연령 64세는 수급개시 연령인 65세와의 간극을 조금 줄이기 위한 조치"라면서 "이미 상향 조치가 결정된 수급 개시 연령은 이번 개혁안에 담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금개혁과 연계해 기초연금도 인상된다. 복지부는 기준중위소득 50% 이하 저소득 어르신부터 40만원까지 우선 인상한 후 지원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2026년에는 기준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 순으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오는 가구의 소득) 50% 이하인 저소득 노인의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올리고, 2027년에는 기초연금을 받는 전체 노인들이 40만원씩 받는다. 기초연금은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이 하위 70%인 노인에게만 지급된다. 현재는 33만4천810원이다. 기초연금 수급 조건에 '성인일 때 5년 이상 국내 거주' 항목을 추가한다. 오랫동안 해외에 살다가 기초연금을 받을 나이가 돼서야 한국에 들어온 복수 국적자들이 아무 기여도 없이 일반 국민과 똑같이 기초연금을 받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해외에 사는 복수 국적자에 대해선 소득·재산 신고도 의무화할 방침이다.
퇴직연금의 실질적 노후소득보장 기능도 강화한다. 체불 방지, 대·중소기업 근로자 간 노후소득 격차 완화 등을 위해 전(全) 사업장을 대상으로 단계적 의무화를 추진하고,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중소기업 퇴직연금 가입을 유도한다.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구경모
정부세종청사 출입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