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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 허례허식은 탈피하고 차례는 간소하게

2024-09-06

현실과 동떨어진 사농공상
교조적 사고방식 탈피하고
좋은 전통 역사 잘 보존하며
시대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제대로 된 유교예법이다

[경제와 세상] 허례허식은 탈피하고 차례는 간소하게
이재훈 에코프로 파트너스 대표

열흘 후면 대명절 추석연휴가 시작된다. 명절 때가 되면 오랜만에 가족끼리 만난다는 즐거움도 있지만 차례(茶禮)상 차림으로 인하여 가족 간에 적지 않은 갈등이 유발되기도 한다. 차례상과 관련하여 2022년 9월5일 우리나라 유교의 본산인 성균관은 표준안을 발표하면서, "추석 차례상의 기본 음식은 송편, 나물, 구이(적), 김치, 과일, 술 등 6가지이며, 여기에 육류, 생선, 떡을 추가하여 상차림이 9가지를 넘을 필요가 없다. 특히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므로 전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라고 밝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덧붙여 "예의 근본정신을 다룬 유학 경전 '예기'의 '악기'에 따르면 '큰 예법은 간략해야 한다'라며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음식의 가짓수에 있지 않으니 많이 차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유교 예서(禮書)에는 차례상을 어떻게 차리라는 규정이 없이 단지 '주자가례'엔 제철 과일과 술 한 잔 올리라는 것이 전부로 간소하게 지내라는 게 유교 예법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명절 차례상 차림으로 인해 경제적 부담은 물론 가족 사이에 불화까지 초래하면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례상을 차려왔던 근거는 무엇인가?

사실 유교는 종교이지만 죽은 후의 복락을 추구하는 타 종교와는 달리 '현실에서 어떻게 자신을 수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윤리적 실천도덕으로서 근본적 성격이 종교보다는 철학 혹은 사상체계에 가깝다. 즉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실천적 학문으로 실제 생활에서 쓸 수 있는 자기계발론이자 처세술로서 먹고사는 실용의 가치를 중시했다. 따라서 올바른 유교 예법에 따르면, 차례는 간소하게 지내라는 것이다.

이러한 유교가 관념론으로 흐른 것은 12세기 주자가 집대성한 성리학 때문이다. 성리학은 전형적인 사변철학(思辨哲學, speculative philosophy)으로 선험적(先驗的) 직관에 따라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사유 방식이다. 이러한 사변철학은 객관적 경험 세계에 관한 정교한 탐구 없이 방구석에 정좌(靜坐)한 채로 내재적 논리에 따라 직관에 의존하여 범우주적 진리와 인간의 도리를 이해하고 체득할 수 있다는 중세적 논증 방식이다. 주자가 우주론, 인간 본성론에 매달리면서 유교의 한 분파에 불과했던 성리학이 실천 윤리이던 유교를 조선 사회에서 형이상학적 철학 체계로 바꿔 놓았다.

심지어 조선의 사림(士林) 정권은 성리학의 원리주의에 빠져 현실과 동떨어진 정신에만 치중한 나머지 물적 생산을 천대하고, 실용적 변화에 문을 닫아 결국에는 조선을 망국으로 이끌었다. 특히 조선의 양반들은 중국에서조차 사라진 근본주의적 성리학에 근거하여 체면치레에 편승해 형식적 도그마로 폭주하여 차례마저 과도한 허례허식으로 변질시킨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대구경북, 특히 한국 유교문화의 본산인 안동부터 잘못된 교조(敎條)적 성리학의 폐단에 근거한 과도한 차례상 차림은 버리고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유교를 제대로 받아들여 명절에 간소하고 실질적인 차례를 지내면서 경제적 부담해소는 물론 가족화목의 장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성리학의 폐단은 차례뿐만 아니라 현실과 동떨어진 사농공상에 대한 집착이나 잘못된 전통마저도 고수하며 변화나 혁신을 거부하는 교조적 사고방식 등 여전히 우리 삶 곳곳에 남아 있어 하루빨리 탈피하여야 한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장사꾼처럼 하지만 예의는 바르게 좋은 전통과 역사는 잘 보존하면서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것이 제대로 된 유교 예법이다.
이재훈 에코프로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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