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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윤 칼럼] 머로 순간

2024-10-04

[이재윤 칼럼] 머로 순간
논설위원

'9월의 시사 일언(一言)'이 될 만한 매력적인 용어가 눈에 띄었다. '머로 순간(Murrow moment)'이다. '머로 순간'은 매카시즘 광풍에 맞섰던 미 CBS의 전설적 언론인 에드워드 머로가 만든 현상이다. 최근 이 용어를 이준웅(서울대 교수)이 썼다. 9월23일자 그의 칼럼에는 '한국 언론에 머로 순간이 오고 있다'는 제목이 달렸다. 언론이 권력자나 유력 정치인의 말을 얌전하게 받아쓰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비판적으로 돌아서는 순간이다. 정부 여당에 대해 훈수를 아끼지 않던 보수언론이 이제 더는 기대할 게 없다며 논조를 바꾸고 있는 저간의 흐름을 빗댄 것이다. 보수언론의 논조 변화는 간단치 않은 의미를 지닌다. 일종의 '변곡점'이다. 한국의 보수언론은 보수의 보루이자 막후 기획자로서, 때로는 주인 노릇을 자청한다. 주인의 변심. 깊이 주목할 이유다.

'머로 순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팩트가 필요하다. '팩트 줍기'를 위해 국내 3대 종합일간지를 훑었다. 한국 사회에 있어서 '조중동'은 머로 순간을 설명할 최적의 매체다. 9월 한 달. 이 기간 해당 매체의 칼럼과 사설을 살폈다. '머로 순간'의 기운이 문 앞까지 완연했다.

신문의 '사설'은 사(社)의 주장이다. 기자 개인 생각이 아니다. 우파 정론지(政論紙) C일보를 우선 보자. 9월 한 달 사설 논조는 대체로 보수적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4개 현안엔 윤석열 정부와 확연하게 각을 세웠다. △당·정 갈등 △경제 상황 △김건희 여사 의혹 △의료 사태다. 해법이라며 '김 여사의 사과'를 누차 요구한 건 절대 그저 한 게 아니다. 작정한 '일성(一聲)'이다. 이건 약과다. 칼럼의 날은 더 예리하게 서 있다. 오피니언 책임자인 논설 고문, 주간, 논설실장이 직접 회초리를 든 건 암시하는 바가 크다.

P논설실장은 '윤 대통령은 보수인가'(20일)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의사와 싸우고 군인, 과학자, 독립 유공자들을 등 돌리게 하고, 이준석을 끌어내리고 안철수나 유승민과 절연한 것도 모자라 당 대표와도 거리를 두고 있음을 지적했다. 모두 우군을 적으로 돌린 사례다. 비판의 절정은 "한 마디로 X 팔리는 심정"이라 한 대목이다. 점잖은 칼럼엔 잘 안 쓰는 용어다. "윤 대통령이 보수를 망치려 작정한 X맨"이란 표현까지 등장한다. K주간의 5일자 칼럼 '일단 지르고 보는 어퍼컷 국정의 뒤탈'은 설익은 정책들을 향한 날 선 예봉(銳鋒)이었다. 올해 서재필언론상을 받은 K고문은 '나라 장래에 대한 국민 자신감 무너진다'(28일)고 걱정하며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놓인 명패를 따라야 한다"고 충고했다. 명패엔 'the buck stops here'라 쓰여있다. '모든 책임은 여기에 있다'는 뜻이다.

'머로 순간'을 노골적으로 천명한 건 K논설위원이다. '신문은 정권을 편든 적 없다'(23일)는 칼럼 제목이 일종의 커밍아웃처럼 읽힌다. "어떤 대통령이 '조중동을 내 편이라 여겼는데 어느 날 배신 당했다'고 생각한다면 참 난감하다"고 했다. '어떤'이란 관형사로 블라인드 처리했지만 누가 봐도 윤 대통령을 지칭했다.

'머로 현상'을 꺼낸 이준웅이 말했다. "역사를 바꾸는 건 '주장'이 아니라 '결정적 사실'이다." 맞다. 박종철 고문치사 보도가 그랬고 최순실 태블릿 보도도 그랬다. 그래서 이준웅은 논설실이 아니라 편집국이 뛰어야 한다고 독려했다. 머로가 매카시즘과 싸울 때도 그랬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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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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