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아래·책 속에서·자연밥상…해외여행 안 부러운 이색숙소 매력
드넓은 잔디밭에서 가족 이벤트를 하기 좋은 캠핑장 '캠프 안단테'. 캠핑장 바로 옆에 24시간 찜질방이 있어서 찜질복을 입은 채로 마당에 모여 모닥불을 지피고 불멍을 즐기는 재미도 그만이다. |
"이번 아버지 팔순은 청도에서 한다. 긴말 안 한다. 다들 청도로 와라! 뚝."
아버지의 단호하고도 일방적인 전화 통보는 일본이나 베트남으로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우리를 맥 빠지게 했다. 아버지가 이미 결심하신 거라면 게임 오버, 협상은 없다. 이 명자 호자 쓰시는 우리 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청도 고수리에서 나고 자라, 공무원 퇴직하자마자 고수리 인근 선산에 가족공원 가꾸는 재미 하나로 살고 계신 그야말로 못 말리는 청도 예찬론자다.
그냥 생신도 아니고 팔순 생신인데 허구한 날 가는 청도가 웬 말이냐, 맏언니부터 다섯째 막내까지 차례대로 돌아가며 협상을 시도했지만 역시나 씨알도 안 먹혔다. 결국 청도를 벗어날 수 없게 된 우리는 청도를 구석구석, 샅샅이 뒤져야 했다. 그래도 팔순 잔치인데 뭔가 특별하고 근사한, 힙한 여행 장소를 물색해야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버지가 옳았다. 지금부터 하게 될 이야기는 비싼 돈 들여 떠났던 환갑 여행이나 칠순 여행보다 더 완벽했던 청도에서의 특별한 하룻밤, 아니 이틀 밤과 사흘 밤에 관한 이야기다.
캠프 안단테
너른 잔디밭서 글램핑 즐길 수 있어
24시간 운영 찜질방까지 일석이조
스테이 온 페이지
서점 경영하던 부부 운영 독채펜션
펜션 건물 옆에는 서점 겸 북카페도
목수와 시인
하루 한 팀만 손님 예약 받는 민박
손수 만든 재료로 조식·석식 제공
◆자연과 함께하는 하룻밤, 캠핑장 '캠프 안단테' feat. 첨성대 불가마 찜질방
사실 우리의 가족여행은 늘 녹록지 않았다. 국가가 대대적으로 산아제한정책을 펼치던 1970년대. 둘도 많다던 그 시대에 아버지는 타고난 뚝심으로 무려 다섯을 낳으셨고, 아버지의 핏줄을 물려받아 그 오 남매가 집집마다 많게는 셋까지 자식 복이 넘쳐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디 다 함께 여행이라도 떠나게 되면 함께 묵을 숙소를 구하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다.
"여기가 1만 평 조금 넘지요. 원래는 농촌 테마파크를 만들려고 매입했던 땅이니까요."
글램핑장과 비슷하게 캠핑에 필요한 시설과 장비가 다 갖춰진 '이지돔'이 광장 같은 마당을 둘러싸고 무려 6개나 된다. 우리 오남매와 부모님까지 하나씩 총 6개. 가운데 드넓은 잔디밭까지 통째로 전세라도 낸 듯 우리에게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다.
"돔의 출입구가 하늘을 향해 위로 열리는 구조라서 잔디밭에 차를 주차하고 차량과 연결해 쓰시면 실내 공간을 더 넓게 쓰실 수도 있고요."
시설을 안내하는 캠프 안단테의 김영로 대표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섬세하게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시시콜콜 편의시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쩌다 청도가 고향이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순간 아버지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반짝했다. 그도 청도 매전면 출신이라고 했다. 동향 사람을 만난 반가움 때문일까,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도 가난해서 고등학교 때 청도를 떠나야 했던 이야기며 성공하면 꼭 고향에 투자하겠다고 결심했던 이야기, 고향에 돌아와 청도 반시로 명품 감식초를 만드는 데 성공한 이야기, 하지만 수익성이 낮아 사업을 확장하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마치 어제 헤어진 친구를 만난 듯 허물없이 속말을 꺼내놓는다.
"그런데, 저는 아무래도 고향에서 돈 벌 팔자는 못 되나 봐요. 돈은 나가서 벌고 청도에는 자꾸 투자만 하게 되더라고요. 옆에 찜질방도 그런데… 아 참, 이따 짐 다 풀고 나면 저 뒤쪽, 첨성대처럼 서 있는 찜질방 보이지예? 저희가 국내산 소나무로 직접 장작 때서 불 지피는데 최고 800~900℃까지 열기가 나거든요. 24시간 문 여니까 혹시라도 밤에 한기 들면 찜질방에 오셔서 땀도 좀 푹 내시고 허리도 좀 지지시고."
캠핑장 이용객들에게는 할인도 해준다는 말에 4살 막내 조카까지 우르르 몰려가 단체 입장을 했다. 찜질복을 입고 캠핑장과 찜질방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서 따로 잠옷도 필요 없고 저녁 샤워까지 뜨끈한 물에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
뜻밖에도 이 찜질방이 이번 아버지 팔순 잔치의 하이라이트가 될 줄 어찌 알았을까. 헐렁하고 편안한 찜질복을 입고 캠핑장 마당에서 어른들은 불멍을 하고 아이들은 불꽃놀이를 하며 밤을 보내고 있자니, 이 시간이야말로 제대로 '잔치'구나 싶었다. 아버지 팔순에 캠핑은 무슨 캠핑이냐며 제일 투덜댔던 막내가 나지막이 외쳤다.
"이렇게 있으니까 참 좋다. 우리 아버지 생신은 해마다 이렇게 하자!"
◆책 속에서 쉬어가는 하룻밤, 펜션 '스테이 온 페이지'
북 스테이 하기 좋은 독채 펜션 '스테이 온 페이지'의 실내. 객실은 주인장이 직접 큐레이션한 책들이 가득하다. |
하룻밤 정이 무섭고,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다음 주말, 또 청도다. 소설가 한강이 무려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데,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보유국 국민으로서 가만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핑계도 가지가지다. 어쩌다 보니 온갖 핑계를 대며 청도 나들이를 하는 우리가 우스워서 한참을 웃었다. 이럴 때 안성맞춤인 숙소가 바로 여기, 책과 함께 온전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북 스테이 독채 펜션 '스테이 온 페이지'다. 이름마저 스테이 온 페이지라니, 그 책갈피에 머무르면서 발견하게 될 좋은 글귀에 지레 마음부터 설레던 순간이었다.
"아, 방이 없는데 어떡하죠? 객실 예약이 다 찼어요."
소녀처럼 들떠 계시던 어머니는 실망한 눈치가 역력하다. 평생 청도 살면서 이런 데도 여태껏 못 와보고 나는 청도 헛살았다고 하시질 않나, 보니까 연간 회원도 모집하던데 당장 회원 등록을 하자고 하시질 않나. 고깃집 가자고 하면 그 반값이면 온 식구 배부르게 먹는다며 장바구니부터 챙기던 울 어머니가 이토록 외박을 간절히 원하실 줄 어찌 알았을까. 아쉬운 대로 펜션 옆에 자리한 북 카페 '오마이북'을 찾았다. 2019년 문을 연 이곳은 대구에서 서점을 하다 경북 청도로 온 부부가 운영하는 서점 겸 카페다. 1층은 카페와 책 전시공간, 2층은 조용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그리고 3층은 북 스테이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는데, 이곳 역시 예약 마감이다. 역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인 모양, 이토록 많은 사람이 어떻게 알고 구석구석 북 스테이를 즐기고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어머나, 이거 사 가야겠다. 이거 너거 아버지한테 꼭 필요한 책이네."
한참 책을 뒤적이던 어머니가 다시 환한 얼굴로 책 한 권을 꺼내 보이신다.
'욱하는 성질 죽이기'
당첨! 책 제목만 가지고도 하룻밤이 모자랄 만큼 많은 이야기를 어머니와 나눌 수 있을 것만 같다.
책 계산대에는 이곳을 다녀간 이들이 단상을 기록해둔 방명록이 여러 권 있었는데 첫머리에 주인장이 고운 손글씨로 명언을 적어놓았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 여행은 다니며 하는 독서'
무릎을 탁 치며 나도 모르게 연간 회원 모집 안내문을 집어 들었다. 청도는 정말 인심도 후하다. 숙박하는 이들에게는 조식과 석식이 제공된다고 적혀있다. 조식 포함 숙박 상품은 많이 봤지만 석식 제공은 또 처음이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청도에 그런 집이 또 있다!
◆1박 2식의 건강하고 맛있는 하룻밤, 민박 '목수와 시인'
황토민박 '목수와 시인'은 청도에 집 지으러 왔다가 눌러앉았다는 시인과 목수가 자신들이 사는 집의 방 한 칸을 내어 딱 한 팀의 손님만 받는다. |
"남편이 한옥 목수거든요. 처음엔 집 지어주려고 청도에 왔는데, 집 공사가 아무리 못해도 3개월씩, 6개월씩 걸리잖아요. 그렇게 몇 달을 공사 때문에 여기서 먹고 자고 하다 보니까, 여기가 진짜 살기 좋더라고요."
그렇게 청도에 눌러앉은 게 벌써 5년 전. 방 두 칸짜리 집을 지었는데 비어있는 방 한 칸이 쓸쓸해 보여 민박을 시작했다. 달랑 방 한 칸을 가지고 꾸려가는 민박집이다 보니 손님도 오직 한 팀만 받는다. 생일맞이 여행을 왔다고 하면 읍내 장 봐다가 미역국도 끓여주시고, 노래를 좋아하는 흥이 많은 손님에겐 불멍용 가마솥에 불을 지펴 야간 조명도 밝혀주신다. 그렇게 목수인 남편은 손님들에게 음악 감상소가 되어줄 정자를 짓고, 안주인 박연찬씨는 그런 시간들을 엮어 시를 짓는다.
기분 탓일까. 직접 만들었다는 산야초 발효액에 들어간 재료며 오늘 오실 손님을 위해 음식 장 본 이야기 같은 시시콜콜한 일상사를 나눌 뿐인데도 이곳에 앉아있는 시간들이 왠지 시적(詩的)이다.
"보통 좋은 숙소는 손님들이 행복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저는 주인이 행복한 곳이 진짜 좋은 숙소라고 생각해요. 주인이 행복해야 손님들도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거든요."
정자에 앉아서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데, 정자 한편에 잔뜩 쌓인 LP 음악을 듣는 기분이다. 그 속에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가 섞여 들어온다.
아, 오늘은 여기서 하룻밤 머물러야겠다. 머물러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진정한 청도의 맛을 음미할 시간이다.
글=이은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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