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길이 530m의 보현산댐 출렁다리. 주탑 전망대에 오르면 경간에 빗금으로 쏟아지는 유성우 같은 현들 너머로 보현호가 360도로 짙푸르다. |
국도를 따라 제법 큼직한 노점상들이 여럿 보인다. 층층이 쌓인 포도 박스 곁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늙은 호박의 존재감이 도드라진다. 과수원에는 빨간 사과가 별처럼 많고 포도밭은 대개 그물로 꽁꽁 싸 매여 있어 누군가의 보물임을 알겠다. 한산한 길가에 생뚱맞게 선 꽈배기 트럭을 향해 덤프트럭 아저씨가 호다닥 뛴다. 언뜻, 고소한 냄새가 인중을 스친다. 오리장림 앞 노점에는 한 사람이 졸고 있고 멋진 숲 속에는 젊은 걸음이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멀어진다. 앞서 가던 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보현산 댐 공원'으로 휙 빠져나간다. 또 앞서가던 차가 '보현산 댐 전망대'로 쓱 들어선다. 흔들리지 않겠다고 작심했으므로, 주먹을 꽉 쥐고 일단 저 앞에 보이는 출렁다리로 간다.
새 명물 출렁다리 1년 동안 61만명 찾아
주탑 전망대 오르면 360도 파노라마 뷰
보현산댐 둘레길·오리장림도 산책 스폿
고현천엔 최근 관찰데크와 탐방로 조성
보현산댐 출렁다리는 별을 형상화한 높이 52m의 주탑 2개가 특징이다. 지난해 완공 이후 1년 동안 61만명이 찾은 영천의 명물이다. |
◆ 보현산댐 출렁다리
주차장에서부터 떠들썩하다. 관광버스도 여럿이다. 음악소리 들린다. '미녀와 야수'다. 출렁다리 입구에 포도를 판매하는 농부가 계신다. "아…종이 뜯지 마세요..아아…누르지 마세요…" 산적 같은 농부의 여린 중얼거림이 음악소리에 얽힌다. 초승달이 내려앉은 데크 광장 위로 황금별이 번쩍, 주의를 앗아간다. 별을 가슴에 단 엑스자 모양의 주탑을 멍하니 바라보며 엑스칼리버를 생각한다. 보현산댐 출렁다리다. 총길이 530m의 다리로 별을 형상화한 높이 52m의 주탑 2개가 특징이다. 지난해 완공되어 1년 동안 61만명이 찾아왔다는 영천의 명물이다.
다리는, 약간 꿀렁댄다. 제법 안정감 있게 나아가지만 예민한 세반고리관은 금세 반응해 이따금 휘청거리게 된다. 주탑의 전망대에 오르면 경간에 빗금으로 쏟아지는 유성우 같은 현들 너머로 보현호가 360도로 짙푸르다. "꺄아아아아아" 아주 먼 데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는 비명에 일제히 돌아본다. 저 먼 산꼭대기에서부터 하늘을 가로질러 두 사람이 날아온다. '집 와이어'다. 길이 약 1.4㎞에 90초라 한다. 하강 속도가 시속 100㎞를 넘는 구간도 있을 만큼 속도감 있게 보현호를 횡단한다. 다리 끝에 다다르자 하늘을 날아온 사람들은 이미 떠나고 없다. "저가 330m 높이라." 정체 모를 아저씨가 가리키는 곳에 제비활치 입 모양의 봉우리가 있다. 그 곁으로 부약산 암봉 아래 콩 만하게 자리한 법룡사와 덤덤하고 의젓하게 선 보현산이 보인다.
출렁다리 왼쪽으로 난 데크길을 따라간다. 출렁다리와 보현산댐을 연결해 원점 회귀하는 수변 둘레길이다. 총 거리는 3㎞ 정도 된다. |
◆ 보현산댐 수변 둘레길
출렁다리 왼쪽으로 난 데크길을 따라간다. 출렁다리와 보현산댐을 연결해 원점 회귀하는 수변 둘레길이다. 총 거리는 3㎞ 정도 된다. 새소리가 어마어마하다. 교행이 어려운 도로와 나란히 나아가고 그늘도 적지만 걸음은 편하고 산뜻한 데크 산책로다. 호수너머 별장촌 같은 '은하수마을'이 보인다. 댐 건설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이주단지다. 마을 사람들은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 가운데 20여 가구가 저곳에 산다. 옛날 보현산댐 건설을 추진하던 때 주민들의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가뭄이 극심한 지역이어서 분명 물은 필요했지만 고향이 사라진다는 두려움과 건설 이후 안개로 인한 서리로 과수 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게다가 보현산댐의 총저수량은 2천200만 t, 이 물그릇을 다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 곡절 끝에 댐은 지어졌다. 저수율이 절반밖에 안 돼도 농업용수로 충분했고, 서리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보현호 수면에 동동 떠 있는 것은 물 순환 설비인 수면 포기기, 일명 수차다. 파랗고 노란 부표선은 녹조 확산 방지막이나 녹조 제거선이 아닌가 싶다. 보현산댐 상류에는 인공 습지도 조성되어 있다. 고인 물의 녹조 문제는 지난한 노력을 요한다. 보현산댐 관리지사를 지난다. 조용하다. 이제 댐이다. 댐 전망대 쉼터에 '별 따는 아이'가 있다. 아닌가, 별을 거는 아이인가. 저 아래 골짜기에 '보현산 댐 공원'이 보인다. 물놀이장, 족구장, 오토캠핑장, 자연형 캠핑장, 놀이터, 샤워장, 음수대, 산책로, 분수 등이 조성되어 있는데, 잔디광장 주변으로 알록달록하게 보이는 것들은 카라반이다. 강아지, 얼룩말, 코뿔소, 코끼리, 기린, 말, 무당벌레, 토끼 등 다양한 모양의 카라반들이 멀리서 보아도 큼직하게 귀엽다. 트로이의 목마 같기도 하고 스핑크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공원 앞으로 흘러가는 물은 고현천이다. 고현천은 보현호를 이루고 댐에서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만들고는 아래로아래로 흘러 오리장림 곁을 지나고 영천시내에서 자호천을 만나 금호강으로 간다. 이제 다시 출렁다리로 향한다. 보현산댐 전망대 아래에 댐 건설로 수몰된 '하송마을' '살기좋은 용소리' '입석마을'의 표석이 나란히 서 있다. 그리고 댐 완공 후 담수 직전인 2014년 12월 마을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전망대를 지나 '입석 은하수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날 즈음 음악소리 들린다. 비틀스의 '이매진'이다. 가사 없는 선율 속으로 목탁 소리와 함께 반야심경 독송이 스며든다. 길 가에 노란 산국이 흐드러졌다.
골짜기 아래에 '보현산 댐 공원'이 보인다. 물놀이장, 족구장, 캠핑장, 놀이터 등이 조성되어 있는데, 잔디광장 주변으로 알록달록하게 보이는 것들은 카라반이다. |
◆ 고현천과 오리장림
오리장림을 엄청나게 좋아하므로 오리장림에 들른다. 쌓인 포도박스 주변으로 벌들이 분주하고 졸던 사람은 아직도 턱을 괴고 졸고 있다. 숲이 조성된 것은 500년쯤 됐다. 제방을 보호하고 마을을 수호하는 풍치림으로 자천리에서 오동리까지 5리(2㎞)에 걸쳐있다 하여 오리장림이라 한다.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거의 반 이상 유실되었고 국도 확장 공사로 또다시 잘려 나갔지만 충분히 사랑스럽다. 숲에는 왕버들, 굴참나무, 회화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풍게나무, 시무나무, 말채나무, 소나무, 은행나무 등 적게는 스무 살 애기부터 많게는 400살 노거수까지 어우러져 있다. 새해 봄 잎이 무성하면 풍년이 든다고 믿는단다. 오리장림의 북쪽 끝자락에는 '보현산 녹색체험터'가 생겼다. 2016년 폐교된 자천중학교를 활용한 곳으로 교육, 체험, 놀이, 휴식 등을 위한 공간이다.
오리장림 옆으로 고현천이 흐른다. 최근 관찰데크와 탐방로가 조성되어 숲 산책이 보다 다채로워졌다. 물 흐름에 맞춰 생태수로도 복원했는데 자정 기능을 높이고 다양한 생물 서식을 유도해 먹이사슬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고현천에서는 도롱뇽, 수달, 민물가마우치, 흰 뺨 검둥오리, 비오리, 원앙 등을 볼 수 있고, 오리장림에는 황조롱이, 솔부엉이, 흰 눈썹 황금새, 붉은 부리 찌르레기, 때까치, 파랑새 등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황조롱이는 서식이 기대되는 목표종이란다. 날개가 길고 검은 새가 수로에서 봉림교 아래를 지나 습초지로 날아간다.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장담할 순 없지만 파랑새가 아니었을까나.
■여행 Tip
20번 대구포항 간 고속도로를 타고 북영천 IC에서 내려 청송방향 35번 국도를 타고 계속 직진하면 된다. 국도변을 따라 화북면 자천리의 오리장림, 보현산 녹색체험터, 보현산댐 공원, 보현산댐, 보현산댐 전망대, 은하수마을 그리고 보현산댐 출렁다리를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출렁다리 이용시간은 하절기인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인 11월에서 2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보현산 댐 정상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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