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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스페인 세고비아 '백설공주 성'과 마주하다

2024-12-06

인구 6만명 해발 1000m 고원에 자리
로마시대 요새 위에 지은 성 '알카사르'
동화같은 비주얼 디즈니가 모델 삼아
화강암만을 사용 축조한 로마 수도교
높이 28m·167개 돌아치 웅장한 기세
고딕양식 대성당 등 중세 건축물 즐비

[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스페인 세고비아 백설공주 성과 마주하다
언덕 아래에서 본 세고비아 알카사르. '알카사르'는 무슬림이 만든 아랍식 요새를 의미한다. 절벽 위의 요새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마드리드에서 나흘을 머물렀다. 프라도미술관에서 하루를 보냈다. 또 하루는 마요르 광장과 마드리드 왕궁, 산 미겔 시장 등을 휘적휘적 다녔다. 그리고 하루는 시외버스를 타고 카스티야 왕국의 옛 수도 톨레도를 다녀왔다. 그리고 아빌라와 세고비아도 빼놓을 수 없었다. 톨레도를 보고 나니 두 도시가 더욱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이 세 도시는 마드리드에서 하루 혹은 반나절 만에 다녀올 수 있는 도시이면서 옛 카스티야 왕국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세고비아는 마드리드 북서쪽의 평균 해발 1천m 고원에 자리하고 있다. 약 6만명의 인구를 가진 크지 않은 도시이지만 역사는 B.C. 7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B.C. 80년경에 로마인들이 점령했다가 8세기 초에는 다시 이슬람에 넘어갔고, 1079년에야 알폰소 6세에 의해 탈환됐다. 중세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10세 재위(1284년경) 기간에는 국왕의 거처지로서 영화를 누리기도 했다. 또 1586년에서 1730년까지 스페인 화폐 주조소의 소재지로서 크게 번성했다. 역사가 말해주듯 로마와 이슬람, 카스티야 문화가 혼재된 독특한 도시이다.

[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스페인 세고비아 백설공주 성과 마주하다
산 미얀 교회. 한눈에도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까지는 약 55㎞. 버스를 탄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세고비아에 도착했다. 세고비아의 3대 명소는 흔히 수도교, 대성당, 알카사르를 꼽는다. 동에서 서로 이어진 이 세 명소가 그리 멀지 않아서 뚜벅이 여행이 제격이다. 무엇보다 느려야 이 도시의 매력을 제대로 알 수 있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기웃거리며 여유를 부려도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터미널에서 수도교로 방향을 잡고 5분 남짓, 아담한 교회가 눈에 띄었다. 산 미얀 교회이다. 톨레도 대성당처럼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고 말끔했다. 한눈에도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1124년에 완공했다고 하니 이슬람을 몰아낸 이후의 초기 건축물이다. 천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건축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카스티야 로마네스크 건축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스페인 세고비아 백설공주 성과 마주하다
로마 수도교. 28m 높이에 길이 728m에 달하며 돌 아치는 무려 167개다.
교회를 지나자 금방 웅장한 돌기둥 아치가 나타났다. 세고비아의 첫 번째 명소이자 랜드마크로 꼽히는 수도교이다. 다른 유럽 도시에서도 심심찮게 보았지만 세고비아의 로마 수도교는 자못 특별했다. 2천년 전에 건설된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고 웅장하며 완벽한 자태였다. 28m 높이에 728m에 달하는 167개의 돌 아치는 수로가 아니라 석조 예술품처럼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떤 접착제도 없이 화강암을 깎아 쌓은 것이란다. 페루 쿠스코의 12각 돌의 정교함에 못지않았다. 눈을 뗄 수 없는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수도교 옆쪽의 계단을 올라가면 수로 부분도 가까이 볼 수 있다. U자 형태의 수로는 1.8m의 폭에 1.5m의 깊이인데, 1㎞마다 10㎝의 표고차를 두어 17㎞ 떨어진 프리오 강의 물을 도심 곳곳에 끌어들였다. 1884년까지 물이 흘렀다고 하니 그 기술력이 놀랍다. 지중해의 가장 변방 지역인 이곳까지 이렇게 정교한 수도교를 만들었으니, 당시 로마제국의 위세와 기술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믿기지 않아서 악마가 만들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소녀의 전설이 전해오지만 실제로는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이 갑자기 생겨난 이 엄청난 건축물을 보고 악마가 아니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것이라며 만든 소문이란다.

계단에 올라서야 아소게호 광장의 존재감이 눈에 들어왔다. 1997년부터 이 광장은 차량 통행이 금지됐다. 차량이 오가면서 생기는 미세한 진동 때문에 수도교가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광장의 말끔함 때문에 수도교가 더욱 웅장하게 보였다. 게다가 로마 건국신화의 '늑대 젖을 먹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동상은 수도교와 함께 로마제국의 위용을 웅변하고 있었다.

광장에서 서쪽으로 도심을 향해 걷다 보니 외벽을 스파이크 모양으로 장식한 인상적인 건물이 보였다. '까사 델 로스 피코스(Casa del los Picos)'라는 이 건축물은 15세기에 당시 유행하던 이슬람 양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이슬람과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절, 적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 뾰족하게 벽면을 장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금방 후안 브라보의 동상이 있는 산 마르틴 광장이 나왔다. 깃발을 쥔 후안 브라보의 모습은 당당하고 의연했다. 그는 16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카를로스 5세 황제가 과도한 세금을 물리자 이에 저항하며 민중 봉기를 주도했던 세고비아의 민중 영웅이란다. 동상 왼쪽으로 보이는 산 마르틴 성당은 11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코 양식의 건축물이다. 특히 기둥머리의 섬세한 조각과 무데하르 양식의 정사각형 탑으로 유명하다.

[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스페인 세고비아 백설공주 성과 마주하다
'성당의 귀부인'으로 불리는 세고비아 대성당. 고딕 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세고비아의 두 번째 명소는 마요르 광장의 세고비아 대성당이다. '성당의 귀부인'이라는 별명답게 앞의 두 성당과 달리 화려하고 우아했다. 1527년에 완공된 가로 50m, 세로 105m의 이 성당은 고딕 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유럽의 다른 성당들이 웅장한 남성적 모습이라면, 이 성당은 우아한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풍긴다. 부속 박물관에는 각종 회화 작품, 보물 등과 함께 유아의 묘비가 있다. 유모의 실수로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엔리케 2세 아들의 묘비이다. 왕자를 실수로 죽게 한 유모도 즉시 그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었다고 한다.

대성당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작은 골목을 벗어나자 곧 탁 트인 들판이 펼쳐졌다. 그 들판을 바라보며 우뚝하게 자리한 건물이 세 번째 명소인 세고비아 알카사르였다. '알카사르'는 옛 무어인들, 즉 무슬림이 만든 아랍식 요새를 의미한다. 세고비아 알카사르 역시 로마시대의 요새 위에 지어진 것이다. 하지만 세비야의 알카사르나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같은 곳과는 달리 이곳은 아랍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알폰소 8세(1155~1214) 때 무슬림 양식의 성을 헐고 새롭게 지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세고비아 알카사르는 월트디즈니의 백성공주 성의 모티브가 되어 '백설공주 성'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정면에서 바라본 실제 모습도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비현실적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드넓은 평원에 세워진 흙빛의 외벽과 특색 있는 지붕 모양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좌측 언덕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푸른 잔디밭을 배경으로 절벽에 우뚝 선 요새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은 카스티야 왕가가 가장 좋아했던 궁성이자 왕국을 방어하기 위한 주요 요새였다. 1474년 카스티야 이사벨 여왕이 즉위식을 한 곳이자 16세기에 스페인을 최고 전성기로 이끌었던 펠리페 2세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그 후 2세기 동안 감옥으로 사용되다가 카를로스 3세 때인 1762년부터 왕실포병학교로 100년간 사용되기도 했다.

정원에는 성을 가릴 정도로 꽤 큰 '도스 데 마요(Dos de Mayo)' 기념비가 서 있다. 정식 명칭은 '5월2일 영웅들의 기념비'이다. 1808년 5월2일에 나폴레옹에 맞서 일어난 시민 봉기를 기념하는 탑이다. 이 봉기는 프랑스의 무력 진압에 저항하며 더욱 크게 번졌고, 결국 스페인 독립의 시발점이 됐다.

알카사르를 나와 다시 수도교로 방향을 잡았다. 도심의 좁은 골목길에는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세고비아 기념품 가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아기 돼지이다. 바로 새끼돼지 통구이 요리, 즉 '코치니요 아사도'의 영향으로 세고비아 대표 캐릭터가 된 것이다.

'코치니요'는 새끼돼지를 의미한다. 세고비아에는 도토리나무가 많다. 도토리를 먹여 방목해 키운 돼지는 육질이 좋고 냄새도 나지 않아 최고로 친단다. 어느 해 돼지가 공급 과잉이라 수요 조절을 위해 새끼돼지를 먹기 시작한 것이 이 요리의 유래이다. 일설에는 스페인을 점령한 무슬림들이 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를 못 먹는 것에 착안해 그들을 세고비아에서 쫓아내기 위해 식당에서 오직 돼지고기만 구워 판 것에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유래야 어쨌든 코치니요는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이 먹어보고 싶어 하는 명물이 됐다.

[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스페인 세고비아 백설공주 성과 마주하다

이제 그 코치니요를 맛볼 차례이다. 수도교가 있는 아소게호 광장에는 120년 넘는 코치니요 노포가 있다. 가게 앞에 창업자의 흉상을 세워 놓았을 정도로 자부심이 강한 식당이다. 코치니요는 화덕에서 두 번이나 굽는단다. 돼지 모양 그대로 통으로 나온 구이를 접시로 잘라 주었다. 고기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보여주는 퍼포먼스이다.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비주얼이지만 진한 풍미가 군침을 돌게 했다. 포크로도 쉽게 뜯어질 정도로 부드러웠다. 바삭한 껍질에 촉촉한 속살, 그야말로 '겉바속촉'의 정석이었다. 식감이나 느낌이 전반적으로 베이징 오리구이 같기도 했다. 거기도 통오리를 가져다가 손님 앞에서 직접 껍질을 잘라주지 않던가. 사람 사는 세상 어디나 비슷하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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