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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자재 거상 고 박철웅 명예회장..지역사회와 마지막 인사

2024-12-23

의리 정도경영인으로 대구경북 경제인 회자
전국 제일 건설자재 거상..업계 '큰 별이 졌다'추모
17일 미국서 별세..25일부터 지역사회와 마지막 인사

건설자재 거상 고 박철웅 명예회장..지역사회와 마지막 인사
지난 17일 미국에서 별세한 박철웅(왼쪽 둘째) 홈센타홀딩스 명예회장이 고향과 다름 없는 대구 동구 불로동에서 지인들과 만나 사진을 찍고 있다. <박철웅 명예회장 가족 제공>
건설자재 거상 고 박철웅 명예회장..지역사회와 마지막 인사
지난 17일 미국에서 별세한 박철웅(왼쪽) 홈센타홀딩스 명예회장이 생전에 촬영한 가족사진. 왼쪽 둘째는 박병준 홈센타홀딩스 회장, 오른쪽 둘째는 박병윤 홈센타홀딩스 대표. <박철웅 명예회장 가족 제공>
지난 17일 미국에서 별세한 박철웅(80) 홈센타홀딩스 명예회장(창업주)은 영남을 넘어 건설 자재 국내 최고 거상(巨商)이다.

지역 건설업계와 원로 경제인들은 박 명예회장을 '의리'와 '상생', '상도덕'을 지키는 정도(正道) 경영인으로 기억했다. 지역 경제인들은 그의 작고 소식에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지역 건설 자재 업계 큰 별이 졌다"며 추모했다.

고(故) 박 명예회장은 1970년 6월 21일 대구 중구에서 '중앙 도기사'를 창업하면서 건축 자재 사업에 뛰어 들었다. 사업장은 북구 칠성동을 거쳐 지금의 홈센타홀딩스가 있는 북구 노원동으로 이동하면서 레미콘과 아스콘 생산 주력사로 커가며 지역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2002년 기업 공개와 코스닥 상장을 거쳐 2017년 지주회사 전환에 이르기까지 관계사를 포함해 30여 개 계열사를 보유한 기업으로 성장한 기틀을 고 박 명예회장이 다진 셈이다.

지역 건설업계는 의리와 정도경영, 상생경영인으로 그를 추모했다.

고 박 명예회장은 생전 상생과 의리를 경영 제 1철학으로 내세웠다. 1990년대는 전국 1위 건축 자재 매출을 기록할 만큼, 사업이 번창했던 것도 소비자나 거래처와 관계에서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품질을 속이지 않는 운영 원칙'을 고수한 덕이다.

1990년 전국 주택 건설붐 당시 일었던 '도기 파동' 일화는 박 명예회장이 어떤 경영인인지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일화로 잘 알려져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초반 전국 주택 건설붐이 일면서 도기 타일 등 건축 자재가 수요 폭증으로 품귀 현상이 일었고, 정상 가격의 3~4배 웃돈을 줘도 구하기 어려운 그 때 박 명예회장은 대구 건설사에 소매가를 동결해 도기를 적기에 납품했다.

당시 청구는 홈센타에서 납기일에 맞춰 물량을 적기에 제공한 덕에 준공일 전 준공 허가를 받고 입주까지 마쳤다. 신의와 의리를 지킨 박 명예회장의 결단에 청구는 주택사업의 도기 물량 대부분을 홈센타에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고, 홈센타 성장의 발판이 돼 지금까지도 지역 주택건설인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당시 폭등한 가격으로 물품을 납품했다면 홈센타는 일시적으로 매출 규모를 키울 수 있었지만, 박 명예회장은 흔들림이 없이 소신대로 정도경영의 길을 선택해 결실을 맺었다.

사업이 커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지역사회에 대한 역할을 고민하던 박 명예회장은 2대 대구시의원을 역임했고, 지역 케이블 방송사와 대학 등에서 활동하며 지역사회와 꾸준히 호흡을 맞춰왔다.

시의원 당시 박 명예회장이 시의원 입후보 때 신고한 재산을 노린 납치범에게 84시간 납치 당하는 고초를 겪었고 이 사건은 그를 또 한번 새롭게 태어나게 한 계기가 됐다. 이후 박 명예회장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며 삶의 태도를 바꿨고, 지역사회와의 상생에 더 많은 힘을 쏟았다.

박 명예회장은 대구 동구 불로동의 자택을 개조해 지역의 노인이나 지인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쉼터로 내어줬고, 최근까지 '동네 사랑방'의 역할을 했다.

건설자재 거상 고 박철웅 명예회장..지역사회와 마지막 인사
고 박철웅 명예회장(오른쪽 두번째)이 동네 노인과 지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자택을 개조해 만든 사랑방에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고 박철웅 명예회장 가족 제공>
그의 삶의 터전이기도 한 동구 불로시장의 한 상인은 박 명예회장의 작고 소식에 안타까워하며 "정이 많고 부드러운 분이셨다. 동네 일이라면 두 팔을 걷고 거들었다"고 추모했다.

차남인 박병윤 홈센타홀딩스 대표는 "돌아 가시기 전까지 불로동에 마련해 둔 사랑방에서 지인, 지역 주민과 함께 하기를 좋아하셨다. 불로동에 대한 애정이 남 달랐다"고 전했다.

박 명예회장은 지난해 11월말 대구상공회의소의 '원로 기업인 모임'에 처음 참석해 대구의 경제를 함께 걱정하고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의 참석만으로 현장은 고무된 분위기로 선후배 기업인들의 환영을 받기도 했다.

'형제의 난'과 같이 경영권 분쟁없이 가업승계가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도 업계에선 원리원칙에 입각한 박 명예회장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덕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고(故) 박철웅 명예회장과의 마지막 인사는 25일부터 나흘간(4일장) 대구 영남대병원장례식장에서 할 수 있다.
윤정혜기자 hy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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