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일 박정희 동상 앞에서 관찰해본 결과는? 한파 뚫고 찾아온 시민부터 ‘의도된 무관심’까지 동상 앞에서 엿본 시민들의 다양한 시선
“동대구역 박정희동상에 시민들이 많이 찾아올까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동대구역 앞 '박정희 동상'이 세워진 지 22일째입니다. 밀짚모자를 쓰고 볏짚을 든 3m 동상 속 그는 밝게 웃고 있습니다.
이 동상은 공개 전부터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단순한 기념물을 넘어 정치적·사회적 상징성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상은 우리 사회가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얼마나 큰 간극을 보이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수적인 논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상 건립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자 대구시는 행정국 직원을 동원해 불침번을 세웠습니다. 이에 대해 대구시는 “공공시설물의 안정적인 초기 관리를 위해 행정 영역에서 당연한 조치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반응은 엇갈립니다. 설상가상 감시 초소를 세우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한켠에서는 박 전 대통령 동상이 홍준표 대구시장과 닮았다는 말도 들립니다. 닮았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반박이 맞서며 논란은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이 동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직접 동상을 찾아 시민들의 반응을 살펴봤습니다.
존경의 마음 담은 기념사진
8일 오후 2시 46분. 동대구역 광장은 한겨울임에도 비교적 따뜻한 오후 날씨를 보였습니다. 점심 식사 후 산책을 즐기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습니다. 전체적으로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박정희 동상을 볼 겸 나들이 나온 이들도 생각보다 꽤 많았습니다.
1시간 동안 40여 팀이 '셀카' 또는 기념사진을 남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황지윤(48)씨는 21세 아들, 18세 쌍둥이 딸과 함께 출동, 동상 앞에서 다양한 자세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황씨는 “평소 박 전 대통령을 많이 존경하는데, 동상이 세워졌다고 해서 광장에 찾아왔다"며 “마침 아이들도 모두 시간이 맞아서 함께 왔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김모(74)씨는 지나가던 행인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사진을 촬영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동상을 찾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전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나"라며 “동상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 찍었다"라고 답했습니다.
동상을 보기 위해 대구를 찾았다는 이도 있었습니다. 곧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타야 한다던 김이흔(84·서울 강북구)씨는 “동상도 보고, 대구에 사는 친구도 만나기 위해 대구에 왔다"고 했습니다. 옆구리에 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책도 눈에 띄었습니다.
엇갈린 반응, 무관심한 시민들
하지만, 동상을 반기는 시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후 3시 20분쯤. 20대로 보이는 청년 6명이 동상을 지나가다 멈춰 섰습니다. 이들 중 4명은 적극적인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지만, 2명은 머뭇머뭇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중 한 명은 “창피하다. 나는 아니에요"라며 혼잣말을 합니다. 이 동상이 불러일으키는 갈등의 축소판 같았습니다.
동상 앞을 지나던 한 가족은 동상을 힐끗 쳐다보며 대화했습니다. “저게 누구냐?", “박정희.", “하나도 안 닮았다."
논란을 의식한 듯 '곧 없어질 동상인데 빨리 사진 찍으라'며 일행에게 독촉하는 남성도 있었습니다.
직장인 박모(33)씨는 '공무원 불침번' 논란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기자에게 “기존에 알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이미지와는 다르게 동상이 수수한 모습이어서 자세히 보게 된다"면서도 “역사적 공과는 있지만, 이왕 설치된 만큼 잘 관리가 됐으면 한다. 그런데 공무원이 밤새 동상을 지키고 있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관심도도 꽁꽁' 출근시간
다음날 오전 8시 15분. 출근 시간대에 다시 동상을 찾았습니다. 마침 이날은 올겨울 '최강 한파'가 예보된 날이었습니다. 오전 8시 26분 기준, 휴대폰 알림상 동대구역이 위치한 동구 신암동은 영하 7℃에 체감온도는 영하 10℃.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신발 속 발가락이 얼어붙는 듯한 매서운 날씨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시간 동상 앞을 지나는 시민들은 대부분 동상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많은 시민이 목도리와 귀마개 등으로 꽁꽁 싸매고 바람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이어폰, 헤드폰 등을 끼고 휴대폰 화면을 응시하며 지나는 청년들도 많았습니다. 출근이 늦은 듯 황급히 뛰어가는 이들, 휴대폰 화면을 보면서 동상을 가로질러 가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저의 셈이 맞았다면 오전 9시 15분까지 '동상 앞'을 지난 시민은 총 392명. (동상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뒤편으로 지나간 시민은 제외했습니다.) 이들 중 동상을 쳐다보기라도 한 사람은 61명이었습니다. 전날보단 확실히 관심도가 줄어들었습니다.
이들 중 열 명 정도가 동상 사진을 남기는 정성을 보였는데, 연령대에 따라 관심을 보이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젊은 여성 두 명은 동상의 모습만 찰칵 찍고는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반면,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어르신들은 동상 앞에서 간단한 목례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동상을 보기 위해 왔다는 홍성우(45·대구 동구)씨는 “박 전 대통령의 공이 지나치게 가려지는 시기"라며 “저분의 방식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의 역동성이 크고 분열이 심한 시기엔 박 전 대통령의 리더십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구시에서 동상을 지키기 위해 보초도 선다고 들었다"며 “동상이 자칫 훼손되기 전 한 번 보려고 나왔다"고 덧붙였습니다.
팔공산 마을에 사신다는 75세 할머니도 한파를 뚫고 동상 앞에 왔습니다. 셀카가 마음처럼 찍히지 않자, 그는 기자를 붙잡고 사진 촬영을 부탁했습니다.
50대 중반 남성 두 명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동상 앞에 서고는 서로 사진을 찍어줬습니다. 박 전 대통령을 존경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들은 “안 어려워 봤구나. 우리는 다 존경하죠"라고 했습니다. 경산에서 왔다는 이들은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기 위해 빠르게 떠났습니다.
분실물을 찾으려 동대구역에 들렀다가 동상을 처음 보고, 동상과 안내 문구 등 사진을 찍었다는 고등학생 2학년생도 있었습니다.
50대와 20대 부녀지간으로 보이던 두 사람은 바쁘게 동상 앞을 지나가다가, 동상을 흘끗 보더니 서로 피식 웃었습니다. 그 웃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동상에 시선을 주지 않고 지나다니는 시민들의 심리도 궁금했습니다. 권모(여·32)씨는 “출퇴근길이라서 동상 앞길을 안 지나다닐 수 없다. 그래서 매번 관찰하듯 관심을 주진 않는다. 바쁜 아침엔 그럴 여유도 없다"면서 “개인적으로는 동상 반대 의견을 '소심하게' 표출하려고 일부러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저 동상 앞에서 시민들의 시선도 나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존경의 마음을 표출할 공간이었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저 매일의 출퇴근길, 관심을 두지 않고 싶은 곳일 뿐이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겐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물일 수도 있습니다. 세워진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이 동상이 우리 사회의 갈등과 논쟁, 그리고 복잡한 단면을 비추는 상징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대구역 앞 광장에 들어선 '박정희동상'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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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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