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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
'정치(政治)'라는 말은 동양에서는 원래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을 평안하게 한다"라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다. '정'은 '위정(爲政)'으로 권력을 통해 사회를 질서 있게 유지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치'는 '치인(治人)'으로 질서를 통해 국민 생활을 평안하게 하여 민심을 얻는 것이 목적이다. 고대 동양에서 정치의 최고 경지는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라고 보았다.
맹자도 위정자는 반드시 인의를 통해 국민 경제생활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항산(恒産)을 통해 민심의 안정된 지지 항심(恒心)을 얻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정치로 보았다. 정치 제도는 모두 국민을 위해 마련된 것이며, 국민이 잘살고 귀해지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라 하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는 정반대로 국민의 경제적 안정은 뒷전이며, 극단적으로 민심의 분열만을 이끌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 생활의 안정과 하나로 모여지는 항심(恒心)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우리 사회의 장벽만 쌓는 정치적 갈등이 국가적 혼란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며, 얼마 전 나에게 큰 감동을 안겨준 영화 '두 교황'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두 교황은 자신의 사욕이 아니라 교회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논쟁을 펼친다. 하지만 두 교황은 소통을 통해 서로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결국에는 자신들의 단점으로 인해 교황직을 할 수 없다고 서로에게 양보하며 변화를 이끌어 달라고 논쟁을 벌인다.
보수 혹은 진보라는 신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항심(恒心)을 지닐 수 있는 사회와 국민 경제생활의 안정을 가져오는 항산(恒産)을 주장한 맹자도 국민 경제의 안정 없이는 정치가 바로 설 수 없다는 현실을 피력하였다. 지금의 우리 사회도 이를 위해 각 진영의 이념적 장벽을 높이 쌓을 것이 아니라 화해의 다리를 놓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해 보인다.
우리 사회는 크게 두 진영으로 분열되어, 각 진영은 상대에게는 단점만 있고 장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만연하다. 무책임한 끝없는 탄핵이나 초유의 법원 습격사태 등을 통해 화해의 부재는 우리 사회의 혼란이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두 교황 역시 극단적으로 다른 신념을 지니고 교회를 지키고자 했으며, 결코 타협의 실마리가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두 교황은 품격 높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장점을 이해하고 서로의 신념을 합치하여 변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다. 영화 '두 교황'이 전달하는 "장벽이 아니라 다리를 지어라"라는 말은 우리 사회의 위정자들이 다시 한번 성찰해 보아야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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