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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영 디지털 논설위원 |
지난 3일은 24절기 가운데 첫째 절기인 입춘(立春)이었다.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자리하며, 통상 이날부터 새해의 봄이 시작된다는 의미로 익숙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24절기를 '한국·일본·중국 등 주로 동아시아에서, 태양년을 태양의 황경(黃經)에 따라 24등분한 기후의 표준점'으로 풀이하고 있다. 새해 첫 절후여서, 궁중 및 지방과 가정에서도 다양한 의례와 기복적인 의미가 담긴 의식을 행했다. 아직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같은 입춘축(立春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절기는 기본적으로 수천년 전 중국 황허 유역의 화북지방 기후에 맞춰 만들어진 것인 만큼, 한반도의 날씨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난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한 기상이변이 속출하면서 상징적 의미만 커지는 모양새다.
올해 입춘은 봄이 아니라 동장군을 몰고 왔다. 정서적으로는 '봄의 시작'을 알리지만, 체감과 함께 통계로 나타난 기온을 보면 여전히 겨울에 가깝다. 지난 50여 년간 서울의 입춘 평균기온은 절반 이상이 영하였다. 게다가 낮 최고기온이 영하에 머문 날도 10일이 넘었을 정도다. 이번 설 연휴에 이어, 지난 주말까지 평년 수준을 웃돌면서 옷차림을 가볍게 만들었던 기온이 입춘을 기점으로 급강하하면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 터진다'는 등 관용적 표현이 꽤나 많이 전해지고 있을 만큼 그리 낯설지는 않다. 강한 바람까지 불어 더욱 얄궂어진 날씨가 한동안 지속되면서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은 이번에 단어값을 톡톡히 했다.
많이 배웠다고 모두 교양이 넘치는 것도 아니고, 나이 먹었다고 전부 어른이 아니듯, 춘래불사춘에 해당되는 상황이 비단 계절뿐이겠나. 경제도 깊은 터널 속인데, 마주하는 정치 현실은 봄이 없는 열대 혹은 극지방 같다. 불행하게도, 좌·우의 극단은 심화되고 팬덤에 기댄 스타일은 갈수록 굳어질 것이라는 합리적인 우려가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선진국으로 거론되는 수준의 나라에서 대통령 구하기와 야당대표 구하기가 오로지 현안인 것도 블랙 코미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아쇠를 당긴 관세전쟁이 한 달 정도 유예되긴 했으나 세계적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음에도 불구, 강 건너 불구경하듯, 권력을 둘러싼 여·야의 정쟁은 그칠 기미조차 없다. 정치는 있는데 정치가(政治家) 대신 정치꾼만 있고, 국가는 있는데 국민들을 섬기기는커녕, 걱정케 하는 나라만 있다. '이게 나라냐'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디지털 논설위원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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