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체제는 '반쪽짜리 헌법'…국회에 내각 불신임권 줘야"
정치 부재의 시대, 한국형 정치철학을 묻다 〈5〉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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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이 영남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헌법 개정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헌법학 분야 권위자인 성낙인〈사진〉 전 서울대 총장이 "87년 체제는 헌법학에서 논의된 모든 가설이 이뤄졌고, 그 한계도 확인했다"면서 개헌 필요성을 밝혔다. 특히 이원정부제(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의 결합)로의 개헌에 힘을 실은 그는 대한민국 헌정회 등과 함께 개헌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도 강조했다.
성 전 총장은 지난 20일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논의되는 헌법 개정과 관련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특히 개헌을 통해 탄핵 심판 뒤의 혼란상을 수습해야 한다고도 했다.
성 전 총장은 "대통령은 야당의 국정 참여를 어느 정도 인정했어야 했고, 야당도 대화를 했어야 했다"면서 "때문에 이제는 제도적으로 국회와 정부가 함께 갈 수 있도록 이원정부제를 하도록 못을 박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윤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및 내란죄 수사의 경우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외 권역별 비례제도로의 선거제도 개편과 함께 대구경북 통합에 대해서 긍정적인 목소리를 냈다. 그는 "자기 희생도 없이 지방이 죽어가니 수도권, 중앙정부에서 무작정 예산이나 권한을 내놓으라 할 수 있겠나"라며 "대구경북에서도 시·군을 과감히 통합해 정비하고 일부를 내어주는 희생이 필요하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라고 했다.
최근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헌법'이다.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 중인 것은 물론,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개헌'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때문에 자연스레 최상위 법 규범인 헌법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이 요즘 정치권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헌법학 분야 권위자인 성 전 총장에게 우리 정치권에서 헌법 개정의 필요성 및 사회 개혁에 대한 진지한 조언을 듣고 나선 것으로 횟수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일 국민의힘 소장파 모임인 '첫목회'가 개최한 토론회에 참석해서도 "대통령제의 핵심인 직선제와 의원내각제의 핵심인 의회의 정부 불신임권이 있는 '이원집정부제'를 해야 한다"며 권력 구조 개헌을 제안하기도 했다. 토론회 직후 성 전 총장을 만나 개헌과 정치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尹 비상계엄 위법한 행위지만
수사기관도 적법절차 안 거쳐
미리 내란이라 단정을 해두고
형사처벌하는 것은 부적절해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필요
지자체는 이제 광역으로 가야
서울·경기권과 경쟁 가능해져
▶왜 개헌이 주목받는가.
"미국식 대통령제가 다른 나라에 이식돼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제3세계 국가들이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모두 중임이 끝나고 나면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려 했고, 러시아나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쿠테타가 일어나는 등 문제가 있었다. 결국 미국식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다. 대한민국도 다시 돌아보면 '87년 체제' 이후 전직 대통령들이 구속되거나 가족 문제 등으로 비극적인 상황들이 발생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대통령제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헌정회가 헌법 개정안으로 '권력 분산적 대통령제'라는 안을 냈다. 당시 개정안에 대한 평가 겸 의견을 덧붙인 기조 발제를 했고 이후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이원정부제로 가야하는 이유는.
"헌법학 교과서에서 87년 체제에서 가능한 6개 모델을 만들었는데 마지막 가설로 남겨두었던 '대통령 재임 중 단일 야당이 국회 다수파 장악' 시나리오가 2024년 현실화됐다. 이제 87년 체제에 대한 모든 상황을 봤고 그 한계도 확인했다. 물론 우리 현행 헌법에도 이원정부제(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의 결합)가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국무총리 국무위원 해임 건의권만 있지 '해임의결권'이 없어 반쪽짜리다. 윤석열 대통령이 총리를 왜 못 바꿨나. 국회에서 야당의 동의가 필수인데 안될 것 같으니 못하지 않았나. 즉 야당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야당한테도 권한을 줘야 될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 단순 해임 건의가 아니라 아예 국회에 내각 불신임권을 주자는 것이다. 내각 임명에 대한 권한을 국회 다수당에 줘야 한다. 윤 대통령의 비극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국정 참여를 인정하지 않았고, 야당도 대화보다는 탄핵과 예산을 단독으로 강행 처리하며 두 개의 열차가 평행선을 달렸다. 때문에 이제는 제도적으로 이원정부제를 하도록 못을 박자는 것이다."
▶헌법 권위자로서 재판의 절차적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절차적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민주주의라는 게 실질도 중요하지만 우선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제대로 지켜야 한다. 윤 대통령도 비상계엄의 절차적 정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위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이 나는 위헌 위법한 행위를 했다고 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내란의 경우에는 또 다르다. 대통령이 내란죄를 지어야만이 헌법 84조에 따라서 형사소추를 당하는데 미리 내란이라고 단정을 해두고 형사 처벌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법 절차에서도 절차적 정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검수완박'에 따른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경찰밖에 할 수가 없다. 그런데 검찰에서 특수단을 만들어 수사하는 척하다가 공수처에 보내고 공수처에서는 제대로 수사도 하지 못했고, 영장도 법률에 명시된 공수처 관할 법원(서울중앙지법)을 통하지도 않고 청구했다. 공수처나 검찰에서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번 사법 절차가 매우 적절치 못한 것이다. 물론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적법 절차를 안 지켰지만 수사 기관들도 검찰·공수처가 적법 절차를 안 거쳤다. 게다가 또 법원은 어땠나.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글자 15자가 말이 되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음'이란 것은 우리의 형사사법 절차가 아직도 원시적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선거제도나 행정구조 개편도 개헌에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회의원 선거에도 앞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 고향이 창녕인데 이제 밀양-창녕 선거구로 네 군데가 합쳐져 있다. 인구가 줄어드니 수도권을 제외하곤 전국이 다 그런 식이 될 것이다. 때문에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싹 바꿔야 한다. 지방분권도 시장·도지사가 상당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에 힘을 키워야 한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행정구역 개편이다. 내가 영남대에 있을 때만 해도 대구경북이 하나였고 부산·경남도 마찬가지였다. 충청도 마찬가지다. 이제 광역으로 가야한다. 이미 5년 전에 학회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대구경북이 약 500만명 정도 되어야 서울이나 경기도하고 경쟁할 수 있지. 지금으로선 힘들 수밖에 없다."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사실상 멈춰 있는 상황인데.
"자기 희생도 없이 중앙정부에만 무엇을 내놔라 할 수 있나. 지방이 죽어가니 수도권, 중앙정부에서 무작정 예산이나 권한을 내놓으라 할 수 있겠나. 즉 대구경북에서도 시·군을 과감히 통합해 정비해야 한다. 간단하다. 중앙 공무원이나 정부가 권한과 예산을 뺏앗기는데 좋아하겠나. 다시 말해 중앙공무원 권한을 내려놓게 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도 그렇게 자기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내놓은 아이디어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프랑스도 대표적인 수도권 중심이었는데 지금 '대광역자치단체'로 변화하고 있다. '메가시티'는 세계적인 추세다."
▶정계에서 정치 참여를 예상하기도 한다. 어떤 입장인가.
"헌정회 정대철 회장이 '지금의 대한민국 대통령은 성 총장 같은 대헌법학자가 하는 게 좋겠다'고 하시더라. 욕심 부리지 않고 헌법대로 할 것이라면서 이야길 하셨다. 다만 나라가 너무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무엇을 한다고 이야기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의 혼란이 먼저 정리되고 개헌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사진=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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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1950년 경남 창녕 출생 △대구 복명초등·대구중·경기고 졸업 △서울대 법학대학 학사, 법학과 석사·박사 졸업 △영남대 법과대학 교수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 위원(정보공개위원장) △서울대 법과대학·법학대학원 교수·법과대학 학장·총장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포항지진 피해구제심의위 위원장 △〈재〉한국전쟁기념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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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본부 선임기자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