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반도체 특별법, 상법 개정안, 상속세법, 명태균 특검법 놓고 이견 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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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명태균 특검법'이 야당 단독으로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
27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여야가 주요 쟁점 법안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여야는 소득대체율 이견으로 합의가 지연되고 있는 국민연금 문제를 비롯해 민주당이 강행 처리를 예고한 상법 개정안, 주 52시간 근로 특례를 담은 반도체 특별법 등을 두고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자동조정장치 놓고 줄다리기
여야는 국민연금 개혁에 있어 소득대체율과 자동조정장치 도입 여부를 두고 막판 줄다리기 중이다. 일단 국민연금 모수개혁 부분에서 현행 9%의 보험료율(내는 돈)을 13%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데는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다. 하지만 소득대체율(받는 돈)에 대해선 국민의힘은 43%, 더불어민주당은 44%를 주장하고 있다.
1%포인트의 소득대체율 차이로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빚은 약 3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6일 연금 연구단체인 연금연구회에 따르면 국민의힘이 제시하는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가 될 경우 국민연금의 미적립부채(국민연금 가입자가 받기로 돼 있는 연금 대비 부족한 액수)는 2050년 6천159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19.2%로 추산된다. 민주당이 제시하는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4%가 될 경우엔 미적립부채는 6천458조원, GDP 대비 130.0%로 추산된다. 소득대체율 1%포인트 차이로 미적립부채는 299조 원, GDP 대비 10.8%포인트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인구·경제 상황에 따른 보험료율·소득대체율이 자동 조정되도록 하는 '자동조정장치'의 도입 여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한다면 소득대체율 조정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현재 야당과 얘기하는 건 소득대체율 문제보다는 자동조정장치"라며 "정부는 42%, 민주당은 44%, 우리가 절충안으로 43%를 제안했다. 아직 특정은 안 했지만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전제로 소득대체율을 유연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자동조정장치는 '자동삭감장치'라며 모수개혁 합의가 우선이라고 했다.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모수개혁부터 먼저 합의한 후 구조개혁에서 논의하면 되는 문제"라며 "민주당은 그간 일관되게 반대했지만 정부가 진전된 입장, 국회 승인을 조건으로 시행한다고 하는 것인 만큼 논의에서 배제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반도체 특별법, 주 52시간 제외 놓고 이견
반도체 특별법은 반도체 시설 투자에 정부가 직접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야는 보조금 지원에는 합의를 이뤘지만, 세부 내용 중 연구개발 인력의 주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에 대해선 이견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근로시간 제한 때문에 연장근로에 대한 제약이 적거나 없는 대만·미국에 비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약화됐다며 주 52시간 제외를 포함하지 않는 반도체 특별법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최근엔 주 52시간 제외 조항 대신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를 유연화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최장 180일까지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늘리고, 사전 허가 등의 절차를 간소화하자는 내용이다.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우리는 52시간 특례를 포함하는 특별법 원안을 고집해왔지만, 근로기준법의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반도체법에 접목해 운영할 수 있다면 원안이 아니라 절충안도 충분히 협의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며 "반도체법의 주 52시간 예외 적용에 대해 민주당이 완전 수용 불가라는 입장만 밝힐 것이 아니라 반도체 산업 위기 극복 차원에서 전향적으로 판단해달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주 52시간 제외 조항은 근로기준법으로 다룰 문제라며 이 외 합의된 내용부터 우선 처리하자는 입장이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주 52시간 예외 조항 등 여야 간 이견이 있는 것들은 추후에 사회적 대화로 해결해 나가자"며 "여야 합의된 부분을 우선 처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상법 개정안,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 vs 기업 자율성 침해
이번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까지 확대하고 전자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하는 것이 골자다. 이사들이 회사뿐 아니라 주주 이익도 고려하도록 의무화하고, 경영진이 의사결정 시 주주 보호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취지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상법 개정안 통과는 대한민국 주식시장이 선진시장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라며 "공정하고 투명한 자본시장이 확보될 때 경제 선순환이 만들어져 우리 기업과 경제가 다시 도약할 수 있고 고질적인 코리아디스카운트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경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주주 충실 의무가 모호해 소송 리스크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미래지향적 사업 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게 하는 기업 발목 비틀기"라며 "정략적 표 계산만 따져가며 자유시장 경제 질서의 근간을 어지럽히는 악질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은 "이사의 충실 의무 범위가 주주로 확대된다면 이사들은 배임죄 등 소송 위협에 시달리면서 정상적인 경영 판단을 할 수가 없게 된다"며 "기업들은 주가 하락에 대한 주주들의 소송이 무서워 과감한 투자 결정, 인수 합병, 연구개발 등을 주저하게 돼 미래 먹거리 확보가 어려워진다"고 호소했다.
◆상속세, 가업 승계 부담 완화 vs 초부자감세
상속세 등 세제 개편을 두고 여야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국민의힘은 원활한 기업 상속을 통해 가업 승계가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감세 정책을 '초부자감세'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에 중점을 두고 있다. 현재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더해지면 최대 60%까지 올라간다. 이에 국민의힘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다가 최대 주주 보유 주식 할증평가 제도 폐지, 공제액 확대 등으로 가업 승계 부담을 줄여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일을 방지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OECD를 비롯한 전 세계는 상속세율을 내리거나 폐지하는 추세다. 부자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기업을 상속하면 반토막도 못 건지는 나라에서 누가 기업하고 싶겠냐"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를 '초부자감세'라며 현행 상속세율은 유지하면서 상속세 세액 공제 한도를 올리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현행 각 5억원인 일괄 공제액과 배우자 공제액을 각각 8억원, 10억원으로 상향해 면제액을 최대 18억원까지 올리는 것이 골자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은 과세표준 18억원까지는 상속세를 면제해 웬만한 집 한 채 소유자가 사망해도 상속세 때문에 집 팔고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최고세율 50%는 과표 30억원 이상에 적용된다. 공제 한도 18억원을 빼면 과세 표준 48억원 이상, 시가로는 (괴리율 80% 가정) 60억원 이상만 혜택받는다. 시가 60억원 이상의 초부자들 상속세를 왜 10%포인트나 깎아줘야 하나"라고 비판했다.
◆명태균 특검법
명태균 특검법(명태균과 관련한 불법 선거 개입 및 국정농단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두고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지난 대선·지방선거 등에서 명 씨를 중심으로 불거진 여론조사 조작 의혹과 공천 개입 의혹 등을 수사 대상으로 한다.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 중 1명을 임명하되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을 시 후보자 중 연장자가 자동으로 임명되도록 했다.
민주당은 명태균 특검법 강행 의지를 보이고 있고, 국민의힘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에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요청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본회의에서 명태균 특검법을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검찰은 명태균 게이트 수사 착수 15개월 동안 지난해 11월 명씨와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공천 관련 통화 내용을 담은 수사보고서까지 만들었지만 이후 수사에서 핵심은 손도 대지 못하고 변죽만 울렸다"면서 "특검으로 명태균 게이트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해야 도대체 왜 윤석열 대통령이 12·3 내란 사태를 일으켰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야 5당과 함께 명태균 특검법을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사건도 수사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사실상 여당 의원 전체를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며 결사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원내대변인은 "명태균 특검법은 정치권 전체를 수사하는 만능 수사법이고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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