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윤상태 선생 별서
발길 뜸한 외진 곳서 방치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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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상인동 달비골 초입에 독립운동 모의장소 '첨운재'가 있다. |
올해는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은 지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온 국민이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되새기며 그 뜻을 기리는 한편, 정작 지역의 독립운동 유적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대구 앞산 달비골 등산길 한쪽, 수려한 산세 속에 자리 잡은 '첨운재(瞻雲齋)'가 그 대표적인 예다.
지난달 중순 첨운재를 찾았다. 첨운재는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상태(1882~1942) 선생이 동지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논의하던 장소로, 그 역사적 의미가 깊다. 1915년 1월15일(음력), 윤상태 선생은 시회(詩會)를 가장한 모임을 열어 조선국권회복단의 결성을 논의하였고, 이후 단체의 통령(統領)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비밀결사 대동청년단에 가입하고, 독립자금을 전달하며, 파리장서운동 참여, 월배 덕산학교 설립, 대구교남학교(현 대륜학교) 후원 등 선생의 헌신은 이어졌고, 결국 옥고 끝에 순국하였다.
그러나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첨운재는 지금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외진 곳에 남겨져 있다. 달서구 청소년수련관에서 앞산터널 육교를 건너 달비골 평안동산 방향으로 가는 등산로 초입 아래쪽에 있어 일부 시민들이 가끔 찾을 뿐, 이곳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주변에는 안내판과 함께 소박한 한옥이 자리하고 있지만, 관리의 손길이 부족한 탓인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구에는 첨운재 외에도 상당히 많은 독립운동 유적지가 존재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안내문조차 없이 사실상 방치되어 있다. 특히, 현충 시설로 지정되지 않은 유적지는 관리 주체가 불분명하여 체계적인 관리가 어려운 실정이다.
독립운동정신 계승사업회 정인열 홍보위원장은 "첨운재와 같은 독립운동 유적지는 우리 지역의 소중한 자산이다.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를 통해 후손들에게 그 가치가 온전히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최근 첨운재를 방문한 한 시민은 "이곳이 이렇게 중요한 역사를 가진 장소인 줄 몰랐다. 더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안내와 홍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글·사진=김동 시민기자 kbosc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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