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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파 이용태 선생 거경궁리(居敬窮理)의 삶을 추모하며…

2025-04-14
행파 이용태 선생 거경궁리(居敬窮理)의 삶을 추모하며…

김도현 전 문화체육부차관·전 영남일보 논설위원

봄비에 꽃잎이 지는 것을 보면 안쓰럽고 아쉽지만 새싹을 북돋우고 갓난 잎들에 윤기를 반짝이게 해줄 것을 생각하면 반갑다. 하지만 올봄의봄비는 어수선한 시절과 저 참혹한 산불로 잿더미가 된 고향의 산천과 생활 터전과 고달픈 친척을 떠올리면 그지없이 우울한데, 이 아침 뜻밖에 행파 이용태(杏坡李龍兌) 선생의 부음을 들었다. 연세로 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지난 가을까지도 영남 일대 유림 전통문화 행사에 조용하지만 힘찬 음성으로 후진을 격려하고 세상의 도리를 밝히시기에 지치지 않는 행보를 보이시고, 전통문화활동을 격려하는 전시회를 위해 백여점 이상의 휘호를 하셨고, 최근의 벽사 이우성 선생 탄생100주년학술회의에 치사를 하시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영남 일원을 중심으로 유림 부흥운동인 박약회, 후대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 인성교육, 한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인문가치와 과학정신의 결합 등 당신이 몸소 앞장서시고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안될 많은 과제의 왕성한 활동 한가운데서 분투중이셨기에, 너무 뜻밖이고 선생께서 시작하시고 이끌던 이 고귀하고 중차대한 과업의 현재와 장래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선생은 전형적 영남 전통 유가에서 나셔서 가학의 훈육을 받았지만 홀로 서셔서 물리학과 수학에 몸을 묻고 미국에서 첨단 과학을 익히시고 한국에 오셔서 컴퓨터와 인터넷 사업을 몸소 개척하셨다. 필자는 어려서 선생과 벗했던 가형들로부터 선생을 듣고 알았다. 생각하면 당시 안동 일원의 선생 또래는 시인 김종길, 물리학자 김호길, 청와대 정무수석 유혁인, 외무부장관 이상옥, 재일문학가 윤학준, 교육학자 김재은, 노동운동가 권중동, 안료연구가 김보현 등 재재다사로 과학 문예 인문학 행정 등에서 한국현대화의 최선두요 동량이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한국 최초로 만들어진 8비트 트타이잼 퍼스콤을 선물 받았고 나래이동통신 데이콤의 발전을 가까이서 귀동냥했다. 두루넷이 나스닥에 상장되는 등 날개를 달았다가 한전의 케이블 이용이 정권에 의해 돌연 강제회수 회수되자 정치적 불가항력으로 쓰러진 것을 경영무능력으로 낙인 찍히는 것에 선생께서 분루를 삼키는 것도 보았다. 하지만 선생은 일찍이 가학과 유학으로 익히고 축적한 존양(存養)과 거경궁리(居敬窮理)를 더욱 굳게 다짐하여, 한문 한시 서예 중국어 과학 전통문화의 이해를 최고 수준까지 도야하셨고, 인성교육과 과학과 인문가치의 융합운동에 미래와 후대를 위한 헌신에 마지막까지 몰두하셨다. 선생은 장수하시며 마지막까지 활발한 사회할동과 연구에 매진하셨지만 젊은시절 병약하셔서 야채로 관리된 식단의 도시락을 들고 업무상 회식에 나가고 80대중반에도 북한산 능선에서 필자와 마주친 적도 있었던 노력으로 유지된 건강이었다. 왠일인지 작년 봄 선생의 처남인 도산 종손 이근필선생의 운명, 연이은 처제인 학봉선생 종부 이점숙여사 그리고 오늘 선생의 귀천, 다시 선생의 남매끼리 하늘에서의 상봉은 어떨지, 남아 있는 우리에게는 큰 슬픔이다.

선생은 영남 선현의 모범적 행적을 당신의 삶 가운데서 거경 궁리 천실(踐實)을 관철한 당대의 진정한 군자이시다. 오늘날 정보화 선진국은 선생에 큰 빚을 졌고, 인성교육과 인문정신과 과학의 융합은 선생의 개척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에서 특히 영남에서 선생 같은 학식 인품 온화한 자애를 갖춘 군자를 언제 어디서 뵈올수 있을지, 필자는 일찍 하해 같은 사랑을 입고 티끌만한 보답도 못함에 눈물 흘리며 그저 명복을 빌고 선생의 위대한 일들을 영남의 아니 한국의 뜻있는 군자들이 이어가기를 빈다.

김도현(전 문화체육부차관·전 영남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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