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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의 시와 함께] 이실비, “오해와 오후의 해

202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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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시인


만약 태양을 깎을 수 있다면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가를 수 있다면 기쁨과 고단함이 몸을 섞으며 쏟아내는 붉은 즙을 삼키고 반의 반으로, 반의 반의 반으로…… 깎은 태양을 한 조각씩 바다에 퐁 퐁 퐁 빠트릴 수 있다면

장관일 거야

난도질당한 태양 껍데기는 그냥 버려지겠지

칼 한 자루만 남기고

웃는 사람이 우는 사람의 입에 용과를 잘라 넣어주면

훔친 알을 먹는 기분이었다

-이실비, “오해와 오후의 해”


태양을 삼킨 사람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용과를 잘라 입에 넣어주듯 누군가 껍질을 깎아 반의 반으로 다시 반으로 가른 태양을 물려주었지. 그의 입술이 물의 표면처럼 둥글게 열리고 그의 몸이 바다처럼 기쁨과 고단함으로 붉게 물들 때. 그때는 바다가 지구라는 솥 위로 흘러넘쳐 버린 저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사랑이라는 칼, 목숨을 훔치는 흉기. 서로의 삶이 벗겨진 안개처럼 위태롭게 던져지는 밤, 해바라기의 검은 얼굴로 말할 것이다. '태양을 훔쳐먹은 기분이야' 웃어도 울어도 우리의 시간은 공범의 형식을 가졌네. 이제 태양이 몸속에서 하는 일은 그저 식어가는 것. 어쩌다 보게 되는 피의 빛깔처럼 한때 불이었던 흔적을 지키는 일.
신용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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