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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기계적 중립

2025-06-23
조윤화기자〈사회1팀〉

조윤화기자〈사회1팀〉

"기계적 중립은 틀렸다."


대학 시절 신문방송학과 첫 전공수업 시간, 교수님이 한 말이다. 언론인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지지 않아야한다 믿었던 내게 꽤나 인상적인 말이었다. 물론 교수님의 뜻은 '중립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기계적'이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대기업과 한 개인의 갈등처럼 명백한 힘의 불균형이 존재할 때, 양쪽 입장을 자로 재듯 절반씩 나눠 보도하는 건 언론 역할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발언권이 약한 쪽의 목소리를 더 귀담아들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최근 행정사무감사를 지켜보면서 그 교수의 말이 자주 떠오른다. 지난 17일 열린 대구 남구의회 행감에선 남구자원봉사센터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이 도마에 올랐다. 남구청으로부터 센터 운영을 위탁받은 금화복지재단 이사장이 직원들에게 갑질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행감에선 이사장이 직원들에게 개인 경조사 참석을 종용하고, 센터 업무와 무관한 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인사와 관련해 폭언을 지속적으로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행감 후 제보자인 센터 직원 A씨와 이사장 양측에 연락을 취했다. 이사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경조사 참석은 단순히 식당 인원 예약을 위한 확인이었고, 고용과 관련한 압박성 발언은 한 적도 없다고 했다.


반면, A씨는 행감에서 다뤄진 내용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공론화를 결심한 계기를 물었다. A씨는 "지금은 퇴사한 전 센터장과 직원들이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 이사장이 전 센터장을 향해 '당장이라도 당신을 갈아치울 수 있다'고 말했다"며 "한 조직의 장을 대하는 이사장의 태도를 보며 나도 언제든 배제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몰려왔고, 더는 묵과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들의 주장은 정면 충돌했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결국 그날 기사엔 행감에서 제기된 의혹과 이사장의 반박을 함께 실었다. 그러곤 '양쪽 입장을 고루 담았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사가 나간 이후로도 마음 한구석이 묵직했다. '양쪽 의견을 다 실었다'는 안도감이 교수님이 경계하던 '기계적 중립'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며칠 전 다시 한 번 A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는 "보도 이후 제보자 색출 시도가 있었고, 고용 불안을 더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2차 피해가 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스스로 다짐해본다. 비슷한 일이 또 생긴다면, 그땐 더 치열하게 취재하고, 더 오래 고민하자고. 균형이라는 말에 쉽게 기대지 않도록, 그 판단이 누구에겐 외면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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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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