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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뼈에는 이념이 없습니다

2025-06-25 11:03
김두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운영위원

김두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운영위원

칠곡은 '호국의 도시'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벌어진 낙동강 방어선의 중심지였고, 다부동 전투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방어선이자 가장 많은 희생이 있었던 곳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땅 위에서 평화의 씨앗을 틔울 수 있지 않을까.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은 공동유해발굴 TF를 구성하고, 화살머리고지에서 2019년 기초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북미 관계 악화와 남북관계 경색으로 사업은 멈춰 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현재까지도 낙동강 유역의 전투지역에서 유해발굴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당연히 국군의 유해뿐만 아니라 인민군 유해도 함께 발견된다. 하지만 국군 유해는 유족들이 등록해놓은 DNA 정보로 신원이 확인되는 반면, 인민군 유해는 확인 절차조차 쉽지 않다. 대부분은 익명 속에 다시 땅으로 묻히고 있다.


2019년, 나는 금강산 새해맞이 행사에서 북측 인사에게 이런 제안을 한 적이 있다. "남쪽에서 발굴되는 인민군 유해를 북측에 송환하는 사업을 함께 해보자." 뜻밖에도 북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고, 남북 대화는 멈춰섰지만, 이 제안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믿는다.


이 사업은 별도의 예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미 발굴은 진행되고 있고, 문제는 유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인도주의적 태도에 달려 있다. 만약 북측과 협의가 이루어진다면, 적정한 장소에서 송환식을 열 수도 있고, 나아가 남북 공동 위령제를 추진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지금 파주에는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중공군과 인민군의 유해가 안치된 '적군묘지'가 있다. 그곳은 이념이 아닌 인간에 대한 예우로 세워진 공간이다. 전쟁은 총칼로 끝나지 않는다. 전쟁의 진정한 종식은 죽은 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넬 때 완성된다.


뼈에는 이념이 없다.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누군가의 아들이었으며, 고향을 그리워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전선에서 생을 마친 이들의 유골을 다시 고향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우리 사회가 진정한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첫 걸음이다.


정부와 국방부는 칠곡군과 이 사업을 협의해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역사와 평화를 잇는 이 사업은, 칠곡이 단지 '호국의 도시'를 넘어 '화해와 평화의 도시'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전쟁이 끝나지 않은 땅에서 누군가의 이름 없는 유골이 다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란다.


김두현/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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