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팩.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유럽 출장길에 마스크팩 세트를 10개 남짓 챙겨갔다. 현지 취재에서 만날 이들에게 줄 작은 선물이 필요해서였다. 한정된 예산과 캐리어에 넣을 수 있는 부피를 고려한 선택이었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조금 더 보태서 고급 찻잔 세트라도 준비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웬걸. 이들은 마스크팩을 받고선 "K-뷰티!"라고 먼저 반응했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마스크팩. 예전 같았으면 'K'를 특별히 떠올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제 'K'는 한국을 나타내는 접두어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현지 취재 도중 약간의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되자, 누군가는 "마치 K-드라마 같다"며 호응했다. 작은 순간조차 'K'라는 언어로 번역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 자녀들이 K-팝과 K-컬처에 푹 빠져 있다는 부연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우리 일행이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자 흥미를 보인 이들도 있었다. 두 차례나 "한국어는 공격적인 북한말과 확실히 다르게 들린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제는 한국어 억양의 차이까지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끌 정도로 'K'가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고 생각했다.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K'라는 수식어가 지겹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건 프리미엄 라벨"이라며 "우리의 조상이 싸워서 쟁취한 품질보증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짧지만 강한 이 표현은 오늘날 K-브랜드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듯하다.
실제로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없어서 못 먹는 K-푸드", "한 번 빠지면 끝없는 K-콘텐츠" 등 반응이 쏟아진다. 최근엔 한국을 다녀온 외국인 사이에서 '서울병(病)'에 걸렸다는 유행어도 생겼다. 서울에 다녀온 뒤 다시 가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뜻인데, 일종의 '밈'처럼 쓰이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런 반응이 이제 서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K-브랜드의 힘은 지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경북 경주는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든 지 오래다. 한국관광공사와 경주시가 공동으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2월부터 2024년 11월까지의 경주 방문 외국인은 117만 명으로 역대급 기록을 세웠다. 불국사와 석굴암, 황리단길, 대릉원, 동궁과 월지, 경주박물관을 찾은 이들은 "역사 도시가 이렇게 힙할 줄 몰랐다"는 후기를 남기고, 그 경험은 다시 SNS를 타고 전 세계로 번져 나간다.
그리고 다음 달, 경주에선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열린다. 이 행사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21개 회원국에서 2만~3만 명 정도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천년고도에 모인 세계의 시선 앞에서 한국은 또 어떤 'K'를 새롭게 써 내려갈까.
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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