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류성룡, 통섭의 새로운 정치 철학 탐색
김춘추와 김유신, 삼국통일의 시발점
류성룡과 이순신, 조선을 구한 지도자들
박정희의 산업화, 류성룡과의 역사적 융합 제안
박정희대통령기념관 홈페이지 갭체.
정부표준영정.
우리 역사에서 위대한 네 번의 만남이 있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고대에는 김춘추와 김유신의 만남이 있었다. 이들의 만남으로 삼국을 통일하고, 당군(唐軍)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 마침내 삼국통일이라는 한민족국가의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중세에는 류성룡과 이순신이 만나 망국의 임계점(臨界点)에 도달해 있던 조선을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쟁에서 구해낸다.
현대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을 만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과 개인의 자유를 이 땅에 도입하고 정착시켜 오늘의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됐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 당시로서는 거의 불가능했던 일본의 산업화를 본받아 성공시켜 오늘의 제조업, 중화학공업의 세계적인 국가를 일구어냈다.
이승만 대통령을 제외하고 모두 TK와 관련된 만남이다. 역사의 가장 중요한 고비마다 TK가 중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TK정신을 지금처럼 박정희·반공·선비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통사(通史)적 차원에서 고찰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에 영남일보는 시대는 다르지만 다섯 번째 위대한 만남으로 박정희와 류성룡의 만남을 제안한다.
◆류성룡과 이순신의 만남
송복 교수에 따르면 선조(1552-1608)가 즉위했을 때 조선은 이미 임계점에 도달해 있었다. 안으로나 바깥으로 더 이상 나라를 끌고 갈 능력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율곡 이이가 그의 상소문 만언봉사(萬言封事)에서 "국비기국(國非其國)-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라고 비판했을까. 조선은 썩고 썩음이 날로 더해가는, 하루가 다르게 붕괴해가는 큰 집에 불과했다.
반면 일본은 동아시아뿐 아니라 당시 유럽 어느 나라도 견줄 수 없는 군사 강국이었다. 거기에 장군들은 전투 경험이 쌓일 대로 쌓인 무장들이었다. 그런 일본이 임진왜란(1592년) 당시 15만명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온 것이다. 조선과 명나라가 온 힘을 다해도 이길 수 없는, 힘의 차이가 너무도 완연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끝까지 버텼고 마침내 살아남았다. 송 교수는 "류성룡과 이순신이 함께하고 있었던 덕분"이라며 "비록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시대를 거쳤지만, 류성룡과 이순신이 '함께'한 그 '위대한 만남'이 있어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졌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또 두 사람의 만남이 위대했던 이유로 백성과 나라만이 충성(忠誠)의 대상이었고, 권력을 이념화하거나 이데올로기화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는다. 송 교수는 "권력의 이데올로기화란 권력을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권력 자체의 소유를 지고의 가치이자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이라며 "이 같은 권력의 이데올로기화는 당시 조선조 조신(朝臣)들과 관리들의 일상화된 행태며 관행이었다"고 설명했다.
◆박정희와 일본의 만남
박정희와 일본의 만남이 어째서 '위대한 만남'이 될까? 이 도발적인 질문에 송 교수는 "1910년 이후, 아니 그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다녀오고 일본이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를 깨친 사람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면서도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오직 박정희만이 일본의 진정한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았고, 거기에 더해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옮겨놓을 줄 알았고 그것도 배가해서 우리 산업으로 만들고 이용할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엔 일본의 것 이상으로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에 맞는 적재적소의 인물을 키우고, 나아가 투입보다 산출이 언제나 많도록 제도·기구·산업의 활성화 등을 이루어 냈다"고 강조했다.
즉 박정희가 일본과의 만남을 통해 산업화에 성공하면서 일본과의 만남을 위대한 만남으로 바꿨다는 해석이다. TK와 보수 정치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 대목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식적이면서도 불법적인 비상계엄이 촉발한 보수 정치권의 위기를 보수 철학의 재정립 기회로 삼는다면, TK는 문명전환기로 평가되는 AI 시대에 다시 한 번 중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영남일보가 박정희와 류성룡의 시대를 뛰어넘는 '다섯 번째 만남'을 제안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정희와 류성룡의 융합으로 통섭적 지혜 찾아야
그러나 박정희와 류성룡의 만남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융합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융합은 단순히 둘 이상의 요소가 섞이는 혼합을 넘어, 각 요소의 고유한 성질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특성과 기능을 가진 제3의 결과물을 창조하는 과정으로 정의된다. 이는 학문이나 사상 분야에서 통섭(Consilience)을 추구하는 핵심 방법론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박정희와 류성룡이란 융합에 참여하는 각 요소는 상대방의 영향을 받아 본래의 한계를 뛰어넘어 변형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패러다임, 문제 해결 방식, 또는 철학적 관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같은 방법으로 새로운 철학이나 이념을 창조한 사례는 많았다. 예를 들어 쇼펜하우어의 의지 철학은 칸트 철학(18세기)과 고대의 불교·힌두교가 결합되어 탄생했다. 카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역시 헤겔(19세기)과 고대 그리스 물질주의의 만남으로 나왔다는 평가다.
만약, 박정희와 류성룡의 만남이 새로운 정치 사상·철학으로 연결된다면,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선조들의 사상에 기반한 정치 철학을 가지는 셈이다. 서구의 자유민주주의나 일본의 산업화 모델을 수용하는 것을 넘어 한국적 맥락(TK 정신의 통사적 고찰) 속에서 창조된 '통섭적 지혜'를 국가 운영의 핵심 동력으로 삼는다는 의미도 된다.
이 같은 영남일보의 제안이 지역 학계나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공론화 되기를 바라며 창간 80주년 특집 '새로운 TK 정신을 찾아서'를 마무리한다.
구경모(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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