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진감국사가 '연화사'를 창건해, 조선 선조 때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절을 일으켜 세우고 '수다사'라 했다. 만여 명 승군이 주둔했을 만큼 절터가 넓다.
춤추는 새, 무을(舞乙). 새가 춤추는 형상의 땅이라 한다. 121년경 신라시대에 무을동방(舞乙洞坊)이었다니 오래된 이름, 오래된 마을이다. 들이 넓다. 벼농사가 성한 곳이다. 아, 커다란 축사도 자주 보이고, 과수원도 흔하다. 반짝거리며 눈을 베는 것들은 저수지고 천이다. 버섯이 자랑인 모양인데 어데 꽁꽁 숨겨두었는지 쉬이 감응되지는 않는다. 그저 마을은 풍요와 자족의 고요로 꽉 차 있다. 새들은,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서 가만히, 아무도 모르게 춤추고 있을지 모른다.
연악산수다사 일주문. '수다'는 '관음보살의 감로수가 넘친다'는 뜻이다. 편액은 취은(翠隱)의 글씨인데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극락교 너머 정면으로 대웅전이 보인다. 오른쪽은 명부전, 왼쪽은 적묵당이다. 다리건너 오른쪽 나무가 300년 넘은 배롱나무다.
◆ 연악산 수다사
무을저수지를 등지고 크고 산뜻한 정미소 옆길로 오른다. 층층의 논과 포도밭을 지나고, 두 개의 작은 저수지를 지난다. 보호수인 느티나무와 정자를 지나고, 서너 채의 민가를 지나면 산길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몇 그루 소나무에 둘러싸인 '연악산수다사(淵岳山水多寺)' 일주문을 마주한다. 솔가리를 잔뜩 인 지붕이 착해 보인다. 연악산은 구미시 무을면과 상주시 청리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700m가 조금 넘는 산으로 상주에서는 기양산이라 부른다. 신라시대 진감국사(眞鑑國師) 혜소(慧昭)가 이 산 봉우리에 흰 연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고 절을 지었다고 한다. '수다사약전(水多寺略傳)'에 의하면 창건 당시의 이름은 연화사(淵華寺), 신라 흥덕왕 5년인 830년의 일이다.
일주문을 지나 반야교를 건넌다. 다리에 녹진히 기댄 고양이는 제 앞발과 노느라 세상에 관심이 없고 아래에는 계곡물이 반짝반짝 명랑하게 흐른다. 다리를 건너면 널찍한 주차장이다. 빈 터 한가운데 포대화상이 세상 재밌게 웃고 계신다. 풍채가 약간 걱정스러울 만큼 넉넉하시다. 그 뒤로 축대가 촘촘하게 쌓여 있고 단풍나무와 은행나무와 벚나무의 숲이 산산한 아름다움으로 서있다. 그들에게로 곧장 뛰어오를 수 있지만 에둘러 연화교를 건넌다. 근래에 지은 듯 말쑥한 요사채와 갖가지 꽃과 나무로 청아하게 장엄해놓은 세계를 가로질러 극락교 앞에 선다. 문득, 뭣도 모르면서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라고 중얼거린다.
극락교 너머 정면으로 대웅전이 보인다. 연화사는 고려 광종 혹은 경종 원년에 불타 대부분 소실되었다. 이후 명종 때인 1185년에 각원대사(殼圓大師)가 크게 중창하고 성암사(聖巖寺)라 했는데 원종 때인 1273년에 다시 큰 비로 허물어졌다. 그렇게 3백여 년이 지나 조선 선조 5년인 1572년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절을 일으켜 세우고 '수다사'라 했다. '수다'는 '관음보살의 감로수가 넘친다'는 뜻이다. 감로수는 중생의 고통을 씻어주는 자비의 상징이다. 임진왜란 때는 만여 명의 승군이 이곳에 머물렀다. 숙종 31년인 1705년에는 불이 났다. 일제 강점기 때 봉률 주지스님은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다고 전한다. 지금 오래된 건물은 대웅전과 명부전 뿐이고 적묵당, 삼성각, 산신각, 요사채 등은 모두 현대의 것이다.
반야교, 연화교, 극락교 세 개의 다리를 건너 경내에 다다른다. 극락교 무지개 아래에 계류가 말랐고 찬란했던 단풍도 다 졌지만 이 계절의 수다사는 산산히 아름답다.
산신각에서 내려오는 대밭에서 명부전이 열린다. 명부전은 경북 유형문화재다. 영조 때의 중건기가 남아 있으며 내외 벽화는 높이 평가되고 있다.
명부에 들어 염라대왕 앞에 서면 머리카락을 잡혀 머리 들어 업경을 보게 된다. 명부전 외벽 벽화에 머리채 잡힌 사람의 그림이 있다. 업경 속 월담하는 자는 무엇을 훔쳤나.
◆ 대웅전과 명부전
대웅전에는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아미타불은 무한한 빛과 무한한 수명을 상징하는 부처로 서방극락세계의 주인이다. 부처님 뒤편의 영산회상도는 보물인데 진짜는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있다. "난로 켜고 계세요." 노 보살님이 말씀하신다. 대웅전의 거친 바닥과 서늘한 공기 속에 잠시 머문다. 연악산 계곡물은 수다사를 감싸듯이 흐른다. 대웅전은 그 물 위에 뜬 연꽃처럼 자리하고 반야교와 연화교와 극락교가 아미타부처님 앞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는 생각을 한다. 낙엽 무성한 계절이어선지 계곡물은 적지만 대웅전 앞 수다사 감로수는 유별나게 맑고 풍부하다.
대웅전 동쪽에 낮게 자리한 것은 명부전이다. 문고리를 잡은 조심스러운 손끝이 덜컹 소리에 움찔한다. 서서히 빛이 스며드는 어둠 속에서 지장보살의 모습이 새벽처럼 드러난다.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이시다. 그는 모든 중생을 지옥의 고통에서부터 구제해 준다. 지옥에서 고생하는 중생들을 극락으로 인도하거나, 지옥문을 지키고 서서 못 들어가도록 가로막는다. 보살님 곁에 늘어선 시왕(十王)들이 일제히 쳐다본다. 쓱, 문을 닫는다. 시왕은 지옥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이다. 명부에는 거울과 저울이 있다고 한다. 생전에 지은 죄를 낱낱이 비추이는 명부의 거울을 '업경대(業鏡臺)'라 하고 죄의 무게를 재는 저울을 '업칭대(業秤臺)'라 한다. 시왕 중 한분인 염라대왕 앞에 서면 머리카락을 잡혀 머리 들어 업경을 보게 된다. 거울을 통해 스스로 지은 업을 낱낱이 보면, 비로소 살아생전에 지은 죄를 분명히 알게 된다. 명부전 외벽 벽화에 머리채 잡힌 사람의 그림이 있다. 업경 속 월담하는 자는 무엇을 훔쳤나.
연악산 삼림욕장. 수다사에서 벚나무와 단풍나무 길 따라 5분 정도 오르면 된다. 숲속에 황토맨발산책길, 황토풀, 세족대, 해먹, 그네 등이 조성되어 있다.
◆ 수다의 세계
대웅전과 명부전 사이 계단을 오르면 대밭 지나 산 중턱에 숨어 있는 산신각에 닿는다. 아주 작다. 두 평이나 될까 싶은 벼랑 땅에 한 평은 될까 싶은 전각이다. 보이는 것은 산뿐이다. 회색으로 변해가는 산. 반야교 계곡을 따라 오르면 연악산 삼림욕장이 있다. 연악산은 식생이 다양한 혼합림이라 계절에 따라 다채롭지만 지금은 늘씬한 낙엽활엽수들이 나신으로 하늘을 떠받들고 해먹들이 사지를 펴고 누워 열린 하늘을 본다. 맨발걷기 황토길과 황토풀, 세족장 등이 조성되어 있는데 지금 계절에는 이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좀작살나무의 청보라 빛 열매가 반갑다. 겨울이 깊어지면 새들은 여기로 와서 춤 출 게다.
내내 계류의 안쪽을 이리저리 걷는다. 멈추고, 뒤돌아보고, 쉰다. 저 문살 너머에 앉으신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은 얼마나 든든한지. 소나무, 보리수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 고로쇠나무, 배롱나무, 홍매화, 벚꽃나무, 생강나무의 정원을 누린다. 극락교를 떠받치고 있는 무지개 너머로 먼 먼데서 찰랑거리는 물소리를 찾아 귀를 쫑긋해 본다. 감로수 낙수소리 쟁쟁하다. 수다사 배롱나무는 3백 살이 넘었다는데, 뒤돌아보는 듯, 쉬는 듯, 어쩐지 조금 아파 보인다. 유명한 황금 은행나무와 붉은 단풍의 빛나는 시절은 지났다. 이제 잎들은 계단 위에, 마당 위에, 돌 틈 사이에 촘촘히 쌓인 채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땅의 빛과 하나가 되어간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늦게 반야교를 건너려고 걷고, 멈추고, 뒤돌아보고, 쉰다. 다시 반야교를 건너면 주먹을 쥐어야 할 것만 같다.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대전방향으로 가다 김천분기점에서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방향으로 간다. 선산IC에서 나가 68번 도로 상주 방면으로 간다. 무을면사무소를 지나 무을저수지가 보이면 선산오곡정미소 옆길로 들어가면 된다. 수다사 입구 표지석이 커다랗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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