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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일의 방방곡곡 길을 걷다] 강원 강릉 대관령 소나무숲길

2025-12-11 11:40
대관령 소나무숲길의 삼단 폭포.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들이 아들을 데리고 내려와 목욕하고 놀다 하늘로 올라간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대관령 소나무숲길의 삼단 폭포.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들이 아들을 데리고 내려와 목욕하고 놀다 하늘로 올라간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흐린 날씨였다. 가을비가 올 듯 말 듯 아슬아슬하다. 대관령 소나무숲길 들머리 삼포암을 기웃거린다. 이 삼단 폭포는 근자에 두서없이 내린 비로 치마골에 물이 불어 장관을 이룬다. 치마골 위는 선자령이다. 우리나라에서 눈바람이 가장 많다는 선자령. 탁 튄 조망이 일품이고 백두대간 명산의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는.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들이 아들을 데리고 내려와 목욕하고 놀다 하늘로 올라간다는 유래에서 이름한 선자령. 그 선자령 계곡물이 치마골로 내려오면서 작은 물줄기까지 흘러들어 삼포암 폭포가 되었다. 옥같이 맑은 계곡물이 폭포가 되어 하얗게 부서져 내리며 우렁찬 굉음을 낸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폭포 밑의 물받이 가마소를 구경한다. 이리저리 뜯어 보아도 영락없는 돌솥이다. 수심이 깊어 명주 실꾸리 하나를 다 풀어야 바닥에 닿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바닥까지 보일 정도로 물이 맑다. 주위로는 너럭바위 할미바위 기암이 절경을 이룬다. 무심코 내뱉는 감탄사에 쭈르르 미끄러져 멍청해진다. 폭포가 퉁기는, 소나기 소리인 듯한 외마치장단. 폭포 음 빛깔이 귀를 환히 밝힌다.


다듬지 않은 산길을 걸어 솔숲교로 간다. 풀숲에 파묻힌 길 위로 덱이 새 길을 내어 발길을 가볍게 한다. 비는 내리지 않지만 물기 머금은 초목이 솔 향기에 그윽하다. 폭포를 내려보며 감상할 수 있는 원형 전망대가 나온다. 그렇게 감정을 줄기차게 흩어버린 삼단 폭포. 그 흰빛 물보라가 아스라이 보이며 비경을 만든다. "우측으로 보행하드래요." 전망대 한가운데 강릉 사투리로 쓴 친절한 안내 글귀다. '~하드래요', 산골 정서와 말맛이 은근 달싹하다. '그거 하지 말드래요' '시상에 이런 일이 있드래요'. 나는 강릉 방언을 흉내말로 해본다. 전망대에 쉬던 몇몇 관광객이 미소 짓는다.


대관령 소나무숲길의 금강송 군락지. 표피가 불그스레한 아름드리 금강송이 꽉 차 있어 숲은 형언할 수 없는 신비와 아름다움을 온통 노출하고 있었다.

대관령 소나무숲길의 금강송 군락지. 표피가 불그스레한 아름드리 금강송이 꽉 차 있어 숲은 형언할 수 없는 신비와 아름다움을 온통 노출하고 있었다.

그중 강릉에서 왔다는 중년 남자가 말을 받는다. '안녕하셨수, 여러분 마카 방쿱소야, 강릉 사투리거 을매나 정겹고 말씨가 고운지 아나?' 한다. 우리가 운이 좋았는지 삼대 적선을 했는지. 강릉 사투리 보존회의 회원이라는 강릉 본토박이를 만나 영동 방언을 '알코 디레기(알려 드리기)' 위해 배포하는 코로나 예방 수칙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쫄쫄 흘르는 무에 더거 비누르 거품이 방글방글 나두룩 문대서 싹싹 비볘 씻거이대. 씻치두 아는 손으루 눈탱이 콧구녕 조댕이를 만치믄 대번에 걸례. 클난다니, 남이구 내구 이마빡이 짤짤 끓그든 대뜨번에 보건소, 120, 1339 선별 진료소르 쫓아 가이대.' 말을 마치며 입을 감쳐문 강릉 남자는 일행과 떠나고 그가 준 수칙을 몇 번이나 읽었다.


나는 이제 진료소가 아니고 소나무 숲으로 '쫓아 가이대'를 해야 한다. 솔고개까지 짧은 거리였다. 솔고개는 대관령 자연휴양림 가는 길, 야생화정원 가는 길, 숯가마 가는 길 가름목이고 나는 서슴없이 숯가마 가는 가파른 덱에 올라섰다. 경사길이 끝나자 가을 낙엽이 흩어져 있는 숲길이 나타난다. 숲은 금강소나무로 가득했다. 껍질이 거무스레한 소나무가 간혹 있었지만, 표피가 불그스레한 아름드리 금강송이 꽉 차 있어 숲은 형언할 수 없는 신비와 아름다움을 온통 노출하고 있었다. 거기다 숲 멀리 산안개가 자욱해 나는 이미 다녀온 숲의 잔영이 그 하얀 허공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환시를 경험해야 했다. 걷기 예찬론자들이 꼭 거쳐 간다는 여기 대관령 소나무 숲.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 인제 자작나무 숲, 축령산 편백 나무숲, 장태산 메타세쿼이아 숲, 성주 성 밖 왕버들숲, 함양 상림 숲, 경주 삼릉 숲 등등 그 밖에 우리의 버킷 리스트가 되는 무수한 숲들. 다가가면 더욱 멀어지는 먼 발치의 숲 안개. 그 안개 속으로 걷게 되면 그날의 숲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대관령 소나무 숲길의 비경. 황금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다.

대관령 소나무 숲길의 비경. 황금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다.

아직 옅은 노란색으로 작은 나무와 숲길에 검불처럼 널려 있는 마른풀과 단풍잎. 여기는 어떻게 해서인지 노란 낙엽만 보인다. 고흐의 해바라기 색감 같은. 그럭저럭 숲가마에 도착한다. 1천℃ 이상의 고온에서 검은 숯, 흰 숯을 구워내는 방법이 안내판에 있다. 그러나 소나무 숲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지나친다. 숲의 오솔길은 이어진다. 길가에도 황금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다. 지치면 소나무를 잡고 숨을 고른다. 어쩐지 투박한 껍질은 굳은살 먹은 할머니 손 같은 정감이 흐른다. 쉬었다 걷는 길은 더 숨차지만, 숲길이 너무 좋아 숲 위로 날아오르는 새처럼 마음에 기쁨이 푸드덕거린다.


노무현 대통령 방문 사진과 쉼터.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다정하게 벤치에 앉아 쉬는 사진이 담긴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노무현 대통령 방문 사진과 쉼터.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다정하게 벤치에 앉아 쉬는 사진이 담긴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대통령 쉼터가 나타난다. 여기 쉼터는 2007년 4월28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와 함께 방문한 곳이다. 두 분이 다정하게 벤치에 앉아 쉬는 사진이 담긴 안내판이 서 있다. 그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좋은 숲은 오래 가져가야 한다"며 이 숲을 잘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주도록 당부했다 한다. 소탈하시고 격의 없던 얼굴 이마의 주름살이 금강송 껍질과 매우 닮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날은 노 전 대통령이 금강송이 되는 날이었다. 오늘은 내가 아니, 우리 모두 움직이는 금강송이 되는 날이다. 여기는 조망이 뛰어난 곳으로, 사방에 덱 전망대를 세워 놓았다. 동으로 경포호가 바다가 강릉시가 한눈에 보인다고 하였으나 이날은 자욱한 안개로 선녀와 산신령 전설을 간직한 어떤 숲의, 꿈꾸는 풍경만을 볼 수 있었다.


대통령 쉼터에서 풍욕대 가는길. 바람으로 목욕한다는 의미를 지닌 곳이다.

대통령 쉼터에서 풍욕대 가는길. 바람으로 목욕한다는 의미를 지닌 곳이다.

이제부터는 가벼운 내리막이다. 그 다보록했던 길가에 산국화가 피어 있다. 날씨 탓으로 더 청초하고 선명했던 산국화.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본다. 연보라색 꽃송이가 유난히 예쁘다. 그때 그 꽃의 신선한 이미지가 먼 훗날까지 오래 남아 있었다. 곧 풍욕대에 이르렀다. 바람으로 목욕한다는 풍욕대. 여기도 쉴 수 있는 의자가 있어 잠시 자리에 앉는다. 이름으로 인해서인지 안개 숲으로부터 이따금 바람이 불어왔다. 길고 가느다란 나뭇가지와 큰 키 풀잎이 잇따라 하느작거린다. 바람이 전하는 말과 솔숲의 향기가 귀와 코를 꼬집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여기는 바람의 언덕이다. 풍장으로 떠다니는 추억과 뚜벅뚜벅 걸은 한나절의 아삭했던 발품이 다만 숲 바람 꽁무니를 잡고 달아난다. 어디서 새소리가 들린다. 마치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신호음처럼 다시 걷는다. 그 무언의 경전 판 같은 소나무를 보고 또 본다. 불쑥불쑥 나타나는 금빛 소나무로 지난 온 길은 되돌아보지도 않았고, 볼 수도 없었다. 느리게 걸어도 숲길은 성큼성큼 까봐졌다.


갈림길 노루목이에 도착했다. 누가 작명했는지 이름만으로도 시적 영감이 풍성해지는 노루목이. 박목월은 '청노루'를 노래했다. 노루는 원색이 누르스름하고 꺼뭇한 털빛이지만, 영감으로 쓴 청노루는 우리말의 리듬과 토속의 아름다움을 살려내고 있다. 시 마지막에 있는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은 더 없는 서정의 가락이지만 오늘은 물러가지 않은 산안개로 청노루도 맑은 눈도 도는 구름도 없는, 그냥 그렇게 불그스레한 소나무 숲이 꾸밈이라고는 전혀 없는 순수한 자연의 큰 몸이 되어 노루를 품어 낳고 기른다. 야생화정원으로 발을 뗀다. 야생화는 온통 이름 모를 꽃들이었다. 그때 느닷없이 안개가 몰려와 정원을 모두 점령하였다. 한 송이 꽃이 모여 꽃밭이 되고 꽃밭은 불시에 안개가 되었다. 주위 모든 게 사라지고 나도 안개가 되어 비로소 나 혼자 홀로 선 나를 볼 수 있었다. 이 짧은 순간이 영원한 시간이란 걸, 곧 안개가 걷히면 또다시 걸어가야 하리라.


글=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유판도 여행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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