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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의 민초통신] 뱀처럼 기지 말자, 말처럼 달리자

2025-12-30 06:00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한 해를 넘기는 마음이 산뜻하지 않다.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는 기분도 거의 들지 않는다. 털어낼 걸 털지 못한 찜찜함일까. 아니면 뒷머리를 잡힌 채 앞으로 나가려 할 때 생기는 불안, 불안정감일까. 거기 아쉬움까지 겹쳤다. 한마디로 우울한 세밑이다.


지난 26일 윤석열 씨 '최후진술'은 그런 느낌을 배가시켰다. 그날 아침부터 언론은 설핏 기대감을 내비쳤다. 4개 내란 재판 중 처음 구형이 이루어지는 체포방해 혐의 결심에서 '그럴 리 없지만 만에 하나' 그가 사과라도 한다면 국면이 묘해질 것이란 말이 나왔다.


#사과 반성 없는 헌법파괴자


한 국민의힘 인사는 "사실 지금이 윤 전 대통령으로서는 국민께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 좋은 때"라며 "에휴~ 근데 그러겠어요?"라고 반문했다. 정치적, 수사적 사과라도 하면 국민의힘도 '내란 정당' 굴레를 벗는 새 발걸음을 뗄 텐데 하는 뉘앙스였다. 장동혁 대표 운신에 변화가 올 것이란 기대까지 담은 말이었다.


물론, 결과는 '역시나'였다. 사과는 없고 궤변은 더 자기중심적이 됐다. 1시간 최후진술을 윤 씨는 장광설로 풀었다. '거대 야당의 폭주' '군 투입 최소화' '대국민 호소 메시지 계엄' 등 레퍼토리도 같았다. 큰 손짓과 고갯짓, 반말투와 야유를 섞는 화법도 여전했다.


변호인의 '계몽령' 주장에 심취한 듯, 우쭐거리는 표현도 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국민을 깨우고, 국민이 정치와 국정에 무관심하지 말고, 제발 일어나서 관심을 가지고, 비판도 좀 해달라는 걸 할 수밖에 없는…"이라는 듣기 난감한 자기합리화를 앞세웠다.


민주주의와 국민, 헌정질서를 향해 '핵 단추'를 누르고도 '안 터트렸다. 경각심을 높이려, 깨어있으라고 발사 시늉만 한 것'이라 우기는 억지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대통령이 계엄 해제를 했는데도 내란 몰이를 하며 대통령 관저에 막 밀고 들어오는 거 보셨지 않느냐. 얼마나 대통령을 가볍게 생각하면 이렇게 하겠는가"라는 등 거꾸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참 비루하고 비겁하고 비천한…"


사실 그간 여러 재판에서 윤 씨가 보인 언행은 이 최후진술의 예고편과 다름없었다. 달포 전 재판에서 그는 여인형 전 사령관을 지목해 "아니 이 자식 이거 도대체 방첩 사령관이란 놈이 수사의 시옷 자도 모르고, 아무리 야전통이라 해도 어떻게 이런 놈이 방첩 사령관을 하나,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느냐?"라고 홍장원 전 국정원 차장에게 물어 법정을 경악하게 했다. 원하는 답을 끌어내려는 유도 질문이라 해도 나라를 대표한 대통령이 쓸 언사는 아니었다.


군사재판에 증인으로 나와서도 뜨악한 말을 서슴지 않았다. 계엄의 밤, 그 급박한 상황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왜, 무슨 전화를 했느냐는 재판부 질문에 "그때 뭐 저도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라고 무덤덤 대꾸하더니 스스로 생각해도 민망한 듯 씩 웃었다.


눈발이 흩날리던 어두운 밤, 특전사 헬기가 국회에 속속 착륙하고 무장 군인들이 집총 자세로 국회 경내에 난입하는 걸 온 국민이 가슴 졸여 지켜보던 그때,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은 '특별히 할 일이 없어' 국회의원들에게 그냥 전화를 돌리고 앉았다는 것이다.


뿐인가. 그는 군인들이 유리창을 깨며 의사당 안으로 진입하는 걸 TV로 보고 김용현(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군인들이 유리창 깨고 들어가는 모양인데 상황을 파악해 보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메시지 계엄일 뿐'이라더니 폭력적 의사당 난입을 보고 막기는커녕 상황 파악만 명했다니 막무가내 비논리도 별것 아니란 투였다.


사령관들에게 '대통령 비상 대권'을 언급한 것도 "그날이 군의 생일이라는 기분 좋은 날이어서 굉장히 급하게 술 마신 기억밖에 없다"라며 잡아뗐다. 국무회의 전후 총리와 국무위원에게 문건을 전한 사실도 기억 못 하는 선택적 기억상실을 별일 아닌 듯 말하며 책임은 부하들에게 다 떠넘겼다. "이런 이가 대통령이라니 참 비루하고 비겁하고 비천하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한 교수는 한탄했다.


3개 특검 활동은 끝났고 윤 씨는 현재 최소 8개의 재판에 부쳐졌다. 내란 우두머리를 포함 그가 받는 혐의도 수십 가지에 이른다. 아직 밝혀내지 못한 '부부 공모 매관매직' 혐의 등까지 추가 기소된다면 그는 어쩌면 한꺼번에 가장 많은 형사 재판에 가장 많은 죄목을 달고 기소된 죄인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2차 종합특검까지 내년에 발족하면 또 어떤 혐의가 얼마나 추가될지 아무도 모른다.


# 나라를 망치는 자기 편애


이쯤에서 1월 중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정에 처음 출석했던 윤 씨가 한 말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저는 철들고 난 이후로 지금까지, 특히 공직 생활을 하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신념 하나를 확고히 가지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놀랍게도 그의 이런 자기 편애 인식은 '헌법파괴자' 낙인이 찍혀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하고 특검에 의해 온갖 비민주 범법 행위들이 드러나는 과정서도 바뀌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를 떠받치는 법치주의, 의회주의, 삼권분립과 인권 존중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키지 않아 파면과 구속, 기소라는 막장에 몰리면서도 그는 파시즘적 추종자들을 모아 대통령직에 복귀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지냈다. 맹목적 '윤 어게인'세력을 등에 업고 거짓 선동에 폭력적 수단을 써서라도 '오직 저만의 자유민주주의 이상'을 펼치겠다는 몽상에서도 완전히 깨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만약 윤 씨가 최후진술에서 사과나 반성의 말을 냈더라면 민주당이 선뜻 2차 특검을 하겠다고 나서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시중에는 3개 특검이 밝힐 건 거의 밝히고도 '을사년 뱀이 기어가듯' 마냥 미적거린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민생문제가 쌓이는 만큼 '특검 피로감'도 쌓여 왔다는 얘기일 것이다.


거기에 윤 씨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 막무가내 '윤 어게인'만 외치던 세력들도 현실적으로 윤의 복귀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뇌물수수 매관매직 등 탐욕스러운 작태가 노출되며 윤 부부는 마냥 끌어안기도, 냉정하게 내치기도 어려운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중이었다.


민주주의를 퇴보시키고 공동체를 분질러버린 악행의 전모와 진실이 아직 완전히 밝혀지진 않았다. 거기다 통일교 등 종교와 정치의 유착을 가려줄 특검 필요성도 작아 보이지 않는다. 다시 두 특검이 도입되더라도 뱀처럼 기어가는 특검은 곤란하다. 병오년, 말이 달리듯 빠르고 짧게 결과가 나오는 특검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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