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人근로자 3년째 증가 “이젠 이방인 아닌 이웃”
車부품 등 제조 생산라인 필수인력 공백 메우고
매년 찾아오는 계절근로자는 농업 핵심 축 성장
가족 동반·장기체류 지원 ‘정착형 인구’로 관리
경주지역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근무 중인 외국인 근로자들이 각자의 공정에서 부품 조립과 검수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경주시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가 '세계인의 날'을 맞아 외국인 근로자의 노동 현장을 담은 사진 전시회 출품작들. <경주시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제공>
대한민국이 단일민족의 틀을 깨고 '다인종·다민족 국가'로 공식 진입했다. 행정안전부와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외국인 비중은 2024년 11월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5%를 넘어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정의하는 다민족 국가의 분류 기준인 '5% 선'을 돌파한 것으로, 한국 사회의 인구 구조가 전환기를 맞이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경북의 변화 속도는 전국 평균을 웃돈다. 2022년 4%였던 경북 내 외국인 비중은 불과 2년 만에 5%로 1%포인트 급증하며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역별로는 더욱 극적이다. 경북 고령군의 경우 외국인 주민(3천233명)이 전체 인구의 10%를 돌파하며 이미 '초(超)다민족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외국인 인력은 과거 제조업과 농어업의 단순 근로를 지탱하는 '대체재'였다면, 이제는 교육과 첨단산업 분야까지 진출하며 지역 경제의 '필수재'로 부상하고 있다.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가는 단기체류자가 아닌, 경북의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정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영남일보는 병오년 새해를 맞아 '다민족 국가 시대' 경북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공존을 위한 정책적 과제를 집중 조명한다. 또 묵묵히 현장을 지키며 꿈을 키워가는 외국인 주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진정한 통합의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경북 지역별 외국인 주민 현황. <그래픽=생성형 AI>
◆ 생산라인 핵심 인력으로 자리잡고 생활권 '확장'
지난달 29일 아직 해가 떠오르지도 않은 이른 시간, 경주 성건동 경주여고 앞 대로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서로 다른 언어가 오가는 가운데 경주의 하루가 또 조용히 시작된다. 언제부턴가 이 같은 풍경이 낯설지 않다.
경주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 수만 1만5천461명(2024년 11월 기준)에 이른다. 코로나19 시기 감소했다가 최근 3년 연속 증가세로 돌아섰고, 최근 1년 새 증가폭(20.6%)이 더욱 가팔라졌다.
외국인 주민으로 범위를 확장하면 그 수는 2만2천507명으로 늘어난다. 이는 경북 지자체 가운데 둘째로 많은 규모다. 총인구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도 8.7%로 고령(10.5%) 다음으로 가장 높다.
경주의 외국인 증가 중심에는 일자리가 있다. 등록 외국인 근로자 가운데 취업 목적 체류자는 6천812명으로 전체의 약 44%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3천798명, 즉 취업 외국인의 55.8%는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 중소기업이 밀집한 경주의 산업구조와 맞물린 결과다. 경주에는 등록기업 2천20여 곳 가운데 자동차 연관 기업이 1천400여 곳으로 도내 약 60%를 차지한다.
현장에서는 외국인 노동력의 비중을 체감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관리를 맡아온 한 제조업 관계자는 "외국인 없으면 공장이 멈춘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며 "내국인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빠지면 생산라인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주 외동읍의 한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국적의 마크(가명·34)씨는 주야 2교대로 근무한다. 그는 "야간조를 마치고 나오면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이 많다"며 "처음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생활리듬이 잡혔다"고 말했다. 마크씨는 6년 전 처음 한국에 들어와 경주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구미나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 월급은 조금 더 받을 수 있지만, 지금은 경주가 더 편하다"며 "쉬는 날에는 중앙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단골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이제 경주가 고향처럼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경주 시내 풍경도 달라진 지 오래다. 성건동과 용강동, 외동읍 일대 번화가에는 베트남어와 한자가 함께 적힌 상점 간판이 늘었고, 중앙시장에는 외국인들이 서툰 한국말로 상인들과 값을 흥정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적 외국인 중에는 고려인 동포가 상당수를 차지하며 이들은 성건동 일대에 정착하고 있다.
경주시는 외국인 전담조직을 운영하며 비자 전환과 행정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 장기체류와 가족 동반이 가능한 지역특화형 숙련기능인력(E-7-4R) 비자 사업을 통해 외국인을 정착형 인구로 관리하고 있다.
손효석 경주시 외국인공동체팀 담당은 "2026년에는 외국인 인재의 지역 정착을 위한 희망이음사업과 외국인 근로자 기숙사 환경개선사업 등이 확대 추진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해마다 다시 찾아오는 가족 같은 이웃
경북 고령군 덕곡면 서용호씨 딸기농장, 외국인 계절근로자와 함께 딸기 수확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달 28일 오전 7시, 경북 고령군 덕곡면 서영호씨 딸기 하우스 안은 분주했다. 딸기를 따는 일부터 크기별로 선별해 상자에 담는 작업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필리핀에서 온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있다. 린린(32), 파울라(29), 마리엘라(26), 마조리(28). 이들이 없으면 농장은 하루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통상 지역 농장의 일손을 메우는 계절근로자들은 12월에 입국해 5개월간 일을 한다. 최대 3개월 동안 연장근무도 가능하다.
서씨의 딸기 하우스는 외국인 계절근로자와 함께한 지 벌써 4년째다. 린린과 파울라는 2024년에도 이 농장에서 일했다. 성실근로자로 분류돼 지난해 말 다시 서씨의 농가에 배정됐다. 이들은 새로 합류한 마리엘라와 마조리에게 딸기 수확 요령과 선별·포장 방법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일도 겸한다. 작업 동선부터 손에 힘을 주는 정도까지 모두 경험에서 나온 조언을 통해 신입들이 쉽게 적응하도록 돕고 있다. 서씨는 "린린이랑 파울라 덕분에 하우스 일이 너무 수월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낮 12시가 되자 농가에서 점심으로 육개장을 준비했다. 서씨 부부와 함께 둘러앉은 계절근로자들은 김치도 곧잘 먹었다. 린린씨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 서씨가 피자도 사줬다"며 "우리 사장님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오후 3시쯤 일이 마무리되면 계절근로자들은 가끔 고령장으로 향한다. 파울라씨는 생선 튀김을 좋아해 생선가게를 자주 찾는다고 했다. 파울라씨는 "장터에서 상인들과 나누는 짧은 대화와 한국인들의 소소한 배려가 또 하나의 활력소가 된다"고 했다.
고령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일은 일상이 됐다. 주민 열 명 중 한 명은 외국인이다. 경북지역에서 전체 주민 중 외국인 비율이 10.5%로 가장 높다. 특히 지역 축제가 열릴 때면 고단함을 풀기 위해 나온 외국인들로 행사장이 크게 붐빈다. 음악을 듣고 다양한 음식을 맛보며 자연스럽게 지역에 스며들고 있는 셈이다. 서영호씨는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을 단순히 일손으로만 봐선 안 된다"면서 "지역과 함께하는 어엿한 우리의 이웃"이라고 말했다.
한국 생활 21년, 토리 엘리엇 포스텍 교수 "외국인 주거안정 정책 마련됐으면"
토리 엘리엇 포스텍 교수는 외국인을 위한 정책으로 주거안정책을 최우선 순위로 꼽았다. <본인 제공>
한국에서 생활한 지 21년이 지난 토리 엘리엇(Tori Elliott)씨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현재 포스텍 인문사회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영국 에든버러 네이피어 대학교(Edinburgh Napier University) 박사과정을 병행하고 있다. 학자이자 연구자,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의 삶은 포항이란 도시와 자연스럽게 맞물려 있다.
엘리엇 교수가 수많은 한국의 도시 가운데 포항을 삶의 터전으로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포스텍을 과학·공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 역량을 갖춘 대학으로 평가하며, 문학과 과학의 접점을 탐구하는 자신의 연구 주제와 인문사회학부의 환경이 이상적으로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한다.
대도시의 복잡한 일상보다는 소도시 특유의 여유와 안정감을 선호하는 그에게 포항은 최적의 조건을 갖춘 도시이기도 했다. 교통체증이 적고 산과 바다를 동시에 누릴 수 있어 어린 자녀를 둔 가족에게는 자연 속에서 다양한 야외활동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라고 했다. 실제로 살아본 경북에 대해 엘리엇 교수는 "역동성과 안정감이 공존하는 지역"이라고 표현한다. 포항의 바다 풍경은 경주의 완만한 전경으로 이어지고, 다시 대구의 현대적인 도시 풍경으로 확장된다고 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예술과 학문을 사랑하는 연구자로서 그는 서울에서 열리는 대형 미술전시와 국제학술대회가 경북에서도 더 활발히 열리길 바란다. 향후 포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POEX)가 국내 주요 전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지역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주길 기대하고 있다. 또한 부산이나 전라도로 이어지는 철도 노선이 보다 자주 운행된다면 생활 만족도가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경북이 더 많은 외국인 전문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도 꼽았다. 그는 '정착을 전제로 한 정책적 시선'을 강조한다. 포스텍과 같은 국제적 거점을 중심으로 국제학교 설립을 검토하고, 장기거주 외국인을 위한 주거안정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엘리엇 교수는 "외국인 전문인력이 단기체류자가 아닌, 한국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려는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라며 "경북 역시 이미 많은 이들의 '진짜 집'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베트남 출신 뚜안씨 "한국인들 도움 있었기에 지금까지 일할 수 있어"
베트남 출신 뚜안씨가 부인과 베트남에 있는 세 딸을 향해 사랑의 손하트를 하고 있다. 박용기기자
"아내와 함께 한국에서 베트남 쌀국수 가게를 하고 싶어요." 경북 구미대학교 인근에 있는 한 고무제품 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베트남 출신 노동자 '뚜안(40)'씨의 꿈이다. 뚜안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기계 앞에 선다. 오전 9시에 시작된 그의 하루는 저녁 7시가 돼서야 끝난다. 베트남 하노이 인근에서 태어나 스무 살을 갓 넘긴 2008년, 한국으로 온 그는 17년 동안 일을 멈춘 적이 없다. 처음 도착한 곳은 울산이었고, 이후 친구를 따라 2009년 지금의 직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엔 한국 날씨가 너무 추웠어요. 그리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어요." 한국 생활 첫 기억을 묻자 뚜안씨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요." 그는 지금 생각하니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낯설어서' 버거웠던 것 같다고 했다. 아직 한국어가 완벽하진 않지만, 일하고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뚜안씨의 일은 고무 원료를 기계에 넣고, 자동으로 압착·가열된 제품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일은 고되지만 열심히 일한 그는 회사로부터 성실성을 인정받았다. 2019년 E-7 비자(외국인 숙련기능인력 점수제 비자)를 취득했다. 비전문취업(E-9), 선원취업(E-10), 방문취업(H-2) 비자와 달리 E-7은 장기체류가 가능하다.
베트남에는 세 딸이 있다. 큰딸은 13살, 둘째는 9살, 셋째는 6살로 뚜안씨의 부모님이 돌보고 있다. 뚜안씨는 3년 전 한국으로 온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딸 생각이 많이 나지만, 딸들을 생각하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요."
한국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 도와주고 있는 든든한 사람도 있다. 구마모사 붓다센터 진오 스님이다. 스님은 뚜안씨의 크고 작은 일들을 옆에서 돌본다. 뚜안씨를 만난 날도 스님은 그의 주민센터 서류일을 돕고 있었다. 최근 스님으로부터 파크골프도 배웠다. 뚜안씨는 "진오 스님을 비롯해 많은 한국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 지금까지 한국에 머무르며 일할 수 있었다"며 "한국은 나의 인생을 바꾼 기회의 땅이자 제2의 고향과 같다"고 말했다.
영덕군가족센터 직원 엘레나씨 "사회적으로 연결될수록 언어도 늘고 기회도 열려"
루마니아 출신 엘레나씨는 외국인들의 지역사회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본인 제공>
루마니아 출신인 엘레나씨(28)는 석사 진학과 해외생활을 동시에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한국행을 택했다. 한국학에 대한 관심 속에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장학제도를 알게 됐고, 이를 계기로 경북대학교 사회복지실천학과 석사과정을 밟게 됐다. 낯선 나라, 한국의 첫인상은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였다. 모든 일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유학생 시절 엘레나 씨에게 한국은 도전과 불안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졸업 이후의 삶이 막연하게 느껴졌지만, 취업 이후 인식은 달라졌다. 현재 그녀는 영덕군가족센터에서 공동육아나눔터 담당자로 근무하며 아이와 부모를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활동을 마련하고, 부모 간 관계 형성과 양육 역량 강화를 돕는 역할이다. 엘레나씨는 "일자리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며 안정감을 가장 큰 변화로 꼽았다.
직장생활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업무용 한국어였다. 학교에서 배운 표현과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는 언어 사이의 간극이 컸다. 그럼에도 한국어 실력이 좋아졌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작은 칭찬이지만,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이 됐다는 것이다.
영덕에서의 생활에 대해 엘레나씨는 "다문화가족과 지역주민이 비교적 잘 어울려 지내는 좋은 공동체"라고 평가했다. 다만 외국인 근로자가 지역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까지는 여전히 제도적 문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결혼이민자가 아닌 순수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출산이나 질병 같은 위기상황에서 의료·복지 지원을 받기 어렵고, 체류자격 유지 역시 쉽지 않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엘레나씨는 한국생활을 통해 가장 크게 성장한 부분으로 "비자와 자격요건 등 수많은 장벽을 넘어 실제 취업까지 이뤄낸 경험"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 학습과 지역사회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람을 많이 만나고 사회적으로 연결될수록 언어도 늘고 기회도 열린다"고 덧붙였다.
석현철
박종진
장성재
정운홍
전준혁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