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부품 공장 생산라인 핵심 인력으로 자리 잡고
매년 찾아오는 계절근로자는 농업 핵심축 성장
외국어 간판 늘고 시군은 ‘정착형 인구’로 관리
경주지역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근무 중인 외국인 근로자들이 각자의 공정에서 부품 조립과 검수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경주시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가 '세계인의 날'을 맞아 외국인 근로자의 노동 현장을 담은 사진 전시회 출품작들. 경주시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제공
'5%'. 국내 총인구(5천180만5천547명·2024년 11월 기준) 중 외국인 비율이다. 2023년 4.8%에서 1년새 0.2%p 증가하면서 5%를 달성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외국인 비중이 5%를 넘으면 다인종·다민족 국가로 정의한다. 반만년 단일민족 국가를 유지해온 대한민국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 셈이다.
특히 농어촌 지역이 아닌 인천과 경기도의 외국인 비율이 2023년부터 5%를 넘어섰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북의 경우도 외국인 비율 5%에 돌입했다. 2022년 4%에서 불과 2년만에 1%p나 늘어난 것이다. 고령은 외국인 주민이 3천233명으로 전체 인구(3만934명)의 10%를 넘어섰다. 외국인들은 국내 제조업·농어업·건설업·서비스업 등 단순 근로 현장을 넘어 교육, 첨단산업 등 분야로 활동폭을 더욱 넓히고 있다.
몇년간 일을 하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에 정착하는 사례도 적지않다. 영남일보는 병오년을 맞아 '다민족 국가 시대' 경북의 외국인 주민 현황과 정책적 과제,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살펴본다.
경북 지역별 외국인 주민 현황. 경북도 제공
◆ 생산라인 핵심 인력으로 자리잡고 생활권 '확장'
지난달 29일 아직 해가 떠오르지도 않은 이른 시간, 경주 성건동 경주여고 앞 대로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서로 다른 언어가 뒤섞이며 경주의 하루가 또 조용히 시작됐다. 언제부턴가 이같은 풍경이 낯설지 않다.
경주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 수만 1만5천461명(2024년 11월 기준)에 이른다. 코로나19 시기 감소했다가 최근 3년 연속 증가세로 돌아섰고, 최근 1년 새 증가폭(20.6%)이 더욱 가팔라졌다.
외국인 주민으로 범위를 확장하면 그 수는 2만2천507명으로 늘어난다. 이는 경북 지자체 가운데 2번째로 많은 규모다. 총인구에서 외국인이 자치하는 비율도 8.7%로 고령(10.5%) 다음으로 가장 높다.
경주의 외국인 증가 중심에는 일자리가 있다. 등록 외국인 근로자 가운데 취업 목적 체류자는 6천812명으로 전체의 약 44%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3천798명, 즉 취업 외국인의 55.8%는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 중소기업이 밀집한 경주의 산업 구조와 맞물린 결과다. 경주에는 등록기업 2천20여 곳 가운데 자동차 연관 기업이 1천400여곳으로 도내 약 60%를 차지한다.
현장에서는 외국인 노동력의 비중을 체감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관리를 맡아온 한 제조업 관계자는 "외국인 없으면 공장이 멈춘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며 "내국인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빠지면 생산 라인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주 외동읍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국적의 마크(가명·34)씨는 주야 2교대로 근무한다. 그는 "야간조를 마치고 나오면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이 많다"며 "처음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생활 리듬이 잡혔다"고 말했다. 마크씨는 6년 전 처음 한국에 들어와 경주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구미나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 월급은 조금 더 받을 수 있지만, 지금은 경주가 더 편하다"며 "쉬는 날에는 중앙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단골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이제 경주가 고향처럼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경주시내 풍경도 달라진 지 오래다. 성건동과 용강동, 외동읍 일대 번화가에는 베트남어와 한자가 함께 적힌 상점 간판이 늘었고, 중앙시장에는 외국인들이 서툰 한국말로 상인들과 값을 흥정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적 외국인 중에느 고려인 동포가 상당수를 차지하며 이들은 성건동 일대에 정착하고 있다.
경주시는 외국인 전담 조직을 운영하며 비자 전환과 행정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 장기 체류와 가족 동반이 가능한 지역특화형 숙련기능인력(E-7-4R) 비자 사업을 통해 외국인을 정착형 인구로 관리하고 있다.
손효석 경주시 외국인공동체팀 담당은 "2026년에는 외국인 인재의 지역 정착을 위한 희망이음 사업과 외국인 근로자 기숙사 환경개선 사업 등이 확대 추진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경북 고령군 덕곡면 서용호씨 딸기농장, 외국인 계절근로자와 함께 딸기작업이 한창이다.
◆ 해마다 다시 찾아오는 가족 같은 이웃
지난달 28일 오전 7시, 경북 고령군 덕곡면 서영호씨 딸기 하우스 안은 분주했다. 딸기를 따는 일부터 크기별로 선별해 상자에 담는 작업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필리핀에서 온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있다. 린린(32), 파울라(29), 마리엘라(26), 마조리(28). 이들이 없으면 농장은 하루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딸기 농장의 일손을 메우는 계절근로자들은 12월에 입국해 5개월간 일을 한다. 최대 3개월간 연장 근무도 가능하다.
서씨의 딸기 하우스는 외국인 계절근로자와 함께한 지 벌써 4년째다. 린린과 파울라는 2024년에도 이 농장에서 일했다. 성실근로자로 분류돼 지난해 말 다시 서 씨의 농가에 배정됐다. 이들은 새로 합류한 마리엘라와 마조리에게 딸기 수확 요령과 선별·포장 방법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일도 겸한다. 작업 동선부터 손에 힘을 주는 정도까지 모두 경험에서 나온 조언을 통해 신입들이 쉽게 적응하도록 돕고있다. 서영호씨는 "린린이랑 파울라 덕분에 하우스 일이 너무 수월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낮 12시가 되자 농가에서 점심으로 육개장을 준비했다. 서씨 부부와 함께 둘러앉은 계절근로자들은 김치도 곧잘 먹었다. 린린은 지난 크리스마스 서씨가 피자를 사줬다며 "우리 사장님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웃음이 오가는 순간, 농장에는 고용주와 노동자의 경계가 옅어졌다.
오후 3시쯤 일이 마무리되면 계절근로자들은 가끔 고령장으로 향한다. 생선튀김을 좋아해 생선가게를 자주 찾는다. 장터에서 나누는 짧은 대화와 소소한 배려가 또 하나의 활력소가 된다.
고령군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일은 일상이 됐다. 주민 열 명 중 한 명은 외국인이다. 외국인 비율이 10.5%로 경북에서 가장 높다. 특히 축제가 열릴 때면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친 외국인 노동자들도 행사장으로 쏟아져 나온다. 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을 듣고, 음식을 맛보고,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한국의 문화에 녹아들고 있다.
서영호 씨는 말한다.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은 단순히 일손을 돕는 사람이 아닙니다." 딸기밭에서, 식탁에서, 장터와 축제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들은 점점 '한 가족 같은 이웃'이 되어가고 있다. 매년 다시 만나 함께 일하고, 함께 웃을 수 있기를 서로가 바란다.
고령군 덕곡면 딸기농장은 오늘도 바쁘게 돌아간다. 그 분주함 속에는 일을 떠나 사람과 사람간 '관계'가 자라고 있다.
석현철
박종진
장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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