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앞에 나란히 앉은 이명수 여사와 전시에 참여한 세 딸.<권영애씨 제공>
엄마의 손끝이 남긴 풍경 앞에서, 큰딸 권영애 씨가 조용히 작품 감상을 하고 있다. 김동 시민기자
한겨울 차가운 공기가 도심을 감싸던 지난 3일, 대구 수성구 씨아트갤러리(아트도서관 2관)에서 열리고 있는 '엄마의 정원 展'을 찾았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전시'라기보다 누군가의 집 안에 조심스레 들어온 듯한 분위기였다. 화려한 조명도, 거창한 설명도 없었다. 대신 손때 묻은 엄마의 작품들과 조용한 이야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91세 치매 어머니 이명수 여사와 7남매 중 4명의 자녀가 함께 만든 가족 전시다. 전시의 중심에는 이명수 여사의 손작업 작품이 놓여 있다. 주간 보호센터에서 그린 색연필 그림과 종이접기, 양말목 공예 등은 전문적인 기교보다 오랜 생활의 손맛이 느껴진다. 흐릿해진 기억과 달리, 손끝에 남은 삶의 시간이 또렷하게 전해진다.
큰딸 권영애(67·북구 관음동)씨는 "엄마가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많지만,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만큼은 여전히 엄마의 시간이 이어진다"며 "이 전시는 작품보다도 엄마와 함께 보낸 시간을 남기고 싶어 마련했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손길이 하나의 이야기가 된 자리에서, 권영애 씨. 김동 시민기자
자녀들의 작품도 각자의 방식으로 엄마의 시간을 잇는다. 큰딸 권영애 씨는 한지 그림으로 차분한 감성을 담았고, 둘째 딸 권정애 씨는 뜨개질 작품으로 일상의 온기를 표현했다. 넷째 딸 권춘애 씨는 버려진 물건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작품으로 새로운 의미를 더했다. 맏아들 권재충 씨는 사진을 통해 가족과 엄마의 일상을 기록했다. 이번 전시는 완성된 결과보다 시간이 쌓이며 만들어진 삶의 흔적에 초점을 맞춘다.
전시를 관람한 한 시민은 "치매라는 주제가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막상 전시를 보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따뜻해졌다"며 "작품 하나하나가 우리 부모님의 모습과 겹쳐 보여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엄마의 정원 展'은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다. 빛나기보다 머무르고, 설명하기보다 기다린다. 흐릿해지는 기억의 가장자리에서 잊힘을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지금 이 순간 남아 있는 시간을 소중히 어루만지는 전시다. 빠르게 소비되는 전시가 아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삶과 가족을 돌아보게 만드는 공간. 전시장을 나서는 발걸음에도 한동안 그 여운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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